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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창 앞에서 - 김상훈
에리리 | L:60/A: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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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0-0 | 조회 317 | 작성일 2019-07-02 00: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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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창 앞에서 - 김상훈

등짐지기 삼십리길 기어 넘어

가쁜 숨결로 두드린 아버지의 창 앞에

무서운 글자있어 '공산주의자는 들지 말라'

아아 천날을 두고 불러왔거니 떨리는 손 문고리 잡은 채

물끄러미 내 또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고 

 

태어날 적부터 도적의 영토에서 독(毒)스런 우로(雨路)에 자라

가난해두 조선(祖先)이 남긴 살림, 하구 싶든 사랑을

먹으면 화를 입는 저주받은 과실인듯이

진흙 불길한 땅에 울며 파묻어 버리고

내 옹졸하고 마음 약한 식민지의 아들

천근 무거운 압력에 죽음이 부러우며 살아왔거니

이제 새로운 하늘 아래 일어서고파 용솟음치는 마음

무슨 야속한 손이 불길에 다시금 물을 붓는가 

 

징용살이 봇짐에 울며 늘어지든 어머니

형무소 창구멍에서 억지로 웃어보이던 아버지

머리 쓰다듬어 착한 사람 되라고

옛글에 일월(日月)같이 뚜렷한 성현의 무리 되라고

삼신판에 물 떠놓고 빌고, 말 배울 적부터 정전법(井田法)을 조술(祖述)하드니

이젠 가야할 길 미더운 깃발 아래 발을 맞추려거니

어이 역사가 역류하고 모든 습속이 부패하는 지점에서

지주의 맏아들로 죄스럽게 늙어야 옳다 하시는고

아아 해방된 다음날 사람마다 잊은 것을 찾어 가슴에 품거니

무엇이 가로막어 내겐 나라를 찾든 날 어버이를 잃게 하느냐 

 

형틀과 종문서 지니고, 양반을 팔아 송아지를 사든 버릇

소작료 다툼에 마음마다 곡성이 늘어가던

낡고 불순한 생활 헌신짝처럼 벗어버리고

저기 붉은 기폭 나부끼는 곳, 아들 아버지 손길 맞잡고

이 아침에 새로야 떠나지는 못하려는가 ……

아아 빛도 어둠이련듯 혼자 넘는 고개

스물일곱 해 자란 터에 내 눈물도 남기지 않으리

벗아! 물끓듯 이는 민중의 함성을 전하라

내 잠깐 악몽을 물리치고 한거름에 달려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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