연보 - 이육사
너는 돌다릿목에서 줘 왔다'던
할머니의 핀잔이 참이라고 하자.
나는 진정 강언덕 그 마을에
버려진 문받이였는지 몰라.
그러기에 열여덟 새 봄은
버들피리 곡조에 불어 보내고
첫사랑이 흘러간 항구의 밤
눈물 섞어 마신 술, 피보다 달더라.
공명이 마다곤들 언제 말이나 했나
바람에 붙여 돌아온 고장도 비고
서리 밟고 걸어간 새벽 길 위에
간(肝) 잎만이 새하얗게 단풍이 들어
거미줄만 발목에 걸린다 해도
쇠사슬을 잡아맨 듯 무거워졌다.
눈 위에 걸어가면 자욱이 지리라.
때로는 설레이며 바람도 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