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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거리 데이즈 전체 번역_10장~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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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0-0 | 조회 721 | 작성일 2020-10-22 02: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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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거리 데이즈 전체 번역_10장~후기

후기에도 나름 중요한 설정이 있으니 후기까지 읽기를 권합니다.

 

후기의 쿠노리 후미오는 레키 작가님의 또 다른 필명이라고 합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10

 

24시간만에 다시 방문한 알게이드의 잡화점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손님들이 적당히 차 있었다.

하지만, 어째서 이 가게의 단골 손님들은, 가게주인에게 이것저것 말을 걸지않고, 매장에서 아무말 없이 상품을 구경하는걸 선호하는 걸까. 아이템을 구입할때도, 가격 협상이 가능한 가게 주인과의 직접 거래가 아니라 구매 윈도우를 통해 신속하게 마치는 플레이어들이 많다.

따라서, 거한의 점주는 오늘도 손님에게서 등을 돌리고, 카운터 안쪽의 작업용 책상에서 방금 사들인 것 같은 아이템들의 검시를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역시나 공략조의 일원이라고 해야 할까, 나와 아스나가 검게 빛나는 마루바닥를 밟는 소리를 인식했는지 회전의자에 앉은 몸을 돌려 뒤돌아봤다.

 

"요스."

 

하며 인사한 나에게 가게 주인은 나에게 수상쩍다는 듯한 시선을 거세게 보내고 있었다.

 

"야, 야, 손님한테 그런 눈빛을 보내도 되는거야?"

 

무의식적으로 파고들자, 점주 - 도끼 상인인 에길이 그제서야 딱딱한 턱을 움직였다.

 

"너희들이 이틀 연속으로 얼굴을 들이밀면 뭔가 위험한 예감이 든단 말이지. 부탁인데, 어제 그거보다 번거로운 주문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아니아니, 오늘은 간단한 부탁이야. 아이템 한 개를 감정받고 싶어서 그래."

 

그것을 들은 에길이 그제서야 경계심을 풀었다.

 

"뭐야, 그걸 빨리 말하라고. 감정이라면 손 쉬운 일이지. 아스나도 잘 왔어. 차라도 좀 마실래?"

 

나에 대한 대응과 극심한 격차가 있는 가게 주인의 말에 아스나는 웃는 얼굴로 인사했다.

 

"고마워요 에길씨. 하지만 아직 영업중이시니까 사양할게요. 다음번에 과자라도 가져올테니 그때 잘 부탁드릴게요."

 

"호오, 그렇게까지 말하니 내 쪽이 기대되는걸... 그래서, 무슨 물건인데?"

 

에길의 얼굴이 내쪽으로 향하자, 윈도우를 재빠르게 조작해서 문제의 아이템을 오브젝트화 시켰다. 희미한 효과음과 함께 실체화한 그것을, 천천히 카운터 위에 올려놓았다.

거대한 철못을 보자마자, 에길은 선명하게 보일만큼 눈살을 찌푸렸다.

 

"뭐냐 이게, 단순한 픽이잖아. 말뚝...은 아니고, 수리검 용도도 아닌 것... 같고."

 

굵은 목소리가 점차 작아지더니 중간에 끊겼다. 입을 작게 벌린 채, 에길은 천천히 오른손을 뻗어서 커다란 못을 들어올렸다. 느낌을 확인해 보려는건지 손 안에서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이윽고, 내가 감정해 달라고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못을 탭해서 감정을 시작했다.

잠시동안의 대기시간이 지나자 나타난 프로퍼티 윈도우를 흘끗 보려고하자, 에길이 순간 두 눈을 크게 떴다. 그 반응을 본 순간, 나는 거의 확신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입을 열지 않은 채 도끼전사의 말을 기다렸다.

몇 초후에 고개를 든 에길은, 어딘가 마음을 놓은듯한 표정으로 나를 보더니, 말했다.

 

"너네들... 이걸, 어디서 얻은거냐?"

 

 

 

결국 나와 아스나는, 가게 2층에 들어앉아 차를 대접받았다. 손님이 끊길 시간즈음 에길이 가게문을 일찌감치 닫고, 우리들에게 계단 위로 올라가라고 재촉했기 때문이다.

몇 분 있다가 2층 거실에 나타난 거한은, 컵이 세 개 올려진 트레이를 가지고 들어왔다. 커피의 좋은 향이 나는 컵을 테이블 위에 올리고, 우유와 설탕이 담긴 작은 항아리를 나란히 꺼내더니 우리 앞에 앉았다.

트레이에는 마지막으로 한가지 아이템만이 남아 있었다. 문제의 대못이다.

나와 아스나가 커피에 우유와 설탕을 넣는 동안, 블랙인채로 한 모금 홀짝인 가게 주인은 그제서야 말을 시작했다.

 

"22층의 숲...인가. 내가 이놈을 표식으로 사용해서 필드에 둔 것도 이미 1년이 훨씬 지났을텐데, 여전히 신품으로 보이는군..."

 

그 말을 들은 순간, 무심코 아스나와 얼굴이 마주쳤다. 그렇다해도, 아직까지 제대로 판명된것은 에길이 그 거대한 호두나무를 벌채했다는 사실 뿐, 마호클과의 관계는 아직 불명확한 상태다. 성급하게 이것저것 묻는것은 피하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만약 땅바닥에 찔러 놓았다거나, 박혀있던 나무에 나무 소재로 만든 못을 찔러놓았다면 이미 썩어 없어졌겠지. 그 <트리하우스의 뿌리못(*없는 단어지만 한자 직역했습니다*)>"은, 나무에 박혀있을때만 내구도가 줄어들지 않는 사양인 것 같으니까. "

 

"그러고보니, 그런말을 했던 것 같군."

 

에길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양 팔을 머리 뒤로 돌려 깍지를 꼈다. 눈을 창 밖의 먼 어딘가로 향하더니, 약 10초 이상 침묵한채 있다가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건, 내가 아직 <투 핸디드 빌더즈>의 리더를 하고 있을 때였을거다..."

 

그제서야 에길이 평소에 잘 해주지 않는 옛날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말허리를 꺾어서는 안된다 - 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반사적으로 입을 열고 끼어들고 말았다.

 

"잠깐만 기다려, 그게 뭐야?"

 

"뭐냐니... 길드 이름이지."

 

"에... 에에에에!? <형님군단>이 아니었어!?"

 

하고 외친 나에게, 에길과 아스나가 어이없다는 듯한 얼굴을 보냈다.

 

"나 참 내. 그런 길드이름이면 남자만 들어와야 한다는 거냐."

 

"난 정식이름 제대로 알고 있었는걸."

 

"아니... 그치만..."

 

실제로 길드 멤버들은 다 형님들 뿐이었잖아아! 하는 말을 삼키고, 방금 하던 말을 재촉했다.

 

"아니, 미안해. 계속 말해봐."

 

그러자 에길은 커피 한 모금을 다시 마신 뒤, 크게 헛기침을 하고, 처음부터 다시 이야기를 했다.

 

"...어쨌든, 내가 투핸더즈의 리더를 하고 있을 무렵의 이야기다."

 

그 말이 약칭임을 이해했기에, 이번에는 얌전히 수긍했다.

 

"뭐랄까, 그 당시의 나는, 공략조로서 최전선에서 싸우는 것에 대해 미혹을 느껴서 헤메고 있었지... 잠깐 동안 혼자서 생각 할 시간을 갖고 싶어서, 밤에는 이곳저곳에 있는 숲에서 벌목을 하고 있었다. 움직이지 않는 나무를 상대로 도끼질만 계속 하다보면, 머리가 깨끗해지는 느낌이 들었거든."

 

그 기분은, 나도 알고 있다. 내가 벌목을 한 것은 아니지만, 단순작업인 레벨업이나 스킬 숙련도 올리는 일을 솔로로 장시간 계속하면, 마치 명상하는 것 같은 감각... 도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길은, 역시 상인이라고 해야할런지, 웃으며 이야기를 덧붙였다.

 

"게다가, 벌목으로 도끼 스킬도 올릴수 있고, 벌목한 통나무들도 꽤 괜찮은 가격에 팔 수 있으니까. 처음에는 가장 가까운 마을에 있는 NPC 상점에 헐값으로 팔았지만, 그 당시에는 장인 플레이어들도 조금씩 늘어나던 무렵이었고, 그 중에서도 목공 세공사들한테 팔게 되었는데... 그러다가 어느날, 한 세공사가 묘한 부탁을 해 온게 이유였지."

 

"묘한 부탁...?

 

되물어본 아스나를 향해, 에길이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다.

 

"그래. 가능한한 레어도가 높고 희귀한 나무의 통나무를 몇 종류 모아주면 좋겠다...고. 가벼운 마음으로 맡은것까지는 좋았지만, 그게 내 생각보다 의외로 성가셨단 말이지... 나무에 대해서 초짜였던 나로서는 레어도가 높은 나무를 구별할 수가 없었고, 그리고 왜, 아인크라드의 나무는 벌목을 해도 몇시간, 혹은 며칠이 지나면 다시 생겨나잖냐? 표식을 심지 않으면, 이전에 내가 벌목했었던 나무였는지 아닌지를 모르게 되어버린다고. 그래서, 의뢰인한테 그런 말을 했더니..."

 

"그게 그 못을 만들어준 이유... 라는건가."

 

이번에는 내가 끼어들었고, 도끼 상인은 다시 한 번 더 트레이에 있는 큰 못으로 시선을 돌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 당시에는 뭐에 쓰는 못인지도 몰랐고, 왜 썩지 않는가에 대해서도 모르고 썼었는데... 그런가. 트리하우스의 재료였던 거군..."

 

"그래서.... 의뢰는 클리어 할 수 있던거야?"

 

"꽤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말이지. 나무의 레어도를 구별하는 것도 세공사 본인이 벌목 작업에 동행해 줘서 해결했지. 그러고보니, 분명 22층에서 두꺼운 호두나무를 발견했었지. 그 나무는 세공사가 찾고 있던 나무가 아니었지만, 주거구의 NPC 가구점으로 갖고가서 그 자리에서 커다란 테이블로 가공해서는... 그건 정말 훌륭한 테이블이었어. 가격이 터무니 없이 비싸긴 했지만. 만든 가구점에 위탁했던데, 아직도 팔고 있을려나..."

 

그립다는 듯 추억을 회상하며 천장을 올려다보는 에길의 틈을 찔러, 나와 아스나는 빠르게 눈빛을 교환했다.

이걸로 거의 확정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지금 우리집 거실에 자리잡고 있는 거대한 테이블의 소재를 벌채한 사람은, 우리 눈 앞에 있는 도끼 상인이다. 즉, 에길은 한때나마 목공 세공사인 마호클의 거래상대... 어쩌면 파트너적인 존재였던 셈이다.

스킨헤드의 거한 도끼 사용자와 소용돌이 안경을 낀 몸집이 작은 세공사를 내 머릿속에서 나란히 세워보았다. 어떻게 봐도 미스매치 같지만, 실제로 보면 의외로 잘 어울리는 면이 있는것도 같지만, 아직 두 사람이 어떤 관계였는가를 추측하는것은 너무 성급하다.

마호클은 한 달 전에, 그 전까지의 가게를 모두 접고 3층에 있는 주거구인 줌프트에 몸을 숨겼다. 그 이유가 [발리스타의 콤퍼지션 레시피를 발견했기 때문]이라고 본인이 말했으나, 에길은 우리들이 모아달라고 의뢰한 소재 아이템의 리스트를 보고도, 그게 발리스타의 재료라는 것을 간파하지 못했다. 즉, 마호클은 이전의 거래상대였던 에길에게도, 몸을 숨겨야만 하는 사정을 설명하지 않은 것이다.

머리를 빙빙 돌려가며 생각을 쥐어짜내는 내 앞에서, 에길이 자신의 커피를 마신 뒤 말했다.

 

"세공사가 만족할만한 나무가 발견된건 그로부터 일주일 정도 지난 뒤였나. 귀찮은 의뢰였지만 돈도 제대로 지불해 주었고, 덤도 붙여주었으니 말이지..."

 

"덤...?"

 

나와 아스나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에길은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방 한구석에 놓여진 길다란 궤짝을 탭했다. 홈 스토리지를 꽤 길게 스크롤하더니, 이윽고 한 개의 양손도끼를 오브젝트화 했다.

오랜 시간동안 사용해서 탁한 빛을 발하는 그 도끼는, 지금의 최전선에서 통용될 정도의 스펙은 아니지만, 그래도 예전에는 상당한 명품이었을 거라는 사실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나는 이전에 한때나마 에길이 이 도끼를 사용해 최전선의 플로어 보스와 싸우던 사실을 어렴풋이 기억해냈다.

 

"....<장병무기제작>스킬로, 그 도끼를 만든... 거군요?"

 

아스나의 질문에 에길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양손 도끼와 핼버드, 스피어 등의 장병무기들은 모두 금속으로 만드는게 보통이다. 자루가 나무로 만들어진 것도 존재하긴 하지만, 금속과 비교하면 내구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하지만, 장거리 무기를 사용하는 플레이어 중에는, 그 수가 적긴 하지만 우드 샤프트를 선호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이 말하길, 모두 금속제로 이루어 진 것보다 <크리티컬 히트 확률>이 높다고 한다.

SAO의 무기 프로퍼티에는 크리티컬 확률이 숫자로 표기되어 있지 않다. 무엇보다도, 크리티컬 히트 자체에 대한 정의가 애매모호하기 때문에, 그에 대해서는 소유자의 체감 지수로밖에 측정할 수 없지만, 내 주무기인 한손직검은 기본적으로 모든 부위가 금속이므로 - 손잡이 부위가 나무로 된 검도 있긴 하지만, 자루를 움켜쥐는 느낌만 달라질 뿐이다 - 뭐라고 말 할 수는 없다. 이에 대해서는 레이피어를 사용하는 아스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여하튼, 이 부유성에서 크리티컬 히트에 대해 탐구하는 것은 말 그대로 <늪> 그 자체이기에 쉽사리 발을 내디딜만한 세계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에길이 감상에 젖어 벅찬듯 바라보고 있는 도끼의 샤프트는, 검게 빛나는 나무로 되어있다. 오래 사용해서인지 자루에도, 도끼 머리에도 미세한 흠집이 무수히 새겨져 있지만, 도끼날이 번쩍하고 빛나는 것을 보자, 아직 못 써먹을 물건은 아닌 것 같았다.

 

"...그 도끼, 꽤 오랫동안 보스전에 사용했지."

 

내 질문에 에길이 다시 스킨헤드를 끄덕였다.

 

"아아, 이 녀석이 몇 번이나 날 구해줬는지 몰라. 위험한 상황에서 이상하게 크리티컬 히트가 자주 나오더군."

 

"헤에엣."

 

하고 목소리를 높인것은 내가 아니라 아스나였다.

 

"나무 자루로 된 폴암의 크리티컬 확률이 높다라는 이야기가 정말인가요?"

 

"글쎄, 어떠려나..."

 

자신이 말한 것인데도, 도끼상인은 두꺼운 입술을 씨익 올렸다.

