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색 마검사는 귀찮은 것이 질색이다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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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 잠들어?! "
유세린이 놀란 기색으로 리액션했다.
그만큼 내 행동이 바보같았다는 의미리라.
" 바보냐 너. "
" 역시나...."
" 뭐라고? "
"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죽을 상태는 아니라는 걸 알았기 때문인지
녀석의 태도도 왠지 평소의 것으로 돌아왔다.
왠지 모르겠지만 약간의 아쉬움이 느껴졌다.
그것보다 신경 쓰이는 건 지금 나의 상태.
녀석에게 부축되어 비틀대는 정말로 글러먹은 남고생의 모습.
" 결과 처리될 거라면 걱정하지마,
내가 대충 둘러댔으니까, "
" 둘러댔다니 뭘 어떻게...."
" '한시온 학생은 아파서 조퇴했어요.'
라고, 공교롭게도 담임은 오늘 출장이니까.
반장으로서 조퇴시켰다고 납득시켰지. "
" 한 마디로 권한 남용이네...."
" 오호? 너 좋으라고 남용한 건데 말이지...."
" 그래 그래, 고맙다. "
왠지 사소한 해프닝이 이리도 쉽게 해결되니
별 것 아닌 것에 괜히 열냈던 것 같았다.
그리고 거기에 사소한 난조가 겹쳐서 병원 신세질 뻔하고 말이지.
" 뭐....
' 그럼 저 가방이랑 밖에 있는 신발은 뭐냐. '
라는 말에 ' 아, 제가 가져다 줄 거예요. ' 라고 답했더니
모두가 이상하게 쳐다보긴 했지만. "
애인도 아닌 주제에 너무나도 친근한 남녀 사이....
당연히 이상한 거겠지.
게다가 남자애가 여자애한테 도움받는 형태라니....
내 입장도 좀 생각해주라고
물론 녀석에게 철저히 길러지고 있는 것은 분명한 현실이지만...
" 그것보다 너 말이야...."
" 음..? "
" 왜 요즘 혼자 다니는 건데,
비실비실한 녀석이 그러고 다니니까.
어디서 잠들어 버리고,
죽어버릴뻔 하는 거잖아.
왕따냐. 너"
윽, 왠지 가슴 쓰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버리는 녀석이다.
이래야 진짜 유세린이지.
" 친구가 적은 건 사실이지만 왕따까진 아니거든....
것보다 너랑 같이 다니잖아."
왠지 그 씁쓸한 말을 듣고 녀석은 이해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 그렇군....중학교 때까지 너랑 같이 다니던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선도부나 스터디 그룹으로 바빠진 탓에
자연히 혼자 남게 된 너는
무리에 쉽게 낄 수가 없게 된 거구나...."
쉽게 사태 파악한 뒤 납득했다는 결론을 내려버린
녀석의 그것은 정확한 건 사실이였지만 역시나 가슴 쓰렸다.
" 나를 사회 부적응자로 취급하는 말은 그만 둬줄래? "
" ? 사회 부적응자인 건 사실이잖아?
검사도 받았으면서 무슨 뜬금없는 소리야. "
나는 반박할 수 없었다.
확실히 2년전 나의 귀차니즘의 근원을 의심한
엄마와 유세린의 조취로 나는 정신과 검사를 받았었고
확실한 사회 부적응적인 정신 요소를 가졌다고 판정받았으니 말이다.
" 아니 굳이 친구 사귀라는 건 아닌데,
있던 친구들 다 어디 갔냐구.
수연이는? 용표는? "
" 음.... 수연이는 왠지 바쁜 녀석이고,
정용표는 행방을 찾을 수 없잖아. "
" 아, 그렇네. "
어느새 우리는 건물을 벗어나와 교문 쪽을 나가고 있었다.
" 그럼 굳이 어울릴 거 없이
그냥 많이 뭉쳐다니는 녀석들하고 몰려다녀.
그러면서 점심이라도 같이 먹고 그러라고. "
" 하?
귀찮게 왜 내가 그런 무리한테 맞춰줘야 해?
그냥 혼자 다니고 말지.
오늘 같은 일도 그냥 어쩌다 재수없이 일어난 실수였을 뿐이니깐. "
" 나참,
못 말리는 아웃 사이더구나.
언제까지 그러고 살래. "
" 신경 마시지. "
슬슬 이쯤되면 혼자 걸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다리에 힘을 줘봤지만 별 달리 근육을 움직일 순 없었다.
부축, 부축,
나는 걷는 것도 인생도 이 녀석의 부축을 받아야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이려나.
귀찮은 것이 질색이라면 언제까지고 그래야 할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 뭐, 그래도
고등학생이 되었다고 나한테서 독립해버렸다면
그건 그것대로 슬픈 일이였겠지만 말야. "
녀석은 그렇게 말하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왠지 굉장히 열받는데.
어느새 우리가 교문을 나오고 있었다.
그러던 중 눈에 띈 것은 교문 한켠에 쭈그려앉아 학교 바깥을 바라보는 누군가.
" 어, 마스크 선배. "
유세린이 그에게 아는 체하며 다가섰다.
지금 이 상태가 쪽팔린 나로선 별로 달갑지 않은 행위지만.
" 아, 세린이네. "
멍한 표정으로 시선 고정하던 그가 여전히 멍한 눈빛으로 멍한 목소리로 반응했다.
그 별명(?)대로 그는 하얀 색깔의 일회용 마스크를 낀 모습이다.
이상하게도 자세히 보았을 때 그것은 1겹이 아닌 세네겹 정도가 두툼히 겹쳐 씌워진 형태였다.
거기에 녹색 염색이라는 다소 파격적인 머리색깔에
도저히 봄의 행색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더워보이는 보라색 털모자에,
전부 챙겨입은 교복위에 두툼두툼한 흔한 패딩 차림.
이 사람은 비정상적인 내가 보더라도 비정상이다.
내가 알고 있기로는 정용표가 이와 가장 유사한 비정상적인 속성의 복장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더라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였다.
이건 딱 봐도 수상한 사람이라고 외칠만한 것이니까.
" 여기서 쭈그려 앉아 뭐하세요? "
하지만 유세린은 그 미칠듯한 사교성에 그런 존재하고도 아무런 위화감 없는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나를 경악하게 한 것은 녀석의 다음 질문이였다.
" 이번 주 선도 활동에 이런 것도 있던가요? "
그랬던 것이다. 이 사람과 유세린의 면식 관계는 다른 것도 아닌
선도부에서의 선후배 관계,
즉 이 통칭 '마스크'는 선도부원이라는 것이였다.
다른 것도 아닌 독재정권이라는 별칭의 성운고의 선도부원이
이런 FREE하다 못해 아방가르드한 복장으로 돌아다닌다니?
정말로 믿기 힘든 일이로다.
" 음, 1학년에게는 통보하지 않았지만
뭐 딱히 숨길 일은 아니지. "
" 숨길.... 일? "
" 요즘 본다는 학생들이 늘어서. "
" 봐요? "
" 본다니...? "
왠지 말의 내용은 바뀌지만 그의 무심한 말투는 변함이 없다.
" 검은 귀신, 이랬지 아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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