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은 불행이 아니다 - 유치환
모색(暮色)이 초연한 거리 끝에 서서
내가 이렇게 눈물짓는 것은
불행(不幸)하여서가 아니다.
시방 기척 없이 저무는 먼 산이며
거리 위에 아련히 비낀 초생달이며
자취 없이 사라지는 놀구름이며-
이들의 스스로운 있음과 그 행지(行止)의 뜻을
나의 목숨이 새기어 느낄 수 있음의
그 행복(幸福)에 흐느껴 눈물짓는 것이다.
- 진실로 진실로
의지없고 덧없음으로 하여
보배롭고 거룩한 이 꽃받침자리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