 

"제대로 된 데이터를 갖고 있는 건 아니니까. 상인으로서는 그 이야기에 대해 오컬트스럽다 라고 답해야 겠지. 하지만... "

 

상처투성이의 자루를 부드럽게 어루만지면서 에길은 본 적 없는 감정적인 어조로 말했다.

 

"도끼 사용자로서 말하자면, 무기라는 것은 어느 녀석이든간에, 소재나 스펙에 관계없이... 그야말로 상점에서 대량으로 판매하는 생산품이라도, 소유자가 깊이 생각해주거나 애착을 갖는다면 언젠가 반응을 해 주는 물건이라는 생각이 들어."

 

"네에...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라고 아스나가 웃으면서 납득해서, 나도 찬성의견을 말하는 길밖에 없었다. 애초에, 내가 그 의견을 부정 할 수 있는 플레이어였다면, 최전선보다 훨씬 아래인 50층에서 드롭된 칼을 꾸준히 강화하면서 75층에서까지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지금은 단짝이 되어버린 <일루시데이터>와 <다크리펄서>도 지금까지의 애검들처럼 언젠가 갱신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올 것이다. 하지만 그때가 온다고 해도 상점에 매각하거나 녹여서 주괴로 만드는 대신에 스토리지 깊숙한 곳에 보관해 둘 것이다. 에길이 마호클이 만들어 준 양손 도끼를 1년 넘게 맡아 둔 것처럼.

그런 생각이 나를 현재의 수수께끼로 되돌아오게 했기에, 무릎위에서 손가락을 살짝 구부리면서 생각했다.

목공세공사 마호클이, 레어도 A급, S급 목재의 통나무를 가능한한 많이 모아달라고 에길에게 의뢰한것이 1년 조금 전이라고 했으니 - 즉, 2023년 9월 무렵이다.

에길이 장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것은, 50층이 공략 된 직후였으니 2024년 1월.

그리고, 마호클이 노포(발리스타)의 콤퍼지션 레시피를 발견해서 3층의 주거구 줌프트에 몸을 숨긴것이 지금으로부터 한달 전, 2024년 9월-.

이 사이 벌어진 일들 사이에 뭔가 모종의 상관관계가 있는 것일까. 그리고 마호클은 어째서, 이제 와서 발리스타를 만들려고 하는 것일까.

나와 아스나가 깊이 관여할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호클이 뭔가 위험한 일을 하려고 하는 것이라면 모른척 할 수 없으며, 그 사정을 캐낼 수 있는건 1년전에 그녀와 어떤 파트너적인 관계에 있었던 것 같은 사람은 에길뿐이다.

한 순간 대화가 중단된 타이밍에, 내 옆에 앉아있던 아스나가 내 옆구리를 팔꿈치로 가볍게 찔렀다.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라는 모종의 신호인것인가. 지금까지 찾던 사람이 옛 친구인 에길이라는 것을 알고나니,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지 고민이 됐다.

내 부자연스러운 침묵을 아는건지 모르는건지, 일어서서 나무자루의 양손 도끼를 홈스토리지로 되돌린 에길은, 블랙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탁상위의 금속 조각 - <트리하우스의 뿌리못>을 집어들었다.

 

"...그래서, 왜 이놈의 감정을 부탁한거냐? 흔하게 볼 수 없는 아이템이라고 해도, 그다지 고가의 레어한 녀석도 아닌데? ...아니면, 혹시 이 못을 표식으로 사용한 사람이 나라는 걸 알아보려고..."

 

"아- 에- 우---"

 

꼬마아이같은 괴성을 지르는 나에게 에길이 수상쩍다는 듯한 시선을 보냈다. 아스나도 옆에서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혹시나, 만에 하나, 에길과 마호클이 옛날에 연인사이여서, 그래서 현재 서로 교류가 없어 보이는 것도 남녀의 연애관계에서 생겨나는 모종의 갈등 때문이라면... 라는 상상이 들면 고1 남자아이로서 입이 제대로 말을 못하게 되는 것도 어찌 할 수 없는 일이 아닐까.

 

"에길씨."

 

이 이상 나에게 맡겨둘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자세를 가볍게 고친 아스나가 다시 물었다.

 

"이전에, 저희들이 소재 아이템의 구매를 부탁했었죠."

 

"오우."

 

고개를 끄덕인 에길이 다시 천장을 올려다 보았다.

 

"분명히... 소리다이트 잉곳 30개, 아큐타이트 잉곳 20개, 오래된 티크 10개, 그레이트 록 드래곤의 힘줄 8개... 였었지."

 

"자, 잘 기억하고 있구나. 개수까지도."

 

내가 무심코 끼어들자, 도끼상인은 훗하며 웃었다.

 

"그 정도의 기억력도 없어서야 상인은 못해먹지... 라는건 거짓말이고, 그것들이 어디에 쓰는 재료인지 궁금해서 말이지. 좀 알아봤는데, 해당하는 레시피가 나오질 않아서 나도 신경이 쓰이던 참이다."

 

"사실은..."

 

호흡을 한번 들이마신뒤, 아스나가 그 말을 입에 담았다.

 

"......그건, 발리스타의 레시피에요. 저희들도, 어떤 사람에게서 소재 아이템의 수집을 부탁받아서..."

 

"발리스타...?"

 

앵무새처럼 중얼거린 에길의 미간에 선명하고 깊은 골짜기가 새겨졌다.

 

"당연하겠지만 그거, 커피 장인을 의미하는게 아니라, 활을 말하는거지?"

 

"아아, 노포 말하는거 맞아."

 

일본어로 주석을 달아 준 내 얼굴을 보지도 않고, 에길은 오른손에 들고 있는 커피잔으로 시선을 떨어트린채

 

"그렇다면... 늬들한테 소재를 모아달라고 부탁한 건, 목공 세공사(우드 크래프트)인 마호클... 인가."

 

"......!!"

 

드디어 에길의 입에서 그 이름이 들리자 나와 아스나는, 무심코 얼굴을 마주보았다.

두 사람은 동시에 몸의 방향을 되돌려서, 끄덕 수긍했다. 마음을 놓은듯한 표정을 지은 에길에게 작은 목소리로 재차 확인했다.

 

"...에길, 너한테 레어 목재 수집을 의뢰한 것도, 그리고 방금 나무 자루로 된 도끼를 만든것도, 마호클 맞지?"

 

이번에는 도끼상인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가볍게 헛기침을 한 뒤, 한 걸음을 더 내디뎠다.

 

"어... 그... 너와 마호클은 어떤 관계인거야...?"

 

".........으-음..."

 

낮은 신음을 내면서, 에길은 자신의 거구를 의자 등받이에 맡겼다. 조각한 것처럼 깊은 콧날 너머의 눈이 나를 바라보자, 부자연스러운 헛기침을 한 번.

 

"가장 먼저 말해두겠다만, 뭐냐, 그... 너랑 아스나 같은 관계는 전혀 아니었다."

 

"하...?"

 

말의 의미를 순간적으로 짐작하지 못해서 옆을 쳐다보자, 아스나는 완전히 무표정으로...가 아니라, 뺨이 살짝 붉어져 있었다. 그 덕분에 나도 그제서야 에길이 말하려고 하는 바를 깨닫고, 고개를 꾸벅거렸다.

 

"아, 아아-, 그렇구나... 아니 그보다, 조금 의외네. 나는 분명히 이래저래 복잡한 관계였다고만..."

 

"그럴 리 있겠냐. 말해두겠는데, 나는 저쪽에 이미 아내가 있다고."

 

"에엑!"

 

하고 외친것은 내가 아니라 아스나였다. 컵을 쥔 채 몸을 앞으로 내밀더니 빠른 말투로 다그쳤다.

 

"에길씨, 결혼하셨던거에요!? 저쪽에서, 그러니까 현실세계에서 말이에요. 아내분은 어디에서..."

 

그러나 거기서 탁 하는 소리가 들릴 정도의 기세로 입을 다물고, 상체를 다시 원래대로 당기고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현실(리얼)의 이야기를 하는 건 매너위반인데."

 

"아니, 사과 할 필요 없다. 내가 시작한 말이니까"

 

이번에는 에길이 당황한 듯 머리를 흔들고는 아스나가 다시 고개를 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덧붙였다.

 

"...하지만, 아내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지. 지금은 마호클에 관한 건이 우선이니까... 레시피의 재료를 모은것을 보면, 그녀석은 발리스타를 만들 생각인건가."

 

"우리도 그게 계속 마음에 걸려서 여러가지로 조사했어. 처음에는 가구의 오더를 부탁하고 싶어서 거처를 찾았었는데... 공방을 옮기게 된 경위에 대해서 물어봤는데 어딘가 수상쩍어. 혹시... 누군가에게 위협을 받아서 발리스타를 만들어야 하는건 아닐, 려나..."

 

내 추측을 들은 에길은, 순간 눈을 부릅뜨고 머리를 작게 흔들었다.

 

"아니, 그건 아닐거라 생각한다."

 

"...왜, 왜 그렇게나 곧바로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는거야."

 

"그야, 마호클은..."

 

거기서 입을 다물고, 깔끔한 형태의 스킨헤드를 왼손으로 슥슥 문지르더니, 도끼상인은 반대로 질문을 던졌다.

 

"......너희들, 그녀석이 왜 목공 세공사가 된건지 알고 있는거냐?"

 

"헤...?"

 

다시 한번 더 아스나와 동시에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고, 동시에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대로 고개를 갸웃한 아스나가, 기억을 더듬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어어, 분명... 장인 클래스의 플레이어에게, <그 길을 택하게 된 명확한 계기>란게 존재한다는 거죠? 제 친구인 대장장이(스미스)는, 정신을 차리고보니 어느샌가 되었다고 하기도 하고, 해머가 자신을 불렀었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그건 그야말로 대장장이인 리즈벳이 말할 것 같은 대사지만, 나는 쓴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겨우 참았다.

하지만 분명, 이 세계에서 장인을 자처하는 플레이어들은, <처음부터 그 길을 선택하게 됐다>는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편이다. 왜냐하면, 설령 한 번 뿐이라고해도, 도중에 스킬 구성을 변경하는것은 절대 무시할 수 없는 능력치의 저하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전투직에서 장인으로, 또는 그 반대로의 역할 변경을 택하더라도 마찬가지여서, 레벨 1부터 다시금 쌓아 나가야하는, 똑같은 고행을 해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나도 얼마전 낚시 스킬을 얻기 위해 전혀 사용하지 않던 양손검 스킬을 삭제했지만, 전투력에 전혀 영향이 없다는 걸 알고서도 결심하는데에 오랜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던가.

따라서 마호클도, 이 데스게임에 사로잡힌 이후 처음부터 목공 세공사를 목표로 삼은 플레이어다. - 반대로 말해서, 그렇지 않고서는 그만큼의 숙련도에는 도달할 수 없었을거라 생각한다.

아스나의 말을 들은 에길은, 다시 한번 더 스킨헤드를 쓰다듬으며 '그런가...'라고 신음소리처럼 말했다.

 

"뭐, 확실히 말해서, 뚜렷한 동기나 기회가 있어서 장인을 목표로 삼은 플레이어는 조금밖에 없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런거라면 내가 마호클의 개인사정을 술술 말해 줄 수는 없지..."

 

""에에---엑!""

 

여기까지 와서 그러면 안 되는거 아니냐! 라는 생각을 담은 나와 아스나의 함성에, 에길은 한쪽 눈썹을 치켜들었다.

 

"너희들, 아마 그녀석이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은데. 직접 물어보지 그러냐....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다는 걸 알려준다면 매정하게 굴지는 않을거다."

 

"저, 적어도 어떤 힌트같은 거라도..."

 

내가 물고 늘어지자, 에길은 3초동안 생각하더니,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힌트는 <크리티컬>이다."

 

 

 

 

 

11

 

에길의 상점에서 나오니, 아인크라드의 외부경계선에서 들어오는 햇살이 알게이드의 거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있었다. 이제 곧 저녁인 모양이다.

나 역시 이 도시에서 꽤오랫동안 살았었기 때문에, 나름대로의 단골집도 많이 있다. 물론 그 대부분이 NPC 상점이어서, 가게주인은 내가 몇 주동안 소식이 없더라도 전혀 마음에 두지 않겠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얼굴을 내밀어 보고 싶은 기분이 든다.

같은 생각을 하면서 내 옆을 걷고있는 아스나의 옆모습을 보자, 무슨 생각에 잠겨있는 모습이다. 마호클에 대한 것을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그게 아니면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어찌됐든, 이럴때는 맛있는 것을 먹어주는게 가장 좋은 기분전환이 된다.

 

"있잖아, 저기 근처에서 뭔가 먹고 가지 않을래?"

 

라고 말을걸자, 아스나는 깊숙이 눌러 쓴 후드 안에서 눈을 몇번 깜박이더니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뭐 먹고 싶은거라도 있어?"

 

"으-음... 모처럼 여기까지 왔으니까..."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메인 스트리트에서 좁은 골목길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내 코트를, 아스나가 휙 하고 당겼다.

 

"잠깐만... 설마하니, <알게이드집(*8권에서 키리토, 아스나, 히스클리프가 라면 먹은 집*)>에 가려는건 아니겠지."

 

"오오오, 역시 엄청난 통찰력."

 

"절, 대, 싫어!"

 

라며 아스나가 스타카토로 선언하고 전이문 광장 쪽으로 빠르게 이동하려고 했기에 이번에는 내가 아스나의 케이프 자락을 잡았다.

 

"왜, 왜 그래... 전에 아스나도 꽤나 마음에 들어했..."

 

"아니거든!"

 

아스나의 고함에 거리를 걸어가던 몇 명의 플레이어들이 뒤를 돌아봐서, 우리는 일단 도로의 구석으로 몸을 숨기고 작은 소리로 대화를 계속했다.

 

"그야, 한 달에 한 번 정도 가는건 괜찮지만, 거기서 먹을때마다 엄청 떨떠름하단 말야. 요리는 라면인지 국수인지 명확하지도 않고, 마스터도 플레이어인지 NPC인지 명확하지 않고... 오늘은 가뜩이나 여러가지 생각할 게 많이 있는데, 이 이상 고민거리를 늘리고 싶지 않아!"

 

- 한 달에 한 번이라면, 꽤 자주 가는게 아닐까.

같은 생각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고, 나는 아주 사소하게나마 저항을 시도해 봤다.

 

"그러면... 알게이드 국수 말고, 알게이드 구이나 알게이드 조림을 주문한다는 선택지도 있...."

 

"저어어얼~~, 대애애애~~, 싫어어어~~!"

 

스타카티시모로까지 선언을 해버리면, 이 이상 물고 늘어질 수가 없다.

언젠가, 아니 근시일내에, 적어도 그 가게 주인이 플레이어인지, NPC인지 확실하게 해 놓지 않으면! 이라고 다짐하면서, 나는 가볍게 양손을 들어서 항복 의사를 나타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여러가지 과일 케이크를 먹을 수 있는 카페가 근처에 있는데, 거기로 가실까요?"

 

그러자 새신부님은, 그제서야 생긋 미소를 지었다.

 

 

 

50층에서 22층으로 돌아오니, 플로어는 이미 청자색의 어스름에 휩싸여가기 시작했다.

