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피를 토하는 슬픈 동무였다 - 이용악
「겨울이 다 갔다고 생각자
저 들창에
봄빛 다사로이 헤어들게」
너는 불 꺼진 토기화로를 끼고 앉아
나는 네 잔등에 이마를 대고 앉아
우리는 봄이 올 것을 믿었지
식아
너는 때로 피를 토하는 슬픈 동무였다
봄이 오기 전 할미집으로 돌아가던
너는 병든 얼굴에 힘써 웃음을 새겼으나
고동이 울고 바퀴를 돌고 쥐었던 손을 놓고
서로 머리숙인 채
눈과 눈이 마주칠 복된 틈은 다시 없었다
일년이 지나 또 겨울이 왔다
너는 내 곁에 있지 않다
너는 세상 누구의 곁에도 있지 않다
너의 눈도 귀도 밤나무 그늘에 길이 잠들고
애꿎은 기억의 실마리가 풀리기에
오늘도 등1신처럼 턱을 받들고 앉아
나는 저 들창만 바라본다
「봄이 아주 왔다고 생각자
너도나도
푸른 하늘 아래로 뛰어나가게」
너는 어미 없이 자란 청년
나는 애비 없이 자란 가난한 사내
우리는 봄이 올 것을 믿었지
식아
너는 때로 피를 토하는 슬픈 동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