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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색 마검사는 귀찮은 것이 질색이다 - 1
절대존재 | L:0/A:0
283/350
LV17 | Exp.80% | 경험치획득안내[필독]
추천 0-0 | 조회 629 | 작성일 2013-04-27 22: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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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색 마검사는 귀찮은 것이 질색이다 - 1

 바람이 불었다.

피부에 닿아오는 것이 기분좋은 봄의 저녁 바람.

 

아직은 외투를 걸쳐야 할 법한 차가움이지만

이 장소의 느긋한 풀과 흙 냄새는

그것을 제법 버틸만한 것으로 생각하게 한다.

 

감긴 눈에 어렴풋이 비춰진 오렌지색 석양.

 

왠지 이상한 녀석을 생각하게 하지만

그건 그것대로 마음을 편안히 해준다.

 

무언가가 마음에 걸려왔지만,

아무렴 어떠하리.

 

이건 정말로 좋구나.

 

어떠한 명예나 권력, 재물도 욕심나지 않게 하는

느긋한 안식.

 

그것은 타인과 치열히 경쟁하여 쟁취한 것도 아니고

타인을 속여 부당하게 훔친 것도 아니며

타인을 짓밟아 비열히 빼앗은 것은 더더욱 아니다.

 

어떠한 인간 사회의 방법도

하물며 자연의 생식법도 아닌

타자와의 경쟁없는 쾌락.

 

그것은 최소로 절제된 형태의 느긋한 안식이다.

 

타자에게 피해를 주거나 혹은

나 자신이 피해 입지 않는 유일한 쾌락.

 

그것은 더할 나위 없는 궁극의 행복법이다.

 

다만 이 방법이 가질 수 있는 맹점.

 

느긋한 안식이 최소 절제의 한도를 넘어섰을 때에,

그것은 나태가 된다.

 

썩어빠진 나태함은 나 자신을 시작으로

주변으로 영향을 주며

결국 그 사회 전체를 괴멸시키기에 이른다.

 

나태를 7대죄의 하나로 부르는 이유인 것이다.

 

그러므로 국가 단위에 비하여 작은 것이라 하여도

'나'는 '나'의 행복법에 대해 최소한의 것을 누린 다음부터는

사회 분자로서의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그 대가는 진정 재물이 될 수도 있고 

미래에 얻을 수도 있을 사회적 지위의 포기가 될 수도 있으며

지금 당장의 근면함-일 수도 있다.

 

나에게,

 

첫번째의 경우는 그다지 부자도 아니니 불가한 것이며

두번째의 경우는 아무래도 장래가 불안하여 낙관할 수 없다

그러니 내가 당장 지불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도 비극적인 당장의 근면함인 것이다.

 

결국 이 형태의 행복법은 원점으로 돌아와

'노력해야 한다.' 는 사실에 귀결한다.

 

난 이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한다.

 

타고난 귀차니스트임에,

더더욱 몸소 절망한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야

마음에 걸리던 것을 알게 되었다.

 

벌떡-

 

눈을 뜨고 누워있던 몸을 일으켰다.

 

주변은 막 돋아나기 시작한 파릇한 풀잎,

한 켠의 죽 이어진 곳으로 보기 좋은 색깔의 분홍 벚나무가 가득했다.

 

그리고 그것들의 틈으로 스며오는 태양광은

너무나도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오렌지색 석양.

 

반절쯤 잘려있던 뇌내의 기억을 급하게 되짚었다.

 

가장 최근의 기억은-

점심 식사 후 나른한 몸을 풀숲 언덕에 뉘였던 것

 

급히 휴대폰을 열어 시간을 살펴보니-

나의 시간은 6시간을 뛰어 있었다.

 

믿기지 않는 놀라운 상황,

 

정신을 놓은 잠깐 동안 단 한순간만에

미래의 시간으로 옮겨왔다-

 

한 가지 바뀐 것은 이미 흘러 버린 시간,

그 외의 변화는 아무것도 없다.

 

다만

이건 판타지 소설의 도입부처럼 막연히 발생한 타임워프....따위가 아니다.

 

난 솔직하게 6시간 동안 잠잤음을 인정하려 한다.

 

"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

 

아무리 나이지만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무려 6시간을 땡땡이 쳤다니,

 

초중 9년간 기본적으로 학생이라는 직책에

당장의 근면함을 최대한 지불해온 나로서는

 

너무나 억울하고 당황스러우며 불량한 사태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걸음마다 속력을 높여가며 언덕길을 내려 이어진 운동장을 가로 질렀다.

그리고 더욱 절감했다.

 

저 반댓편에서 일렬로 달리고 있는 육상부의 누군가들이 보였기 때문에,

옆 켠의 그라운드에서 경기 중인 야구부의 누군가들이 보였기 때문에,

 

"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

 

벌써 부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 

이미 종례가 끝난 뒤라는 것을 더욱 실감하게 했다.

 

다리 근육을 부풀렸다,

돌풍같은 모래먼지를 일으키며

순식간에 운동장 끝으로 닿았다.

 

곧바로 다리를 주춤이는 것 없이

물흐르듯 돌계단위로 발을 넘겨, 

 

탁-탁-탁-탁-탁- 탁- 탁-  탁-  탁-   탁-    탁-    탁-

 

 

기하급수적으로 보폭을 늘리며

엄청난 속도로 계단을 넘었다. 