희미해져가는 노을을 쫓아가는 것처럼 숲의 오솔길을 걸어서, 그리운 - 이라고 말해봤자 여기서 지낸지 아직 사흘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 통나무집으로 돌아왔다. 현관에서 둘이 동시에 '다녀왔습니다'라고 말하고, 거실에 들어서면서 코트와 부츠를 스토리지에 퐁퐁 집어넣자, 사르르르 하면서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후디드 케이프를 벗고 익숙한 기사복(코르사주)차림이 된 아스나도, '으으으~~~응' 하면서 소리를 크게 내고, 있는 힘껏 기지개를 켰다.

 

"하~~... 이제 막 이사왔을 뿐인데, 어쩐지 벌써 몇년이나 여기에서 살았던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내 생각과 완전히 똑같은 소감을 입에담은 아스나를 등 뒤에서 기습적으로 안아 들어올린 후, 벽난로 앞에 설치되어 있는 커다란 흔들의자에 걸터앉았다. 두 사람분의 무게가 가해져도, 그랜드 마스터인 목공 세공사 마호클이 만든 의자는 삐걱이는 소리도 내지 않았다.

기분 좋은 앞뒤 움직임에 몸을 맡긴 채, 아스나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깊숙히 숨을 들이마셨다.

 

"...아직 3일 밖에 안 됐는데, 벌써 3일이나 지나 버렸어..."

 

내가 중얼거리자, 아스나도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대고 고개를 끄덕였다.

 

"응... 어쩌면, 이 세계에 온 이후로 시간이 가장 빠르게 지나가는 느낌일지도."

 

"뭐어, 마호클 건으로 매일 여기저기 뛰어다녔으니까."

 

그 순간, 아스나는 부우우~ 하고 뺨을 부풀렸다.

 

"하지만 이유가 그거 뿐만은 아니야. 매일매일 오늘이 끝나지 않았으면 하고 생각하기 때문이니까."

 

그건 마호클과 발리스타의 수수께끼를 해명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인가... 가 아니라는 건 벽창호인 나도 눈치 챌 수 있다. 아스나의 태도에 찬성하는 뜻을 표하고자, 아스나의 몸을 감고있는 양팔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내 팔 안에 있는 가녀린 몸이 왼쪽으로 30도 정도 회전해서, 개암나무색의 눈동자가 정면에서 내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서로 아무 말 없이 잠시동안 마주보다가, 나는 오른손을 아스나의 머리 뒤쪽으로 돌려 살짝 끌어당겼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입술과 입술이 접촉하면서 느껴지는 따뜻함과 부드러움, 그리고 그 접촉감각신호 이외의 대량의 정보들이 두 아바타 사이를 오고갔다.

이 평온하고 자극적인 나날들이 영원히 계속 된다면 좋겠다. 하지만 그것은, 결단코 이루어질수 없는 소망이다.

4일 전, 22층에 이사 온 날의 밤, 나는 아스나와 약속을 했다. 100층의 공략이 끝나서 더 이상 싸울 필요가 없어지면, 성대하게 결혼식을 올리자고.

클라인, 에길, 리즈벳, 시리카, 아르고, 거기다 공략조의 여러 사람들을 초대하고, 연설은 KoB의 단장인 히스클리프에게 맡기자고. 나는 지금까지 축적 된 지식과 경험을 총동원해서 S급 식재료를 모으고, 그것을 재료로 삼아 그랜드 마스터 요리사인 아스나가 맛있는 음식을 만든다. 회장에 들어갈 거대한 테이블이나 많은 의자는 마호클에게 만들어달라고 부탁하자.

분명히 떠들썩하고 즐거운 파티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상상이 현실로 이루어질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데스게임이 클리어되면, 카야바 아키히코의 선언대로 살아남은 플레이어들은 아인크라드에서 로그아웃 되어 현실세계로 돌아가게 될 테니까. 모두가 그토록 기다리던 결말... 하지만 그 때가 정말로 오기를 바라는 것인지는, 지금의 나로서는 단언 할 수 없다.

갑자기 내 오른쪽 뺨에 따뜻한 감각이 일었다.

눈을 뜨자, 눈 앞의 하얗고 매끄러운 뺨에 투명한 물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방울진 채 떨어지는 그것은 내 얼굴로 떨어져 작은 진동을 만들었다.

 

"...아스나."

 

내가 속삭이자, 아스나는 자신이 울고 있다는 것을 그제서야 알아챈건지 "아..."하는 소리를 내고 몇번인가 눈을 깜박였다. 그래도 눈물을 계속해서 흘러내렸고, 은빛으로 반짝이면서 넘쳐흘렀다.

아스나가 기사복의 소매로 눈물을 닦으려는 것을 왼손으로 막고, 나는 아스나의 눈가에 입술을 맞췄다. 이 세계의 눈물에서 무슨 맛이 느껴지는건 아니지만, 눈물에 포함되어 있는 슬픔이 작게나마 내 가슴을 찌르는 것 같았다.

오른손으로 아스나의 머리를 어루만져주는 것을 몇 분이나 해 주었을까.

마침내 눈물이 그치자, 아스나는 가늘게 숨을 내쉬면서 나에게 몸을 기댔다. 그리고 내 귓가에 들리는 희미한 속삭임 소리.

 

"...미안해. 잠깐... 밖의 일이 생각나 버려서..."

 

아스나가 말한 '밖'은 통나무집의 밖이 아니라, 아인크라드의 밖을 말하는 것이리라. 조금 전, 저녁에 에길의 가게에서 에길의 부인에 대해 질문했을 때부터, 아스나는 계속 현실세계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도 지금 그걸 생각하고 있었어."

 

이번엔 내가 아스나에게 속삭임 소리를 되돌려주자, 팔 안에 안겨있던 몸이 움찔하고 떨렸다.

통나무집에서의 신혼생활이 끝나도, 혹은 이 세계에서 로그아웃 된다 하여도, 나와 아스나의 관계를 계속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서로 진짜 이름을 알려주거나, 연락처를 교환한다거나.. 그저 그것만 하면 된다.

하지만 이 세계에는, 아무도 입에 담으려 하지는 않지만, 예전부터 공유해오던 예전부터 하나의 징크스가 존재한다.

자신의 현실(리얼)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죽는다.

물론 그에 대한 근거는 아무데도 없지만, 우리들이 믿는 나쁜 미신 같은 것이다. 그렇게 계속 생각을 해도, 일단 한 번 금기로 인식되어버리면, 그걸 무시하는 것은 그 누구라 해도 어렵다. 우리들은 이 세계에서, 절대로 죽어서는 안 되니까.

- 우리들은 반드시 살아남아서 데스게임을 클리어하고, 그리고 현실 세계에서 다시 한 번 더 만날 것이다.

말로 전해줄 수 없는 생각이었지만, 적어도 사념에 담아 보내기 위해 나는 아스나를 꽉 껴안았다.

 

 

 

저녁에 케이크를 1인 당 두 개씩 먹어버렸기에, 저녁밥은 부이야베스(*프랑스 해산물 요리*) 풍의 스프와 니수아즈(*프랑스 니스 지방의 조리방식*) 풍의 샐러드, 바삭하게 구운 바게트를 메뉴로 해서 가볍게 끝마쳤다. 당연한 얘기지만, 니수아즈라는 이름은 금시초문이었는데, 토마토나 감자, 강낭콩, 올리브, 삶은달걀 등이 들어간 프랑스의 샐러드인 모양이다. 본고장에서는 감자도 강낭콩도 생으로 넣는 모양이지만, 아인크라드의 감자는 생으로 베어먹으면 절망적인 맛이 나기 때문에, 그걸 또 겪고 싶지는 않다.

요리가 말끔히 사라지고, 치즈를 안주 삼아 달콤한 와인을 마시면서 오늘 알아낸 것들을 다시 확인했다.

1년 하고도 조금 전, 아직 길드 <형님군단>...이 아니라, <투 핸디드 빌더즈>의 리더로 있던 에길은, 밤에 혼자서 벌목을 하면서 보냈다.

그런 에길에게, 거래상대였던 마호클이, 레어한 통나무의 수집을 의뢰 한 것이다.

마호클이 발리스타를 만들려고 하는 것은, 누군가에게 위협을 받아서가 아니라, 그녀가 목공 세공사가 된 이유와 관련이 있다.

 

"...하지만, 마호클씨는 분명히 이렇게 말했는걸. 발리스타의 콤퍼지션 레시피 때문에, 가게를 접고 몸을 숨겨야 했다, 고."

 

아스나의 그 말에, 블루치즈(푸른 곰팡이로 만든게 아니라,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 만큼 전체가 새파란 61층의 특산품)를 베어 물면서 끄덕였다.

 

"으음... 숨긴다는 말인즉, 누군가에게서, 혹은 무언가에게서...라는 거지. 발리스타를 탐내는 놈이 있어서, 그 놈에게서 도망쳤다는 것 외의 생각은 들지 않는데-"

 

"그래. 그리고, 에길씨가 말한<크리티컬>이란 힌트도 수수께끼이고..."

 

"맞는 말이야... 관계가 있다고 한다면, 나무 무기는 크리율이 높다라는 소문밖에는 생각이 안 나는걸. - 그러고보니, KoB에도 있지 않아? 나무 무기를 목숨처럼 여기는 사람."

 

"아-, 있어. 창을 사용하는데, 꼭 나무자루로 된 십자 창밖에..."

 

아스나가 거기까지 말한 순간이었다. 내 귀가, 창 밖에서 울리는 희미한 소리를 알아챘다.

파삭, 하는 그 소리는, 나뭇잎이 바람에 스치는 소리와 비슷했지만 약간 달랐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근소한 무게가 느껴지는 그것은 분명 발소리 - 누군가가 정원의 잔디를 밟은 것이다.

순간적으로, 아스나의 얼굴을 아주 가까이서 들여다 보며 양쪽의 입술 앞에 손가락을 하나씩 세웠다. 의아하다는 얼굴을 하면서도 침묵을 지키고 있는 아스나에게, 최소의 볼륨으로 짧게 설명을 해줬다.

 

"정원에 누군가가 있어."

 

"......!"

 

순간적으로 표정이 굳어지면서 새신부모드에서 검사모드로 체인지한 아스나와 함께, 흔들의자에서 소리없이 미끄러져 내려왔다. 누군가 아는 사람이 찾아온 것뿐일지도 모르지만, 그렇다면 발소리를 죽일 이유가 없고, 애초에 나와 아스나가 여기에서 살고 있는것을 아는 플레이어는, 친구나 지인을 포함해도 극소수뿐이다.

정원으로 난 남쪽 창문은 모두 커튼이 쳐져 있어서, 외부에서 실내를 들여다 볼 수 없었지만, 실내에서도 바깥을 볼 수가 없다. 당연히 문이 잠긴 플레이어 홈은 시스템적으로 침입이 불가능하기에, 만일 불순한 의도를 가진 플레이어가 정원에서 서성이고 있다고해도, 우리에게 위해를 끼칠 가능성은 없다. 하지만, 정체를 확인하지 않으면 앞으로의 휴가를 안심하고 즐길 수가 없다.

커튼에 우리들의 그림자가 비치지 않도록, 자세를 낮춘 다음 일단 거실의 북쪽에 있는 식품 저장실(펜트리)로 이동했다. 윈도우를 조작해서, 공유스토리지에서 내 애검인 <일루시데이터+45>와 아스나의 애검<램번트 라이트+32>를 꺼내서 한쪽을 건네주었다.

 

"나는 저쪽의 창문으로 나가서 집 뒤쪽으로 돌아가서 정원을 체크하고 올 테니까, 아스나는 현관쪽에서..."

 

대기하고 있어줘, 라는 말은 홀쭉한 손가락에 가로막혔다.

 

"물론 나도 갈거야. 침입자가 혼자가 아닐수도 있잖아."

 

"...뭐, 그야, 그렇지만."

 

파트너 관계를 꽤 오랫동안 그만두긴 했었지만, 1층에서부터 같이 있던 친분이 있기에 여기서 반박을 하는게 무의미하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최소한 내가 앞장 설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할 수 있도록, '그럼 뒤를 부탁할게'라고 속삭인 다음 창문 아래로 나갔다.

펜트리 안쪽벽에 설치 된 퇴창(*밀어서 열 수 있는 창*)은, 사람이 지나다니기에는 약간 빠듯한 크기이지만, 내 체격정도라면 걸리지 않고 지나갈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창을 통해 밖을 내다 보았지만, 집 뒤쪽에 펼쳐진 침엽수의 숲은 캄캄해서 만일 누군가가 숨어있다고 해도 발견하기가 어렵다. 각오를 다지고 올라가 창문을 열어젖히고, 위쪽의 창틀을 붙잡아 몸을 들어올려 발 끝까지 밖으로 나왔다. 2초 뒤, 아스나도 나보다 유연한 몸놀림으로 잔디위에 내려섰다.

서로 등을 마주댄 채 잠시동안 주위의 낌새를 살폈다.내 시야에 컬러 커서는 출현하지 않았고 부자연스러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뒤돌아서 서로 고개를 끄덕인 뒤, 벽을 따라서 살금살금 이동하기 시작했다.

잘 생각해보면, 이 통나무집에 대해 알고있는 플레이어는 <극소수>는 커녕, 불가피한 사정으로 인해 구입할 때 타이밍 좋게 있던 정보상 아르고밖에 없다. 길드 풍림화산의 리더인 클라인을 22층의 주거구까지 불러서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지만, 그 녀석과는 거기서 헤어졌으며, 게다가 집까지 우리들을 미행한다거나 하는 악취미적인 짓거리는 하지 않을 것이다.

즉, 만약에, 악의를 가진 침입자가 있을 경우, 그 녀석은 아르고에게서 이 집에 대한 정보를 샀다...라는 것도 아닐 것이다. 통나무집을 구입할 때에, 나와 아스나, 아르고 세 명이 휘말렸던 이상한 이벤트가 끝난 뒤, 그녀가 분명히 말했기 때문이다. - 이 네타는 판매하지 않고 비밀로 유지해 주겠다고.

내 추측이 틀렸기를 기도하면서 통나무집의 측면 벽면을 따라 천천히 나아가다가, 모퉁이에서 50cm정도 튀어나온 통나무의 가장자리에 숨어 앞마당의 모습을 엿보았다. 발소리 같은 것이 들린지 이미 2분 정도가 경과했기에, 노련한 침입자라면 진작에 몸을 숨겼을 터다 - 라고 생각했는데.

 

"......뭐야, 저거."

 

"......뭘까, 저건."

 

일단 통나무집의 모퉁이에서 얼굴을 철회하면서, 아스나와 동시에 중얼거렸다. 오인한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 다시 정원을 보았지만 역시 그것은 그곳에 서있다.... 아니, 앉아있다.(*전자의 있다[ある]는 물건, 후자의 있다[いる]는 생물이나 사람에 쓰이는 차이가 있으나 한글로는 직역이 힘들어서 그냥 편의대로 바꿨습니다.*)

집을 구매한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제대로 커스터마이즈가 되지 않아 잔디만 펼쳐져 있을뿐인 정원의 중앙에서, 양반다리를 한 채 주저앉아 있는 한 사람의 플레이어. 외부경계선에서 들어오는 별빛과 커튼너머로 비치는 벽난로의 빛이 있어서 그럭저럭 디테일을 식별할 수 있었다. 남자... 몸집이 상당히 크고, 방어구는 천이 메인, 그리고 무기는 왼팔로 안아 세워둔 굵은 장병무기(폴암).

 

"저 사람, 우리 집 마당에서 뭘 하는거야? 저 무기는 또 뭐고?"

 

아스나가 다시 중얼거렸기에, 나는 아는 범위에서 대답해줬다.

 

"자고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 하는데... 무기는... 창은 아닌 것 같고. 양손 둔기(쿼터 스태프)인가?"

 

"희귀한 무기네..."

 

라는 코멘트에, 찬성을 표했다.

장병무기의 메리트는 첫째로 사거리, 둘째로는 관통력, 셋째로 디버프 성능이다. 그러나 무기의 끝부분이 금속이 아닌 쿼터스태프는 관통력에서 단검보다도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며, 기본적으로 중앙부를 쥐기위한 간격도 그리 길지 않다. 다른 장거리 무기들과 비교해봐도, 디버프가 있는 소드스킬이 특히 많은것도 아니다.

따라서 현재의 아인크라드에서 완전히 취미용 무기로 취급되는 물건을 안고 있는 커다란 남자는 다시 2분이 지나도, 정원 한가운데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설마, 자고 있는 건 아니겠지?"

 

"나도 그런 생각이 드는데..."

 

나를 올려다보며 고개를 끄덕인 아스나가, 작게 몸을 떨었다. 잠옷 위에 숄을 걸치기만 한 차림으로는 늦가을의 밤바람은 꽤 차가울 것이다. 이 세계에서 몸을 차갑게 해도 감기에 걸리거나 하지는 않지만, 어느 한도를 초과하면 HP가 감소하고, 재채기도 나온다.

정원에 당당히 앉아있는 침입자를 집주인 둘이 그늘에서 들여다 보고 있는 이 상황이 점점 바보처럼 느껴진 나는, 결심을 하고 중얼거렸다.

 

"가보자. 달리 동료가 있는 느낌도 없고."

 

"그러자."

 

고개를 끄덕인 아스나가 벽까지 물러서서 윈도우를 열고, 평상시의 풀장비로 체인지했다. 나도 실내복에서 검은색 가죽 롱코트로 갈아입은 다음, 다시 검을 꽉 쥐었다. 아스나와 살짝 아이콘택트를 한 후, 모퉁이를 돌아 앞마당으로 나섰다. 양손 둔기 남성을 향해서 나선 다리가 잔디를 밟아서 사각하는 SE(사운드 이펙트)를 발생시킨 그 순간.

양반다리를 하고 고개를 숙인 채 앉아있던 침입자가, 번쩍 두 눈을 떴다. 왼팔의 무기를 버팀목삼아 순식간에 일어나더니, 우리들의 몸을 조준했다. 이쪽도 반사적으로 주먹을 쥐었고, 등에 장비한 애검의 손잡이로 오른손을 가져갔다.

하지만 나도, 그리고 아스나도, 검을 뽑기 직전에 손을 멈췄다. 10m정도 떨어진 곳에 서 있는 커다란 남성이, 말도 없이 조용히 고개를 숙였기 때문이다. 약 3초정도 지난 뒤, 숙였던 얼굴을 다시 들어올리더니, 생기있고 굵은 목소리가 울렸다.

 

"야심한 밤에 멋대로 찾아와서, 정말이지 실례가 많소."

 

...이녀석, 꽤 위험한 놈이 나타난 게 아닐까.

라고 생각하면서, 인사를 생략하고 질문을 바로 던졌다.

 

"사과를 하기전에, 네가 누구인지, 그리고 왜 우리집 정원에 앉아있는건지를 설명해 줬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말하면서 약 3m정도를 다가가자, 그제서야 남자의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커다랄 거라고 예상한 신장은 에길에게 미치지는 못했지만, 대략 180cm를 넘어갔다. 그 거구를 일본식 복장과 하카메로 감싸고 있었고, 신고있는 것도 짚신처럼 보이는 샌들이다. 딱딱하게 보이는 얼굴에는 긴 흰색 머리띠를 두르고 있다. 무기는 왼손에 쥐고 있는 양손 둔기뿐.

굵은 눈썹 아래의 가는 눈으로 나를 똑바로 응시하면서, 남자는 자신의 이름을 댔다,

 

"나는 타이코쿠라고 하는 사람이오. <검은 검사>에게 궁금한 것이 있어 이리 방문을 하게 됐소."

 

그 순간, 바로 내 옆에서 아스나가 찌릿하는 낌새를 풍겼다. 타이코쿠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 남자는, 이곳이 우리 집이라는것을 알고서 찾아온 것이다. 아르고가 이 남자에게 우리의 거처에 대한 정보를 팔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다. 만약 그 이외의 방법으로 이 집을 찾아낸거라면, 복장이나 언행과 별도로 경계할 필요가 있다.

 

"...어떻게 이곳이 <검은 검사>의 집이라는걸 알고 찾아온거죠?"

 

이번에는 아스나가, 몇 분 전까지와는 다른 부단장 모드로 돌변해서 질문을 던졌다. 타이코쿠는 고개를 약간 움직이더니 잠시 침묵을 가지다가 답했다.

 

"매우 미안하지만, 그것도 협상재료로 삼아야 해서 말이오."

 

"협상재료...?"

 

"나와의 승부를 부탁하오. 키리토. 만약 내가 진다면, 이 곳을 알아낸 방법을 포함해서 무엇이든지 이야기해 주겠소. 하지만 내가 이긴다면, 그쪽이 나에게 알려주었으면 하는게 있소."

 

질문을 던진 아스나가, 순간 목구멍속에서 이상한 소리를 냈다. 아마도 <그쪽>이라는 언짢은 말이 급소를 찌른 모양이다. 그렇지만 승부라는 뒤숭숭한 단어로 상쇄되었는지, 곧바로 긴장하는 기색이 돌아왔다.

나는 가볍게 헛기침을 하고, 다시 한번 더 물어보았다.

 

"그럼, 이정도는 공짜로 가르쳐 주겠지. 당신의 가고시마 말투는 진짜인거야? 그리고 왜 문에다 노크를 하지 않은건데?"

 

"그건... 아쉽지만 가짜요. 사쓰마는 커녕 큐슈에 간 적도 없소"

 

"그, 그래..."

 

"그리고, 노크를 하지 않은 이유는... 여기가 정말 검은검사의 집인지 아닌지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오. 내 기척을 알아채고 밖으로 나온다면 진짜, 깨닫지 못한다면 가짜라는 것일테니."

 

진지한 얼굴로 그렇게 단언하는 타이코쿠를 응시하면서, 나는 방금 전의 평가를 약간 수정했다.

- 이녀석은 <꽤 위험한 놈>이 아니라 <정말로 위험한 놈>이다.

나도 시스템 외 스킬 <초감각(하이퍼센스)>의 실존 여부를 60%정도 믿는 사람이지만, 자신의 <기척>으로 다른 사람을... 그것도 실내에 있는 플레이어를 불러내보자는 생각을 해본적은 한 번도 없다. 결국 이 아인크라드는 디지털코드에 지배당하는 가상세계이기에, 본격적인 오컬트 현상이 성립될 여지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으응...?"

 

오컬트라는 단어가 뇌리에 떠오른 순간, 나는 창을 통해 삐져나온 불빛에 어렴풋하게 보이는 타이코쿠의 몸 전체에 다시 시선을 뻗었다.

왼손의 쿼터스태프는, 전체가 나무로 되어있어서 금속파츠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기모노풍의 방어구도 거의 천으로 되어있다. 긴 장갑(코테)과 무릎보호대는 가죽이겠지만, 역시 금속으로 추정되는 빛은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까지 집요할정도로 금속장비를 배제하는 패거리들에 대해 짚이는 부분이 있다.

 

"타이코쿠씨, 당신 크리러... 크리티컬 원리주의자야?"

 

내 질문에 몸집이 큰 남자는 처음으로 표정다운 표정을 보였다. 폭넓은 입술끝을 작게 들어올리고 쿼터스태프의 끝부분을 잔디밭에 푹 하고 찌르더니-.

 

"그 호칭은 듣기 싫어하니, 회심도라고 불러주시오."

 

""회, 회심도...?""

 

목소리를 높여 단어를 다시 반복하는 우리들에게, 타이코쿠는 쿼터스태프, 아니, 6척의 봉의 끝부분을 슉하며 내밀었다.

 

"새삼스럽지만, 다시금 부탁하겠소. 키리토, 나와의 듀얼에서 그쪽이 진다면 알려주기를 바라오. 유니크 스킬 <이도류>의 해제 조건과... 회심도의 우두머리인, 마호클씨의 행방을."

 

정원에 갑자기 나타난 정체불명의 장거리 무기 사용자·타이코쿠의 입에서 나온 요청은, 나에게 가짜 사쓰마 말투의 수상함을 순식간에 잊게할 정도의 충격을 주었다.

현재, 아인크라드에서 나 이외의 습득자가 없을것으로 여겨지는 <이도류>의 해제조건을 가르쳐달라는 요구의 뻔뻔함은 물론이고, 빙글빙글 소용돌이 모양의 안경을 낀 목공 세공사·마호클이, <회심도> - 즉, 크리티컬 원리주의자들의 리더라는 말은 갑자기 믿기 어려운 말이다.

크리러들에 대해 말하자면, 데스게임이 시작된지 2년 가까이 지났음에도, 아직도 공략조에 참여하지 않은 채, 아인크라드의 어딘가에 있다는 비밀 수행공간에서 오로지 크리티컬 기술의 연마만을 계속하는, 좋게 말하면 금욕주의자, 나쁘게 말하면, 이기적인 구도자들의 집단이라 할 수 있겠다.

그 비밀주의의 모습은, 올해 8월에 궤멸한 PK길드 <래핑코핀>조차도 상회한다고 알려져 있으며, 놀라운 솜씨를 지닌 정보상인 <생쥐> 아르고 조차도 크리러들이 결성한 길드의 이름조차 밝혀내지 못하고 있는것이 현 실정이다.

두 눈과 입을 약 2초 동안 벌린 나는, 다시 타이코쿠라고 자칭한 거인 남성의 컬러커서를 확인했다. 아직까지 자기 입으로만 소개를 했기에 아바타 위의 녹색 커서에 이름이 표기되어 있지 않지만, 길드에 들어가 있다면 표시되어야 할 길드 태그도 존재하지 않았다.

 

"...당신, 길드에 들어가지 않은거야?"

 

나의 질문에, 타이코쿠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회심의 기술을 닦는데에, 길드 같은 것은 필요없소."

 

즉, 크리러들은 시스템상으로 길드를 결성하지 않았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평소에 교류가 있는 플레이어가, 몰래 크리러, 아니, 회심도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경우가... 있을지도 모른다. 타이코쿠의 기척을 알아채기 전에 아스나와의 대화에서 화제가 되었던, KoB의 나무자루의 창을 주로 사용하는 녀석도 혹시나-.

 

"잠깐, 당신."

 

두서없는 내 생각을 평소보다 약간 뾰족한 말투의 아스나의 목소리가 깨부쉈다.

 

"이런 시간에 갑자기 다른 사람의 플레이어홈에 쳐들어와서 듀얼을 거는것도 모자라, 자기가 이기면 가장 중요한 정보를 두 개나 알려달라는건 너무 뻔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우선 물어보겠는데, 당신이 진다면, 그와 상응하는 가치를 지닌 정보를 알려주는거겠죠? 방금전에 말했던 여기가 <검은 검사>의 집이라는 걸 알았다는 이유만으로는 도저히 수지가 맞지 않아요."

 

역시나 최강길드 KoB의 부단장이라는 생각이 들만큼 만만찮은 교섭술에, 타이코쿠가 커다란 눈썹 아래에서 눈이 몇번 깜박였다.

 

"흠... 그렇다해도, 우리들도 유니크 스킬의 정보는 알고 있는게 없구려."

 

당신, 그냥 어거지로 그 말투 쓰는 것 뿐이지!

라고 태클을 넣고 싶은 걸 참고, 나는 상대방의 슬로우 템포의 수다에 귀를 기울였다.

 

"어울리는지는 알 수 없으나, 대신에 이걸 양보해 드리겠소."

 

그렇게 말하고 윈도우를 연 타이코쿠가 실체화 시긴것은, 한 자루의 장검이었다. 칼집도 자루도 수수한 갈색이어서, 솔직히 말해 외형만으로는 그다지 레어도가 높은 아이템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지면에 꽂아두었던 양손 둔기에서 왼손을 때고 - 그러고도 목재 둔기가 쓰러지지 않는 것은 무기 자체의 고유능력 덕분인건가, 그게 아니면 주인의 재주인건가 - 타이코쿠는 검을 자루에서 뽑았다. 자루와 같은 색깔의 검신을 본 그 순간, 나는 그 검의 특수성을 깨달았다.

 

"그거... 혹시 목검인가?"

 

"예스라 하겠소."

 

점점 더 수상한 사쓰마 말투로 긍정하자, 타이코쿠는 짙은 갈색의 칼을 높이 들었다. 달빛이 칼날에 반사되어 번쩍하고 둔하게 빛이났다.

 

"목검이라고해도, 이건 단순한 훈련용 검도, 무딘 것도 아니오. ATK의 수치같은 경우 620... 크리티컬 보너스는 내가 아는 한 한손검 중에서 최대라 할 수 있소."

 

"헤, 헤에..."

 

620이나 되는 공격력은, 내 애검인 일루시데이터+45의 700 오버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렇다해도 충분히 강력한 수치이며, 크리티컬 보너스인지 뭔지 하는것도 신경쓰인다.

 

"........."

 

나는 말없이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동시에 아스나도 이쪽을 쳐다보았기에 잠시동안 말없이 서로 눈이 마주쳤다. 개암나무색 눈동자 안에 담긴 '어쩔 수 없네, 정말.' 이라는 표정이 보여서 이쪽에서는 '미안해'라는 텔레파시를 보낸 다음, 내 시선은 다시 타이코쿠를 향했다.

 

"...알겠어. 그 승부, 받아들이겠소.... 아니, 받아들이지."

 

"고맙소."

 

느리게 고개를 숙인 둔기 사용자는, 목검을 칼집에 집어넣고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잔디밭위에 내놓은 우드테이블로 다가가 그 위에 검을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곧바로 돌아와, 자세를 똑바로 잡은 뒤, 양손 둔기를 커다란 손으로 쥐었다.

다시 윈도우를 열고 조작하던 손가락을 멈추고는-.

 

"듀얼의 룰은 초격 종료로 해도 되겠소?"

 

"아아. 반감 결착으로 해도 상관없지만."

 

내가 생각없이 너무 까불었는지, 아스나가 내 오른쪽 팔꿈치를 쿡 찔렀고, 동시에 타이코쿠도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 그건 권하고 싶지 않소. 잘못된 곳에 맞기라도 한다면 댁을 죽이게 될지도 모르니 말이오."

 

"...헤에..."