 

십 수초,

스스로 생각해도 말도 안되는 속도로 건물 앞에 닿았다.

 

" 헉, 헉......"

 

건물 내의 거의 모든 교실들은 반절쯤 조명이 꺼져 있었으며

그건 우리 교실도 마찬가지였다.

 

정말이지,

쓸데없는 고생을 했다.

 

휘청- 휘청-

 

심하게 휘청거리며 건물에 들어선다.

역시나 아까의 달리기가 내 에너지의 절대적 한계였던건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형상으로

어렵사리 3층을 올라섰다.

 

" 꾸우욱...."

 

금방이라도 토해버릴듯한 입을 틀어막고서

한 걸음 한 걸음 나무 바닥에 발을 옮겼다.

 

발을 딛을 때마다 복도를 유난히 울리는 발소리.

아무도 남지않은 이 층상의 공허함을 표현하는 듯 했다.

 

' 아아, 뭘 하는 걸까. 나. '

 

급우울해진 나는 당장에라도 죽어버릴 것 같았다.

이질적인 상황에 고여버린 형용 못할 기분 나쁨.

 

하루의 모든 가치가 사라져 버린 것만 같다.

 

 

드르륵-

 

감각이 묵직한 교실문.

 

안으로 들어서자 유난히 말끔한 녹색 칠판과

차가워진 철제의 책걸상이 창문으로 스며든 오렌지색 석양 빛을 받고 있었다.

 

누군가 다른이는 없다.

 

항상 떠들썩하고 시끄러운 교실이

이렇게 공허하다는 것이 신기하다.

 

그 공허함은 이 기분 나쁨을 배가시킨다.

 

발걸음은 힘이 없다. 내 발걸음은 원래 힘이 없지만,

 

터덜 터덜, 아까의 질주로 죽어가는 육체를

가까스로 교실 맨 끝의 자리로 옮겨갔다. 

 

아, 힘이 빠져간다.

정신이 혼미해져 간다.

 

어쩐지 자주 혼자 다니게 되었지만

기본적으로 나는 사람이 없는 곳에 혼자 있어선 안되는 인간이였다.

이따금씩 쓰러지는 일이 많았기에,

 

방금 전 정신없이 일어나 곧바로 전력 질주했던 탓일까.

빈혈기가 몸을 짓눌렀다. 

 

 

휙-

 

자리에 다가왔을 때 쯤

발에서 힘이 빠져 몸이 한쪽으로 기울었다.

 

지금의 육체 상태로 보건대, 이건 자력으로 평형을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의 다음 순간은 어렵지 않게 예상된다.

 

쉽게 단념하며 중력에 몸을 맡겼다.

 

탁,

 

어딘가에 부딪히는 음성.

 

정신을 잃게 되었고

한 순간에 죽어 버린 듯이 인식이 멈추어졌다.

 

하,

나란 인간 예전부터 이랬었지.

 

징그럽게 약해빠진 주제에 

징그럽게 귀찮아하고

징그럽게 노력하지 않아-

 

이렇게 아무렇지 않은 평소와 같은 어느 날에,

별 것 없는 사소한 사태에,

헥헥대다가 응급실에 실려가거나 또는 목숨을 잃어버리는

쪽팔리는 허약 남고생이라는 것이 실로 비참하다.

 

난 단번에 찌그러들만큼 약하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 사실은 전혀 바뀌지 않을 것이다.

 

난 언제까지고 귀찮은 것이 질색이니까.

 

 

" 으아아아아!!!

왜 그래, 어디 아파? 시온아아아아아아! 괜찮아?!"

 

" 어...."

 

유별나게도 나의 예상은 빗나가 있었다.

 

추락은 누군가의 몸에 안겨진 채로 멈추어졌다.

 

" 땀은 왜 이렇게 많이 흘렸는데!

구....구급차! 구급차를 부르자!  "

 

엄청나게 당황하며 어쩔 줄 몰라하는 유세린.

평소라면 까칠하게 야단쳤을 그 녀석도

내 골골대는 모습에 상당히 놀란 모양이다.

 

" 하아...하아..... 구급차는 안 불러도 돼......."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왠지 전혀 믿을 수 없을 테지만

나의 안녕함을 주장했다.

 

"저....정말이지...? "

 

" 물론....."

 

석양과 똑같아 알아채지 못한 녀석의 오렌지색 머리칼은

이 순간에 특히 석양과 겹쳐 따뜻하고 상큼한 것으로 느껴졌다.

 

" 한시온은 바보! 정말 뭘 하고 온 거야?!"

 

"으아아아아아아아악!!!!"

 

녀석이 나를 강하게 끌어 안았다.

제딴에는 걱정했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겠지만

나의 육체는 그 엄청난 바스트에 끼인 채로 

팔 조임 당하는 것을 고통스러워 했다.

 

여자에게 안겨서 골골대는 주인공이란 이 얼마나 안쓰럽기 그지 없는가.

이런 순간마저 소꿉 친구의 거대한 그것에 신경이 가고 마는 것은 나를 더욱 비참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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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eIerator
잌ㅋㅋㅋ 초반에 안빈낙도 ㅋㅋㅋ
2013-04-27 22:45:49
추천0
절대존재
듣고보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13-04-27 22:52:29
추천0
[L:23/A:416]
종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13-04-27 23:54:30
추천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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