 

한없이 진지한 타이코쿠의 얼굴을 보고, 나는 <재미삼아 둔기를 사용한다>라고 생각한 첫인상을 고쳤다.

아주 먼 옛날 - 훨씬 아래층인 3층에서, 반감 결착모드로 듀얼을 했던적이 있다. 적의 의도를 깊게 생각하지 않고 받아들였던 그 결투에서 나는 하마터면 죽을뻔 했었다. 적의 목적은 이쪽의 HP를 절반 바로 직전까지 아슬아슬하게 깎은다음, 고위력의 소드 스킬을 크리티컬로 명중시켜 남은 HP의 잔량 전부를 날려버리는 것이었다.

그 당시와 비교했을때 지금의 내 HP는 몇배나 늘어났으나, 플레이어의 능력치와 무기의 스펙도 올라가 있으니까, 반감 결착 모드에 있는 일격에 죽어버릴 수도 있는 위험성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그 사실을 일부러 경고해준 것은, 타이코쿠가 그때의 도끼를 쓰던 녀석처럼 <듀얼PK>가 목적이 아닐거라고 확신해도 괜찮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자신의 기술에 대해 절대적인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그럼, 초격 종료 모드로."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인 타이코쿠가, 글러브 같은 손에 어울리지 않는 매끄러운 움직임으로 윈도우를 조작하더니, 듀얼 신청을 걸어왔다. 조건을 확인하고 수락하자, 컬러 커서에 [Taikoku]라는 문자열이 표시됐다.

 

"정말이지... 무리하지마."

 

그렇게 속삭인 아스나가 집의 현관 입구까지 물러났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왼손으로 세검의 검집을 잡은 채로 있는 건 뭔가 일이 생기면 즉각 개입하려는 것이리라. 눈짓으로 '괜찮아'라는 뜻을 전해준 뒤 애검을 빼들어 검집을 멀리 떨어진 곳으로 던진 뒤 오소독스(정통적인)한 중단자세를 잡았다.

30초의 카운트다운이 지나는 동안, 나는 평소와 똑같이 상대방을 관찰해서 첫 공격의 궤도를 추측하려고 했다. 그러나 둔기 사용자는, 왼손으로 양손 둔기를 잔디에 꽂아 세워둔 채 인왕상처럼 우뚝 선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저런 자세로는 방어, 혹은 공격을 하려고 해도, 무거운 나무 둔기를 집어올린 다음 자세를 잡는 두번의 동작이 필요하다. 듀얼 개시와 동시에 둔기가 없는 오른손쪽으로 돌진공격을 박아 넣는다면 그걸로 끝날거라고 생각했으나, 일주일 정도 전에 듀얼을 했던 KoB의 중견 멤버 - 로 가장해서 속이고 있던 래핑코핑의 잔당이자 양손검을 쓰던 크라딜과 달리, 서 있는 모습은 매우 묵직하고 침착해 보인다.

내 생각대로 타이코쿠의 우반신의 틈은 나를 끌어들이기 위한 미끼인 것 같다. 남은 시간은 이제 10초밖에 없는데도, 아직 망설임이 사라지지 않은 것은, 혹시 지난 3일동안 지냈던 아스나와의 달콤하고 안락한 생활때문인걸까... 아니, 그게 아니다. 타이코쿠라는 남자의 분위기가, 지금까지 듀얼을 해왔던 그 어떤 플레이어와도 다르기 때문이다. 굳이 말하자면, 크라딜과의 듀얼 이튿날에 있었던, 많은 관중들 앞에서 싸웠던 KoB의 단장인 히스클리프와 비슷한 느낌이다. 그 듀얼에서의 패배가, 나에게 망설임을 주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이런 때의, 베스트는 아니지만 차선으로 현명한 선택은, 이쪽도 움직이지 않고 상대방의 반응을 살피는 것이다. 남은 시간은 이제 3초, 2초, 1초....

제로.

를 가리키는 숫자가 빛남과 동시에, 나는 있는 힘껏 지면을 걷어찼다. 타이코쿠에게, 그 자세에서 내 돌진 공격을 카운터 칠 수 있는 방책이 있다면 그것을 보고싶다. 현명한 수가 아닌것은 충분히 알고 있지만, 지난 2년동안 내 두뇌의 명석함만으로 살아 남은것은 아니다.

발동시킨 것은, 크라딜과의 듀얼때와 같은, 돌진도약기술 <소닉리프>. 다만, 발동과 동시에 검을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바꿔쥐어서 왼손잡이용의 미러모션으로 타이코쿠의 오른팔을 노렸다.

당연히 팔은 크리티컬 포인트는 아니지만, 상대가 장비하고 있는 것은 일본식 천 방어구이다. 만약 안에 사슬이나 다른 무언가를 껴입었다고 해도, 무게를 충분히 강화시킨 내 일루시데이터+45라면, 어설픈 금속 방어구 따위는 꿰뚫어버리고 첫 공격으로 결판을 낼 수 있는 충분한 타격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압!"

 

짧은 기세를 발하면서, 나는 검을 타이코쿠의 오른쪽팔에 내리치려했다.

그 직전에, 둔기 사용자는 다시 왼손을 양손 둔기에서 떼더니, 철봉을 거꾸로 오르는 것 같은 포즈로 양팔을 접더니 자기 몸 앞에 두었다.

 

"우랴아아아!!"

 

정원의 나무가 떨릴정도의 고함과 함께, 타이코쿠의 전신에서 회색빛의 라이트 이펙트가 발생했다.

나는 이 모션을 본 적이 있고, 나 자신도 사용할 줄 안다. 체술스킬의 상위 기술인 <강련>이다. 온몸의 방어력을 1초 동안이지만 풀 플레이트 아머 이상으로 올려준다. 그렇지만 발동조건이 엄격해서, <장비조건완화> Mod를 올리더라도 몸의 방어구는 천계열만 있어야 하며, 게다가 양 손이 모두 자유롭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다. 목재 둔기를 지면에 세우는것이 가능한, 무기 또는 타이코쿠 본인의 특수능력이 있어야만 비로소 가능해지는 방법이다.

- 과연, 이렇게 나오시겠다.

그 찰나의 시간동안, 나는 순식간에 대처법을 정했다. 여기서 소닉리프를 캔슬한다면, 나에게 경직 페널티가 발생하는 동안 타이코쿠가 양손 둔기로 나를 후려쳐서 듀얼이 끝나버릴 것이다. 그렇다면 내 선택은 오로지 하나 - 나 자신과 애검을 믿고, 강철로 변한 타이코쿠에게 풀파워의 일격을 먹이는 것 뿐이다.

호흡을 멈추고, 소닉 리프의 궤도에 팔의 움직임과 몸의 비틀기에 발생한 가속을 추가로 더했다. 시스템 외 스킬, <위력 부스트>.

일루시데이터의 칼날이, 타이코쿠의 억센 어깨로 빨려들어가듯 히트했다.

하늘색과 회색의 이펙트 라이트가 섞여서, 눈부실만큼의 빛이 생겨났다. 강렬한 반응. 커다란 나무처럼 묵직하게 뿌리를 내린 타이코쿠의 커다란 몸이 기우뚱거리며 뒤로 넘어갔다.

시야의 가장자리에 보이는 HP바는, 불과 3%정도 줄어들었을 뿐이다. 이 정도로는 첫 공격에 결판이 날 만큼의 조건이 만족되지 않는다. 그러나 나의 혼신의 일격은 둔기 사용자를 근소하게나마 넉백시켰고, 타이코쿠가 노리던 <강련>을 이용한 노타임 카운터 공격을 봉쇄했다.

지면에 착지한 내가 기술후에 생기는 경직(스킬딜레이)에서 풀려나는 것과, 자세를 회복한 타이코쿠가 양손 둔기를 잡은것은 거의 동시였다.

여기부터는 이제 영거리에서 치고받는 수싸움이다. 먼저 실수하는 쪽이 패배하는 것이다.

 

"츠아압!!"

 

목재 둔기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 듯한 날카로운 찌르기가 내 목덜미로 날아왔다. 가벼운 무기라면 패리해서 쳐낼 수 있겠지만, 양손 둔기라면 잘못하면 내가 당할지도 모른다. 백 대쉬와 스웨이로 피하려고 했지만, 막대의 끝이 내 예상보다 길게 늘어나서 힘껏 뒤로 젖힌 목덜미의 연골 부근이 찌릿하고 뜨거워졌다. 종이 한 장 차이로 어떻게든 몸을 돌려서 피하고, 나는 양손 둔기의 약점과 한손검의 장점을 활용하는 작전으로 나섰다.

쿼터 스태프계열 무기의 약점은, 칼날이 붙어있지 않다는 것이다. 타이코쿠의 양손 둔기는 단면이 오소독스한 원형이 아니라 팔각형 모양이긴 하지만, 단순히 접촉 하는것만으로 대미지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은 변함이 없다. 그리고 한손검의 장점은 당연히, 반대쪽 손(오프핸드)이 자유롭다는 것. 보통은 반대쪽 손에 방패를 착용하지만, 나처럼 비워둔다면 체술스킬이나 투검스킬의 기술을 사용할 수 있고, 이런 짓도 할 수 있다.

양손 둔기가 목 근처에서 멈추는 순간, 나는 왼손으로는 둔기의 표족한 끝 부분을 잡고, 오른쪽으로 몸을 피하면서 있는 힘껏 잡아당겼다. 기술을 사용하느라 무게중심이 앞쪽으로 쏠려있던 타이코쿠가 제대로 힘을 쓰지못하고 앞쪽으로 고꾸라졌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양손 둔기의 표면을 따라 미끄러지듯 일루시데이터를 내질러서 상대의 오른손을 노렸다. 규정 대미지까지 도달한다면 그걸로 내 승리가 결정되어 듀얼이 끝날것이고, 규정 대미지까지 미치지 못한다 해도, 오른손에 부위 결손 대미지를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내가 우위를 가진다.

 

"느오아앗!"

 

고함을 지른 타이코쿠가, 감전이라도 걸린 듯한 움직임으로 양손 둔기에서 오른손을 뗐다. 그러나 그 대응도 내 예상범위 안이다. 나는 한 걸음을 더 앞으로 디뎌서, 목재 둔기의 아랫부분을 쥔 왼손으로 목표를 바꿨다. 그 손까지 둔기에서 놓지는 못할 터 -

 

"느으음!"

 

다시금 목소리를 높인 타이코쿠의 옷소매에서 삐져 나온 왼팔이, 순간적으로 굵기가 더 굵어진 것 같았다. 삐걱이는 것 같은 소리는 무시무시한 악력이 가해진 양손 둔기의 비명인건가.

내 발바닥에서 딱딱한 지면의 느낌이 사라졌다. 타이코쿠가 왼손 하나로 자신의 무기와 나를 번쩍 치켜올린것이다. 거짓말, 이라고 뇌 속에서 급하게 외치며 나무 곤봉을 잡고있던 내 왼손을 서둘러 놓았지만, 공중에 떠있는 잠시동안에는 옆으로도, 뒤로도 움직일 수 없다.

순간적으로 되돌린 목재 둔기를 다시 양손으로 잡은 타이코쿠는 지금까지보다도 커다란 최대 볼륨으로 포효를 내질렀다.

 

"맞아라아아----앗!"

 

내 몸을 노리고 붉은 빛 섬광을 띈 목재 둔기가 맹렬히 파고들었다. 기본 찌르기 기술이겠지만 저걸 제대로 맞는다면 듀얼이 확실하게 끝날 것이다. 패리도, 스웨이도 불가능. 소드스킬을 요격하려면 이쪽도 소드스킬을 사용하는 수밖에 없지만, 이렇게 몸이 떠 있는 상태에서는 그것도......

아니다. 아직 손, 아니, 다리가 있다.

나를 향해 급박하게 다가오는 목재 둔기의 끝부분을 바라보면서 나는 몸을 있는 힘껏 뒤로 젖혔다. 왼발만이 잡아당겨지는 감각, 그리고 한계까지 늘어난 보이지 않는 고무가 터져나가는것처럼 왼발을 바로 위쪽을 향해 쏘아올렸다. 체술 스킬의 후방 공중 회전 발차기 <현월>.

타이코쿠의 찌르기가 내 가슴에 닿기 직전, 부츠의 발끝이 양손 둔기의 아래쪽을 가격했다.

까아앙! 하는 속시원한 사운드가 올려퍼지면서 내 발차기가 양손 둔기를 솟구쳐 올렸다.

 

"무으음!"

 

둔기 사용자는 굵은 신음을 내면서도, 목재 둔기의 움직임을 거역하지 않은 채 그대로 머리위로 번쩍 치켜올렸다. 억지로라도 막대기를 원래대로 되돌리려 했다면 나도 다리부터 착지해서 자세를 다잡을 시간을 벌 수 있었을텐데, 다소 의외긴하지만 듀얼 감각이 좋은 듯 하다. 이대로라면 타이코쿠가 다음번 기술을 발동시키는 쪽이 빠르다.

시야 하단에서, 번쩍 치켜든 목재 둔기가 화염과 비슷한 이펙트 빛으로 둘러싸이는것을 보고 나는 각오를 다졌다.

타이코쿠가 쓰려고 하는 기술이 연속기라면, 내 상황이 난처해진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언동이나 싸움방식을 보고 추측컨대, 저 공격이 연속기가 아니기를 빌면서, 오른손을 빠르게 위로 치켜들었다.

공중제비를 끝내고 두 발이 잔디에 닿는 그 순간, 목재 둔기가 굉장히 커다란 소리를 내지르면서 내리꽃아지고 있었다. 나는 왼손과 비어있는 오른손을 꽉 움켜쥐면서 허리를 낮춰 몸 앞쪽으로 끌어당겼다.

 

"우랴아----앗!"

 

타이코쿠의 흉내를 내려는것은 아니지만,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외친 나의 전신을 탁한 은빛의 광택이 감쌌다. 체술스킬 방어기술, 강련.

발동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나는 공중에서 검을 내 위쪽으로 던졌다. 그리고 지금 내가 장착하고 있는 것은 실내복 용도의 면셔츠와 면바지.

양손둔기는, 강철로 변한 내 정수리를 아주 강하게 내리 찍었다. 유난히 눈부신 섬광과 귀를 찢는 듯한 커다란 폭발음. 여기서 발생한 - 진짜 크리티컬!

이를 악문채 버티는 내 시야 왼쪽상단에서, HP바가 깎이고 있다. 5퍼센트... 7퍼센트... 이게 10퍼센트를 넘어간다면 강공격 히트로 인정 받아서 내가 듀얼에서 지게 될 것이다.

천천히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시간속에서, HP바는 조금씩, 계속 줄어들더니 약 9.5퍼센트 정도까지만 깎이고 멈췄다.

강련이 풀리는 순간, 나는 오른손을 바로 위쪽으로 뻗어서 떨어지는 일루시데이터를 잡았다. 그 상태 그대로 기술 이후의 경직상태에 바진 타이코쿠의 왼쪽어깨를 내리쳤다. 슈욱! 하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진홍빛깔의 대미지 이펙트가 뿜어져나왔다.

통상공격이었지만, 충분히 갈아진 마검의 칼날이 거인의 HP에서 정확히 10퍼센트를 빼앗았다. 승리자의 이름이 우리들의 머리위에 나타났지만, 그것을 보지도 않고 타이코쿠가 힘이 풀린듯 오른쪽 무릎을 땅바닥에 꿇었다.

잔디밭에서 칼집을 집어들어 검을 집어넣자, 아스나가 현관에서부터 달려왔다.

 

"됐다아!"

 

천진난만한 함성과 함께 나를 향해 손을 내밀자 짝 하고 하이파이브를 나눴다. 다른 사람만 없다면 양손으로 아스나를 번쩍 끌어안고 빙글빙글 돌았을테지만, 일단은 참아두기로 했다.

하지만 금욕적인 구도자에게는 하이파이브만으로도 충분한 위력이 있었는지, 멍하니 서있기만 하던 타이코쿠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더니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싸우기 전부터 큰소리만 쳤을뿐인지도 모르겠소..."

 

 

 

패배를 인정한 둔기 사용자를 통나무집으로 초대했다. 구입한지 얼마 되지않은 다이닝 테이블에 마주보고 앉자, 아스나가 숨겨두고 있던 비장의 차를 내왔다. 아인크라드에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홍차 같은것이 아니라, 색깔, 맛, 향기 모든 것이 녹차에 가까운 그것을 타이코쿠는 맛있다는 듯이 후루룩거리며 들이마신 뒤, 조용히 숨을 내쉬고 말했다.

 

"...대단하다, 라고 밖에는 못 하겠소. 나도 듀얼에 있어서는 조금 자신이 있었는데, 설마 그 상황에서 검을 던질줄은..."

 

"그쪽이 먼저 선보였었으니까. 그, 손을 놨는데도 무기가 넘어지지 않은건 어느쪽의 특수능력이야?"

 

"내 쪽이오."

 

살짝 웃은 뒤, 이번에는 짧게 숨을 내쉬면서, 테이블의 오른쪽으로 눈을 돌렸다. 내가 시선을 돌린 곳에 놓여져 있는것은, 타이코쿠가 승부에서 내기로 걸었던 나무로 만들어진 한손검.

 

"약속한대로, 이것은 그대에게 드리겠소. 그리고, 내가 집을 찾을 수 있던 방법에 대해서는... 키리토 당신, 추적 스킬은 취한 것이오?"

 

"아아, 취한... 가지고 있는데..."

 

"허나, 스킬의 숙련도는 아직 1000이 안 되는 것 같소만?"

 

"으, 응."

 

그러자 타이코쿠는 웃음을 살짝 내비치더니 조금 자랑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추적 스킬과 감정 스킬을 완전습득하게 된다면, <물품 추적>의 Mod를 취할 수 있게 되오."

 

"물품추적...?"

 

들어본 적이 없는 이름에 무심코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그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한게, 추적 스킬은 솔로플레이어가 아니라면 대부분은 습득하지 않는 마니악한 스킬이고, 마찬가지로 감정 스킬도 거의 상인 전용이라고 말해질 정도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두 스킬 모두 숙련도를 올리는 작업이 매우 귀찮기에 둘 중 하나라도 완전습득한 플레이어가 과연 몇 명이나 있을런지. 내 추적스킬 숙련도는 960정도인데, 그것도 솔로로 지내던 시절에 심하다 싶을 만큼 레어몬스터의 행방을 쫓아다녔기에 이만큼이나 오른것이지, 부상을 당한 몬스터를 놓칠 가능성이 낮은 파티 플레이를 계속하고 있었다면 500 전후의 숙련도가 한계일 것이다. 감정 스킬에 이르러서는, 내 가까이에 도끼 전사 겸 상인인 에길이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습득할 생각도 없었지만, 그런 에길이라도 아직 완전습득까지는 이르지 못 했을 것이다.

 

"...그렇단 말은, 당신은 추적 스킬이랑 감정 스킬 둘 다 완전습득했다는 거야?"

 

진심으로 감탄하면서 이렇게 물어보았지만, 타이코쿠는 담백하게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니, 내가 아니오."

 

주륵, 하고 의자에서 미끄러질 뻔 했지만 가까스로 버틸 수 있었다. 생각이 둔화되어버린 나를 대신해서, 아스나가 질문을 입에 올렸다.

 

"즉, 추적 스킬과 감정 스킬의 콤퍼지션 Mod가 <물품 추적>이라는 건가요? 하지만, 그걸로 어떻게 이 집을...... 앗."

 

작게 비명을 지르더니 왼손을 다이닝 테이블의 반들거리는 상판에 가져다댔다.

 

"혹시... 이건가요? 이 테이블을 추적해서 여기까지 이르렀다는...?"

 

"그렇소."

 

정중하게 고개를 끄덕인 타이코쿠는 의자위에서 거구의 허리를 폈다.

 

"이렇게 된 이상,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겠구려. 내가, 아니, 우리들이 마호클을 찾아다니는 이유를..."

 

 

 

30분후.

통나무집의 정원에서, 코랄마을까지 타이코쿠를 배웅한 나와 아스나는 어느샌가 얼굴을 마주보고 있었다.

갑자기 휙하고 앞으로 양발 점프를 하더니 두 팔로 내몸을 감고 힘을 주었다. 신장이 거의 차이가 나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밀착을하면 필연적으로 이마끼리 부딫치게 된다.

 

"가... 갑자기 왜 그래?"

 

"으-음, 어쩐지 여러가지 생각이 들어버려서. 키리토군, 역시 싸우고 있을 때 즐거워 하는구나 라던가... 그래도 듀얼은 그다지 보고 싶지 않은데, 라던가... "

 

"....그렇구나."

 

나도 갸냘픈 몸을 안아주었고, 가까이에 있는 개암나무색의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미안, 듀얼을 하기전에 적어도 한마디는 의논을 하고 했어야 했어. 어쩐지 그녀석의 페이스에 말려드는 바람에..."

 

"후훗, 여러가지로 굉장한 사람이었지. 나말야, 현실세계에서도 저렇게까지 심한 가고시마 말투는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소."

 

"나도 들어 본 적이 없소. 뭐어, 그 사람이 말한게 맞다면 어차피 가짜겠지만."

 

잠깐동안 작게 웃고나서, 아스나에게 가볍게 키스를 해 주고 껴안고 있던 몸을 풀었다.

타이코쿠의 설명을 듣고나서, 요 3일동안에 쌓인 다양한 수수께끼들은 거의 해명이 됐다. 하지만 아직 한 가지 모르는 것이 있다.

자기가 이끌고 있던 진정한 크리티컬을 추구하는 집단, 그 이름하여 <회심도>에서 이탈해 사라진 마호클은, 이탈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노포(발리스타)를 왜 만들려 하고 있는 것인가.

외부인인 나와 아스나가 이 이상 깊게 관여해서는 안될지도 모른다. 아마도 타이코쿠는 우리들의 입에서 듣지 않더라도 언젠가 3층 주거구에 있는 마호클의 공방을 찾아낼 것이고, 그렇게 된다해도 위험한 상황이 생길거라고는 생각 할 수없다.

하지만, 마호클이 만들려고 하고 있는 - 혹은 이미 만들었을지도 모를 발리스타의 재료를 모아다 준 것은 우리들이고, 추가로 타이코쿠는 이렇게 말했다. 우두머리인 마호클이 사라진 이유는, 발리스타의 레시피가 발견된 것과 또 하나의 이유 - 유니크스킬 <이도류>의 출현이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어서라고.

나올때와 달리 제대로 현관을 통해 집으로 돌아온 우리들은, 서로 차 마실 준비를 도와주고는 거실에 있는 대형 테이블에 마주보고 앉았다. 좋은 향이 나는 밀크티를 입에 머금은 아스나가 후우- 하고 숨을 내뱉고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설마, 키리토군의 이도류 스킬이 마호클씨가 행방을 감춘 것과 관계가 있었다니..."

 

"으-음... 타이코쿠는 분명히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신음섞인 목소리로 답을하고, 탁자위의 접시로 손을 뻗었다. 아스나가 만든 수제쿠키는 씹는 맛이 바삭바삭해서 가벼우면서도 단맛은 약하다. 버터향이 진해서 실로 내 취향이긴 하지만, 이번만은 연달아 두장을 집어먹었는데도 전혀 개운하지가 않다.

 

"....이도류 스킬과 마호클의 건이 어떻게 이어지는지는 지금으로서는 전혀 상상할 수 없어. 그거에 대해서는 타이코쿠도 모르는 것 같았으니까. 그 녀석이 그렇게 판단한 이유도, 이도류의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기 시작했을 때부터 마호클의 모습이 이상하게 되었다는 말뿐이었잖아...?"

 

내가 그렇게 대답하자 아스나도 골똘히 생각하는 신중한 얼굴이 되었다.

급작스러운 듀얼에서 패배한 둔기 사용자인 타이코쿠는 그... 아니, <그들>이 마호클을 찾아다니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첫째는, 단순히 걱정되어서. 나와 아스나가 단순한 장인 플레이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목공 세공사 마호클은, 사실 아인크라드에 오랫동안 존재해왔던 크리티컬 원리주의자들의 집단, 자칭 <회심도>의 리더였으며, 스스로 몸을 숨겼다고는 해도 어딘가에서 위험한 일을 당할 수 있는 것이다. PK 집단 <래핑코핀>은 이미 3개월 전에 궤멸했지만, 최근에 나를 죽이려고 했던 크라딜 이외의 잔당들이 어딘가에 잠복하고 있을 수 있으며, 우두머리인 PoH 역시 행방불명인 상태다. 크리러들은 실제로 싸우는 집단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진정한 크리티컬 히트에 대한 기술과 시스템을 추구하는 자들이기 때문에, 리더의 안전을 걱정하는 타이코쿠의 기분도 일단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실종 되기 전에 마호클이 찾아낸 노포(발리스타)의 레시피.

그녀는, 다이코쿠를 비롯한 간부들이 제아무리 설득을 해도, 간절하게 호소해도 완강하게 발리스타를 제작하려고 하지 않았다. '크리티컬의 추구에 원거리 무기따위는 필요없다'고 마호클이 말했지만, 그래도 타이코쿠와 다른 간부들은 포기하지 못 했다는 것 같다. 만약 발리스타가 제대로 작동된다면, 실전 경험이 적은 크리러들이라고 해도 최전선의 사냥터에서 매우 효율적인 레벨링이 가능해 질 것이며, 스테이터스를 대폭 상승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AGI수치가 크리티컬 발생률과 관련이 있는것은 거의 확실하기 때문에, 이쪽의 심정도 이해간다 말 할 수 있다.

즉, 타이코쿠와 다른 크리러들은, 리더의 안전을 바라는 선심과 발리스타의 혜택을 원하는 욕심이라는 두 개의 생각을 가지고 마호클을 찾아다니는 것이었다. 거기까지 정직하게 말한 타이코쿠는 결코 악인은 아니겠지만, 이런말을 듣게 된다면 역시 우리들이 마호클의 거처를 가르쳐 줄 수는 없다.

 

"...타이코쿠씨는 어째서 마호클씨의 거처만이 아니라, 이도류 스킬의 해제 조건까지 요구했던걸까."

 

아스나의 그 말에 나는 하던 생각을 그만두고 고개를 들었다.

 

"에...? 그거야, 이도류에 대한 정보가 퍼지기 시작한 무렵부터 마호클의 모습이 이상해졌기 때문, 아닐까? 그녀의 실종에 이도류 스킬이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거겠지."

 

"하지만, 우리들한테서 마호클씨의 커처를 캐낼 수 있다면, 사라진 이유는 뒤로 미뤄도 괜찮지 않을까?"

 

"으-음, 그러고보니, 그렇네."

 

아스나의 말에 찬성하면서 세번째 쿠키를 입으로 밀어 넣었다. 쿠키와 밀크티의 하모니를 잠시동안 만끽한 다음 파트너에게 의견을 제시했다.

 

"...내일, 다시 한 번 더 줌프트에 가볼까...?"

 

그러자 아스나는 내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눈을 한번 깜박이더니,

 

"응, 그러자."

 

"그럼, 오늘은 일찍 잠들어야겠네."

 

라고 말한 순간, 오랜만에 전력으로 전투를 한 탓인지, 눈꺼풀이 무거워져서 나는 크게 하품을 했다. 이 세계는 하품뒤에 눈물이 나오는 것까지 제대로 재현하고 있기에 눈을 껌뻑껌뻑거렸는데 정면에 앉아있는 아스나도 입에 손을 얹고 '후아아...'거리며 조용히 입밖으로 소리를 냈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워서 나는 졸음을 딛고 자리에서 일어나 테이블을 돌아 들어갔다.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무슨일이야? 라고 말하는 듯한 아스나의 허리와 두 다리 뒤쪽으로 팔을 밀어넣고, 이영차 하면서 들어올렸다. '자, 잠깐만...'하고 소리치는 새신부님을 침실까지 옮기고, 살며시 침대에 눕힌 뒤 그대로 강하게 껴안았다.

처음에는 당황해하던 아스나도 곧바로 내 머리를 팔로 감쌌다. 날씬하고 부드러운 손이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이 통나무집으로 이사 온지 얼마 안됐을 때는 - 라고 말해도 아직 3일밖에 안됐지만 - 이런 식으로 달라붙어있으면 바로 거역하기 힘든 충동에 휩쓸려서 염치없는 행동을 저질렀는데, 신기하게도 지금은 깊은 평온함만을 느끼고 있다. 마음 속 깊고 깊은 곳에서 떠오르는 감정을 그대로 목소리로 바꿔 말했다.

 

"아스나... 좋아해."

 

나로서는 드물게도 장난기가 없는 말에 아스나는 내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멈추고, 똑같이 조용한 목소리로 나에게 돌려주었다.

 

"나도 좋아해, 키리토군."

 

"...조금 더 빨리... 그 때 이런 말을 했었다면, 이라는 생각이 가끔씩 들어."

 

아스나의 목덜미 부분에 얼굴을 가져다 대고 이렇게 중얼거리자, 내 머리에 있던 아스나의 손이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때 말하지 못했던걸, 후회하고 있어...?"

 

속삭이는 목소리로 되물어오자 조금 생각한 뒤 다시 대답했다.

 

"후회랑은 달라. 우리들이 걸어왔던 길... 쌓아왔던 시간들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냥 단순히 아래층에서 잠정적인 콤비로 지냈을 때 아스나에게 고백을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라고 생각할 뿐이야."

 

"음-..."

 

아스나는 잠시동안 생각하더니 한숨을 내쉬고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그 무렵의 나는 꽤나 고집쟁이 였었으니까, 고백을 했다고 해도 OK했을지는 잘 모르겠는걸?"

 

"에... 그래?"

 

"그러는 키리토군이야말로, 만약에 내가 고백했었다면 어떻게 했을건데?"

 

"그거야, 물론......"

 

그렇게 말하고는 팔팔하던 중2 남자애였던 그 당시의 내 심리 상태를 시뮬레이션해보고는 무심코 쓴웃음을 지었다.

 

"아니, 나도 딱 잘라 단언할 수는 없을거야. 아마 패닉에 빠져서 도망치거나, 그게 아니면 허세를 부렸을지도 모르겠네."

 

"거봐. 그치?"

 

어째선지 누나같은 분위기가 풍기는 아스나를 다시 한 번 힘껏 껴안고, 약간 몸을 떨어트린 뒤 가까이에 있는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런걸 생각하면, 2년이나 걸리긴 했지만, 지금 아스나랑 이렇게 같이 있을 수 있는게 기적처럼 여겨져."

 

"응, 나도 그..."

 

'그래' 라고 말하려는 아스나의 입술을, 내 입술로 막았다. 길고 긴 키스를 마친 뒤 몸의 힘을 빼고 이번에는 내가 아스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대략 3분 정도가 지났을까. 문득 깨닫고 보니 파트너는 내 팔 안에서 희미한 숨소리를 내고 있었다. 발 아래에 있는 이불을 들어올려 우리 두 사람의 어깨까지 덮고 나도 편안한 기분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12

 

10월 28일, 오전 9시.

치즈가 들어간 샐러드와 바삭하게 구운 얇은 토스트, 베이컨 에그에 커피라는, 전통적이면서 만족감이 높은 메뉴로 아침식사를 마친 뒤, 나와 아스나는 통나무집을 나섰다.

호숫가로 난 길을 여유롭게 걸어 코랄마을의 전이문 게이트에서 3층의 주거구 줌프트로 텔레포트. 남동쪽의 거대한 바오밥나무 빌딩으로 들어가 계단으로 3층까지 올라갔다. 원형으로 된 통로를 좀 더 걸어가서 기억에 있는 작은 문 앞에서 멈춰섰다. 그런데-.

 

"......에....."

 

하고 목소리를 높인 아스나의 옆에서, 나도 눈을 껌벅이기만 했다.

문 옆에 걸려있어야 할 [Mahokl`s atelier]라는 간판이 없어졌다. 당황해서 문 손잡이를 잡아보았지만, 카각하고 단단하게 고정되어 돌아가지 않았다. 둥근 창문 너머로 공방안을 들여다본 아스나가, 곧바로 머리를 좌우로 저었다.

 

"완전히 텅 비었어... 그만큼이나 많이 있던 재료나 공구들이 전부 없어졌어..."

 

"진짜야...?"

 

문득 생각나는게 있어서 문의 표면을 검지로 탭. 떠오른 윈도우에는, 이 방의 구매가격이 표시되어 있다. 즉, 이곳은 이미 시스템적으로도 마호클의 공방이 아니게 되었다는 뜻이다.

 

"정말이네."

 

그렇게 중얼거리고, 나는 아스나와 약 3초동안 서로 얼굴을 마주보았다.

마호클의 공방에 발리스타의 재료로 생각되는 소재 아이템들을 제공하고, 그 보상으로 흔들 의자를 만들어 준 것은 어제 저녁 6시 무렵의 일이었다. 그 때로부터 아직 15시간 하고 조금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망설임을 느끼면서도 최악의 가능성을 입에 담았다.

 

"누군가에게... 예를 들어 래핑코핀의 잔당이라던가 하는 녀석들에게 습격을 당한 건 아니겠...지?"

 

"아마 아닐거라고 생각해. 가게를 이렇게까지 완전히 정리하는건 본인이 아니면 무리니까."

 

"...그건 그렇지. 그렇단 말은, 마호클은 어젯밤에서 오늘 아침까지의 시간동안에 자신의 의지로 어딘가로 사라졌다는 건가..."

 

멍하니 문을 바라보고만 있자, 아스나가 목소리를 조금 낮춘뒤 말을 했다.

 

"...나, 뭔가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뭐가...?"

 

"마호클씨는 회심도의 사람들한테서 모습을 감추기 위해 3층으로 온 셈이잖아. 그럼 일부러 공방을 가지고, 거기에 외부 간판까지 거는건 뭔가 모순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이제와서 3층으로 내려오는 플레이어는 별로 없긴 하지만 완전히 0인것도 아니고. 게다가 여기는 주거구잖아. 우연히 이 가게를 찾은 사람에게서 타이코쿠씨나 그 일행들에게 정보가 전해지는 일도 생길수도 있고."

 

"그렇구나... 맞아. 실제로, 아르고는 이 가게에 대한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빰에 페인트로 세 개의 수염을 칠한 정보상의 얼굴이 뇌리에 떠오르는 그 순간, 나는 어떤 가능성에 생각이 도달해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앗... 잠깐만 기다려봐. 혹시..."

 

"왜 그래?"

 

"이건 어디까지나 내 상상이지만, 어쩌면, 아르고에게 이 가게의 장소를 알려준 것은 마호클 본인인게 아닐까..."

 

"에...?"

 

의문스럽다는 표정을 지은 아스나에게, 나도 덩달아 성량을 줄이고 설명했다.

 

"타이코쿠나 그 집단 사람들도, 우리집에 직접 찾아오기 전에 아르고를 의지했을거라고 생각해. 사람을 찾는거라면 정보상에게 물어보는게 가장 빠르니까... 하지만, 아르고는 타이코쿠에게 이 가게에 대한 정보를 판매하지 않았던거야. 마호클이 그런식으로 의뢰를 한 게 아닐까 싶어."

 

"그럼, 마호클씨는 어째서 우리들에게 가게의 위치를 가르쳐준건데?"

 

"마호클이, 가게에 대한 정보를 팔아도 괜찮은 상대의 추가조건을 붙인거라면? 예를 들어서... 길드에 가입하지 않고, 적당한 전투능력을 가진 플레이어, 라던가."

 

그 순간, 아스나가 눈을 커다랗게 떴다. 하지만 곧바로 놀란 기색은 사라지고, 예전의 <공략귀신>을 생각나게하는 날카로운 표정으로 변했다.

 

"...그렇다면, 마호클씨는 처음부터 발리스타를 만들어내는게 목적이었던 거구나. 그리고, 그걸 만드는 목적은 단순히 장식용이나 호기심이 아니라, 실제로 사용... 마호클씨는 단순히 그냥 사라지기만 한게 아니라, 발리스타를 실전에서 시험해보려는 건지도 몰라..."

 

"에... 어, 어디에서...?"

 

"거기까지는 모르겠어."

 

라고 어이없는 표정으로 말을 하자, 맞다는 생각이 들어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아인크라드는 넓으니까... - 하지만, 발리스타가 고정식이라고 하면, 사용할 수 있는 장소는 제한적일거야. 몬스터에게 접근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공격할 수 있는... 절벽이나 회랑의 위라던가, 아니면 깊은 계곡을 끼고 있다거나... "

 

"나머지는, 한 장소에서 움직이지 않는 몬스터가 있는곳이라던가."

 

"에엥? 그래도 그렇지, 그렇게 형편이 좋은 녀석이..."

 

거기까지 말을 하고나서 나는 작게 '아'라고 중얼거렸다. 2년이나 지난 옛날의 기억이 작은 거품처럼 천천히 떠올라, 의식의 표면으로 튀어올랐다.

 

"...있다."

 

"있지."

 

나보다 한 발 먼저 생각이 난 듯한 아스나와 얼굴을 마주보고,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직후, 우리들은 빙글하고 몸을 회전시켜서 계단을 목표로 달리기 시작했다.

문자 그대로, 땅에 뿌리를 내리고 움직이지 않는 몬스터가 실제로 존재한다. 그것도 이 3층에. 분명 우연이 아닐 것이다... 마호클은 아예 처음부터 발리스타를 그 놈에게 사용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주거구를 뛰쳐나온 우리들은, 가도를 무시하고 깊은 숲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러자 당연하게도 벌레계열, 짐승계열, 식물계열의 몬스터들의 타겟이 되었지만 무시하고 대시를 계속했다. 방해되는 놈은 불가피하게 공격할 수 밖에 없었지만, 나와 아스나의 레벨이 90을 넘어가는 반면, 이곳은 적정레베이 10이면 적당한 3층이다. 오른손에 든 애검 일루시데이터+45로 한 번 쓰다듬어주자, 몬스터들이 싱겁게 흩어졌다.

맵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방황안개의 숲>을 최단거리로 횡단한 우리들은 줌프트를 출발한지 불과 15분도 안되어서 광대한 플로어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산맥에 도착했다. 공략을 진행하던 당시에는 하루가 걸렸으니 격세지감이 느껴졌지만, 지금은 향수에 젖어있을때가 아니다.

산맥의 서쪽에는 깎아 지른듯한 계곡이 입을 벌리고 있으며, 여기가 플로어 북부와 이어지는 유일한 통로다. 바로 근처에 있는 호숫가에 조그마한 마을이 있어서 그곳에서 맛있는 생선 요리를 먹을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한눈 팔고 있을 시간이 없다.

계곡의 입구에서 잠시 멈춰서자, 아스나가 후우~ 숨을 토하며 말했다.

 

"예상은 했지만, 사람이 하나도 없네..."

 

"뭐어, 최근에는 권외를 목표로 하는 플레이어들도 많이 줄었고, 그런 경우에도 적당히 강한 장비를 처음부터 입수할 수 있어서 7층 근처에서부터 스타트 하는게 가능해졌으니까. 그렇기에, 마호클이 이 층을 선택한거겠지만..."

 

"...서두르자..."

 

아스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어두컴컴한 계곡으로 발을 디뎠다.

여기에서 출현하는 박쥐 몬스터도 적은 아니지만, 혹시라도 모를 Pker의 출현에 주의하면서 빠른걸음으로 전진하기를 몇 분. 앞쪽 길이 밝아지고 있다...라는 생각이 드는 것과 동시에, 들어본 적 없는 생소한 사운드가 메아리치는 게 귀에 들렸다. 공기가 내는듯한 지지직거리는 신음소리와, 뭔가가 씹히는것 같은 충격음. 달리는 속도를 더욱 높여서 구불구불한 계곡길을 20m정도 더 뛰어들어가자-.

전방에 마치 인공스타디움처럼 절구모양으로 움푹 파인 땅이 출현했다.

바닥의 지름은 약 100m정도는 되어보였다. 하늘에서 비치는 햇빛이 땅까지 닿고 있었다. 바위만 노출된 계곡과는 달리 그곳에만은 푸른 잔디가 무성하게 깔려 있었다. 군데군데에 조그마한 샘들도 있어서 언뜻 보기에는 운치있지만, 움푹 파인 땅의 한 가운데에 있는 거대한 나무가 그곳에서의 피크닉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땅딸막하고 굵은 줄기에는 길쭉한 가지가 있고, 잎도 거의 달려있지 않으며, 나무 껍질은 기분나쁜 청회색이다. 게다가, 줄기의 중간부분에 있는 3개의 구멍에는 얼굴이 있다. 당연히 보통 나무가 아니라 몬스터 - 3층의 첫 번째 필드보스인 <The Indolent Treent>이다.

Indolent라는 영어단어는 미처 본 기억이 없었지만, 박학다식한 아스나 양이 말하기를 '게으른' '나태한'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런 네이밍의 유래는 아마도, 보스가 움푹한 땅의 한가운데에서 전혀 이동하지 않아서 일 것이다. 나무니까 당연한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SAO의 트렌트형 몬스터들은, 전투가 시작되면 지상에서 뿌리를 뽑아들고는 꽤나 민첩하게 돌아다닌다. 전혀 움직이지 않는 개체는 아마도 이 인도렌트 트렌트뿐일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마호클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패인 땅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기억에 있는 조그마한 체구의 뒷모습이 보였고, 바로 옆에 있는 바닥에는 뭔가 복잡해보이는 목재 장치가 고정되어 있었다. 근처에 있는 바위그늘로 들어가 숨은 뒤 상태를 엿보자, 마호클은 지면에서 두려울만큼 굵은 화살... 아니, 아마 쇼트 스피어로 보이는것을 집어들어 장치의 중앙부에 넣었다. 그리고는 장치의 뒤쪽에 삐져나와있는 래칫(*ratchet: 한쪽 방향으로만 회전하게 되어 있는 톱니바퀴*)기구로 보이는 레버를 위아래로 움직여서 굵은 가로대에 고정되어있는 줄을 한계치까지 감았다. 조준점을 조정한뒤, 레버의 아래에서 축 늘어져 있는 끈을 잡아당기자, 오는 도중에 여러번 들렸었던 지지직! 거리는 진동음이 울렸다. 그러자 쇼트스피어가 발사되어 필드 중앙에 있는 트렌트의 줄기에 꽃혔다.

 

"모로로오오오오!!"

 

인도렌트 트렌트는 분노에 찬 포효를 내지르면서 긴 팔을 휘둘렀고, 이어서 입에서 보라색의 구체를 연달아 발사했다. 구체는 지면에 떨어져 작은 폭발을 일으켰지만, 마호클이 있는 곳까지는 닿지 않았다. 확실한 아웃레인지 공격 - 하지만, 지금 이것이 마호클이 하고 싶어했던 것일까? 함께 수행하고 연구하던 동료들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않고 사라지고, 의심과 원한을 사가면서까지 해야만 하는 일이 이것이었단 말인가...?

아스나와 눈빛을 교환하고, 나는 바위 그늘에서 나와 일부러 발소리를 내면서 마호클에게 다가갔다.

오른손에는 다음에 쏠 화살을 쥔채, 빠르게 뒤쪽을 돌아본 목공 세공사는, 우리들의 얼굴을 보더니 소용돌이 안경의 안쪽에서 눈을 여러번 깜박이고는 작은 미소를 지었다.

 

"...역시, 발견 돼버렸네요."

 

"저 <인도렌트 트렌트>에게는, 예전에 꽤나 고생을 했었거든."

 

그렇게 대답하자 마호클은 다시 한번 더 두 눈을 깜박였다.

 

"그렇군요... 키리토군과 아스나씨 두 분은, 공략조였던건가요. 그거면 이것의 재료를 엄청 쉽게 모아온 것도 납득이 되겠네요."

 

왼손으로 목재장치 - 발리스타의 활바닥을 쓰다듬으며 그렇게 말하는 목공 세공사에게, 나는 이어서 무슨말을 해야 좋은것인지 잠시동안 망설였다. 마호클이 하고 있는 일 자체에는 아무런 범죄성도 없고, 필드보스라고 해도 3층 클래스라면 크리러의 우두머리인 마호클에게 위협이 되지도 않을 것이다. 굳이 말을 꺼내자면, 발리스타의 존재가 밝혀질 경우 공략조의 커다란 길드나 <군>, 그리고 PKer의 주목을 받게 될거라는 말밖에 없지만, 그렇기에 마호클은 지금에 와서 사람의 발길이 닿지않는 이 장소를 선택한 것이다.

말이 막혀버린 나를 대신해서, 아스나가 차분한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마호클씨... 당신의 목표는, 저 보스를 쓰러트리는 것만이 아니죠? 물론, 발리스타를 시험삼아 발사하는 것도 아닌... 뭔가 다른, 저희들이 생각지도 못한 다른 목적이 있는게 아닌가요?"

 

"헤에,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 건가요?"

 

오른손의 창을 활바닥에 세팅하면서 되물은 마호클에게, 아스나는 거침없는 어조로 설명을 시작했다.

 

"어젯밤, 당신의 동료인 타이코쿠씨가 저희집에 찾아왔었어요. 저희가 사들였던 테이블에 <물품 추적>이 걸려있었다고 하더군요."

 

"어이구, 그건 저희쪽에서 폐를 끼친게 되겠네요. 고생하셨겠군요."

 

"에, 에에. 네 뭐... 그 때 타이코쿠씨에게서 여러 이야기를 듣고, 저도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어요. 마호클씨에게는 완전습득을 끝마친 목공스킬도, 그리고 이 발리스타도 그 수단의 하나가 아닐까, 하고."

 

"수단, 말인가요? 무엇때문에요?"

 

"진짜 크리티컬의 한도에 이르기 위해서요."

 

아스나의 그 지적을 듣고도, 마호클은 즉시 대답하지 않았다. 래칫핸들을 조작해서 줄을 감고, 겨냥한 뒤 끈을 당겼다. 발사된 창은 약간의 포물선을 그리는 탄도를 따라 인도렌트 트렌트의 뿌리에 명중해서 한층 더 격렬한 소리와 섬광을 내뿜었다.

 

"지금걸로, 9451회째의 진짜 크리티컬입니다."

 

방금 중얼거리듯 튀어나온 마호클이 한 말의 의미를 이해하는데 약 2초 정도가 걸렸다. 아스나와 얼굴을 마주보고 쉰 목소리로 되물었다.

 

"9000...? 세, 세고있었던거야? 지금까지 터진 크리티컬의 횟수를... 전부?"

 

"그렇습니다. 데이터를 분석하는데 필요하니까요."

 

시원스레 그렇게 대답하고는 새로운 창을 장전하는 마호클의 옆모습을 나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횟수를 전부 세고 있었다는 것도 예사롭지 않지만, 문제는 그 숫자다. 내가 하루 온종일 정해진 곳에서 사냥을 했을때도, 아마 약점 크리티컬을 제외한 진짜 크리티컬은 10번 나올까 말까 하는 정도이다. 단순히 계산을하면 한 달에 300번, 1년이면 3600번... 물론, 매일 전투만 하는것도 아니기 때문에, 2년이 지난 지금, 내 진짜 크리티컬 횟수는 5,6000번 정도가 아닐까. 그렇게 따지면 마호클은 그 숫자의 두 배 가까운 횟수를 내고 있는 셈이다.

이런걸 생각하고 있는 동안에도, 목공세공사는 발리스타에서 새로운 창을 발사시켰고, 그것은 또 다시 화려한 이펙트를 발생시켰다.

 

"9452회..."

 

그렇게 중얼거리는 마호클에게, 나는 참지못하고 질문을 던졌다.

 

"이게... 이게 네가 하고 싶었던거야? 그냥 진짜 크리티컬 히트의 횟수를 계속 쌓는게, 네가 발리스타를 만든 이유야?"

 

"설마요. 그럴리 없잖습니까."

 

".....에?"

 

간단히 부정을 당해 다시 할 말을 잃어버린 나에게, 마호클은 의외의 질문을 던졌다.

 

"혹시 두 분은, 최근에 소문이 돌고있는 새로운 유니크 스킬에 대한 이야기를 알고 있나요?"

 

"....에? 뭐, 그야..."

 

마호클의 질문에 애매모호하게 긍정하면서, 그제서야 알아차렸다. 마호클은 바로 내가 그 <새로운 유니크 스킬>의 소지자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정보상에서 발행하는 신문에는 내 플레이어 네임까지는 실리지 않았고, 히스클리프와의 듀얼의 전말을 실은 기사에도, 쓰러진 내 사진이 기재된것은 뒷모습뿐이었기때문에, 그것이 나라는 걸 아는것은 오랫동안 알고 지낸 녀석들 뿐이다. 물론 그에 대해서 아르고에게 물어보았다면 이름을 쉽게 알아낼 수 있었을테지만, 마호클은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은것 같다.

 

"...저희들은 계속, 혈맹기사단의 리더가 가진 <신성검>이 SAO의 유일한 유니크 스킬이라고만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습니다... 어떤 조건을 만족하면 해제할 수 있는 유니크 스킬이, 이 세계에는 아직 숨겨져 있는 것입니다."

 

"...혹시, 그 조건이...?"

 

작은 목소리로 질문을 던진 아스나에게 마호클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흔들었다.

 

"자세한 이유는 말할 수 없습니다만, 저희들은 몬스터를 상대로 진짜 크리티컬을 10000번 발생 시킬 수 있으면 새로운 유니크 스킬이 해제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저 문제라면... 진짜 크리티컬은, 상대가 약한 몬스터일수록 잘 발생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에, 그런가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보스몬스터만은 별개입니다. 회심도의 숙련도 작업에는, 이미 공략된 플로어의 필드보스를 상대로 진짜 크리티컬기술을 연마하는것이 있습니다. 그래도 하루에 20번 정도가 한계이지만요. 그렇지만 만약에 <움직이지 않는 보스>를 <아웃레인지에서 공격할 수 있는 무기>가 있다면..."

 

"피로해지지 않고, 오로지 크리티컬의 횟수를 올릴 수가 있다..."

 

"맞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마호클의, 소용돌이 안경의 중간에 숨겨진 두 눈을 나는 가만히 응시했다.

줌프트의 공방에서 대화하고 있을때는 전혀 알아채지 못한 거기에는, 어젯밤 듀얼을 했던 타이코쿠를 훨씬 뛰어넘을 만큼의 광기와 집념이 소용돌이 치고 있는것만 같았다. 직접 물어보는 것은 뭐하지만, 아마도 발리스타의 제조법을 동료인 타이코쿠와 그 집단에게까지 숨기려한 이유는, 유니크 스킬은 오로지 한 명밖에 습득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역시, 이 사람도 확실히 궁극의 이기주의자 집단인 크리러들의 두목이구나 라고 납득하면서 나는 패인 땅 가운데에서 팔을 휘두르고있는 인도렌트 트렌트에게 시선을 옮겼다.

의외로, 트렌트의 HP바는 아직 절반도 줄어들지 않았다. 아마도 마호클은, 화살로 사용하고 있는 쇼트스피어를 최저랭크의 것으로 써서 대미지를 최대한 억제하고 있는것이 분명하다. 만약 필드보스를 잡는다고 해도 어차피 무한히 리폿되는 데다가, 쇼트 스피어의 소재가 되는 목재는 계곡의 바로 바깥에서 얼마든지 입수할 수 있기 때문에, 이대로 여기에서 야영을 하면서 발리스타를 계속 쏠 경우 열흘도 지나지 않아 나머지 550번의 진짜 크리티컬을 쌓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는 그것을 막아야만 하는 이유도, 막아야만 하는 권리도 없다.

왜냐면 나와 아스나는 마호클이 발리스타를 제작하는 이유에는 에길이 어떻게든 얽혀있을거라고 추측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완전히 잘못된 추측이었다. 사실 정확한 계기가 된것은 두번째의 유니크 스킬의 소유자인 나 때문이었다.

 

"그래... 이걸로 여러가지 의문이 풀렸어. 방해해서 미안했어."

 

가볍게 머리를 숙이면서, 나는 스토리지를 열고 저장해 두었던 대량의 음료와 음식을 오브젝트화했다.

 

"이거, 받아둬. 이대로 10000번까지 채우는 걸 같이 보고는 싶지만, 당연히 그럴수는 없으니까."

 

"에... 받아도 되는건가요?"

 

멍하니 바라보는 마호클에게 나는 살짝 웃어주었다.

 

"아아, 그 대신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혹시 크리티컬이랑 관련이 있는 유니크 스킬을 습득하게 된다면, 그 발리스타랑 같이 공략조에 합류해주지 않겠어? 분명히 그 대머리 도끼전사도 기뻐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러자 몸집이 작은 목공 세공사는, 잠시 추억에 잠긴듯한 두 눈을 가늘게 뜨고나서 '으음~~'하고 신음하더니 뜻깊은 미소를 되돌려주었다.

 

"생각해보겠습니다."

 

"그럼, 덤으로 또 하나. 유니크 스킬의 습득을 목표로 하는거라면, <명상>스킬을 습득해서 숙련도 500까지 올려두는게 좋을거야."

 

"에...? 어째서, 그런것까지..."

 

의아하다는 듯 눈썹을 움직이는 마호클의 두 눈이 안경 안쪽에서 커다랗게 떠졌다.

 

"앗.... 키리토군, 혹시 당신은..."

 

마호클이 이렇게 말을 꺼낼때, 나는 이미 오른손을 흔들면서 발길을 되돌리고 있었다. 어두운 계곡 안으로 발을 내딛고 저벅거리며 빠른 걸음으로 걷어가다보니 뒤를 쫓아온 아스나가 작은 목소리로 질문을 했다.

 

"저기, 명상스킬이 뭐가 어쨌다는 거야? 난 전혀 모르는 얘기인데."

 

"아니, 나도 아직은 무슨 확증이 있는건 아니라서..."

 

"정말! 이번에는 뭐 숨길생각 하지 말고! 나도 유니크 스킬에 대해 관심은 있거든!"

 

마치 예전 아래층에서 콤비로 지냈던 시절처럼, 굽힌 손가락으로 내 옆구리를 마구 공격해와서, 몸을 비틀어서 아스나의 물리적 공격에서 벗어난 뒤 말했다.

 

"알았어, 알았다고. 집에 돌아가면 다 설명해줄게."

 

"약속한거다!"

 

마지막으로 한 번 꾹하고 누르더니, 아스나는 내 앞으로 나가더니 뒤를 휙 돌아봤다. 그리고는 환한 미소를 얼굴 가득 피웠다.

 

"그럼, 어딘가에서 점심밥이나 사서 돌아가자!"

 

"아, 나 말인데, 오랜만에 4층의 씨푸드 요리를 먹어보고 싶은데."

 

그렇게 말을 했을 때, 뒤쪽에서 다시 발리스타의 발사음이 들렸다. 그리고는 그 뒤를 이어 들리는 보스 트렌트의 포효. 3층 클래스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그 박력에 약간 불안함을 느끼긴 했지만, 공격이 닿지 않는 이상, 무슨 사고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있지, 이왕이면 호숫가에 있는 마을에서..."

 

거기까지 말한 나의 코트를, 아스나가 가볍게 잡아당겼다. 멈춰서서 옆을 바라보자 세검사는 못마땅한 얼굴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무슨일이야?"

 

"아니... 저기, 키리토군. 마호클씨의 발리스타는, 시스템에 정식으로 등록이 되어있는 무기가 맞겠지?"

 

"그, 그야 그렇겠지. 분명히 화살, 이 아니라 창이 제대로 날아가기도했고, 대미지도 주었고."

 

내가 그렇게 대답하자 아스나의 표정이 맑아졌다.

 

"하지만... 그렇다면 발리스타를 사용하는데 필요한 무기스킬을 뭘까? SAO에 활 관련 스킬은 없으니 당연히 노포스킬도 없을테고. 무기 스킬도 없이 사용할 수 있는 무기가 있는걸까?"

 

"......"

 

그 질문에는 곧바로 대답을 할 수가 없어서 이번에는 반대로 내가 생각에 잠겼다.

<무기 스킬이 없이 무기를 사용한다>는 것 자체는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서, 창 스킬을 가지고 있지 않은 내가 핼버드를 장비하면 휘두르는 것...까지는 할 수 있고, 몬스터에게 대미지도 입힐 수 있다. 그러나 그 수치는 매우 미미하고, 소드스킬을 발동 시킬 수도 없다. 투척무기의 경우에는 제대로 날아가지도 못한다.

따라서, 마호클이 무기스킬 없이 발리스타를 쏘고 있는 것 자체에 시스템적인 문제는 없다 - 하지만, 창이 트렌트에게 백발백중으로 히트하고, 대미지가 제대로 들어가는 것은 뭔가 이상하다. 본래라면 창은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갈 것이고, 우연히 명중한다고 해도 HP바가 거의 줄어들지 않는 결과가 나와야 하는 것이 아닌가.

 

"어쩌면......"

 

내가 중얼거리자 내 얼굴 앞으로 아스나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혹시 발리스타가, 개발 초기에는 제대로 설정이 되어있었지만 도중에 사양이 변경되어서 다른 활이나 화살과 마찬가지로 삭제되어야 하는 무기였다고 한다면... 소재가 무한히 솟아나오는 버그처럼, 시스템이 실시간으로 대처할 가능성이 있기는 하지만..."

 

"대처라고 한다면... 발리스타가 갑자기 사라진다거나..."

 

"아닐거야, 아무리 그래도 그런 초현실적인 현상까지는 벌어지지 않을거라고 생각하는데... 예를 들어서, 메리트가 지워지는 정도라던가..."

 

"메리트...라고 한다면, 아웃레인지에서 노리스크로..."

 

아스나가 거기까지 말한 순간이었다.

계곡 안쪽에서, 또 다시 인도렌트 트렌트의 포효가 울려퍼졌다. 그 목소리는 지금까지보다 다섯배 정도 흉포한 울림을 띠고 있어서 나와 아스나는 흠칫 놀라서 몸이 굳어졌다.

얼굴을 마주보고 끄덕인 뒤, 동시에 뒤돌아서 대시했다. 수십미터를 순식간에 달려나가서 거대한 패인 땅의 입구로 되돌아왔다.

마호클의 작은 등과 지면에 고정된 거대한 발리스타가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너머의 스타디움같은 패인 땅의 중앙에서 인도렌트 트렌트가 굵은 줄기를 마구 비틀면서 팔을 대신하는 가지를 엉망진창으로 휘두르고 있었다. 보스몬스터가 광란상태에 빠지는것은 간혹 있는 일이지만, 이 녀석에게 이런 행동패턴이 있었나 싶어서 공략 당시의 기억을 머릿속에서 끄집어냈다.

트렌트의 뿌리가 박힌 지면에 무수한 균열이 일어났다. 패인 땅 밖에 서있던 우리들의 발밑도 조금씩 떨리고 있었고, 발리스타의 프레임이 삐걱거렸다. 갑자기 나쁜 예감이 들어서, 아직 이쪽을 인식하지 못한 마호클에게 사격을 중지하라고 말을 걸려고 했다. 하지만 그보다 한 발 빨리.

보고고고고! 거리는 화려한 땅울림과 함께, 트렌트의 뿌리가 땅에서 빠져나왔다. 아니, 빼낸 것이다... 스스로의 의지로.

방사형으로 뻗어나간 몇개의 굵은 뿌리가 땅에서 전부 빠지는데는 10초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쯤 되자 마호클도 보스 몬스터의 이상징후를 감지한건지, 지금까지 발사했던 싸구려가 아니라, 한눈에 보아도 고급품이라는걸 알 수 있는 쇼트스피어를 오브젝트화해서 발리스타에 장전했다. 크리티컬 횟수를 올리는 것을 멈추고, 잡으려는 생각일 것이다. 나도 그 판단이 옳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모로로오오오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음량으로 포효한 인도렌트 트렌트는, 뿌리를 물결치듯 세차게 움직이면서 의외라고 생각될 빠른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게으르다>는 고유 이름에 반하는 행동패턴. 아마도, 처음부터 이 행동이 설정되어 있던것은 아닐것이다. 존재하지 않아야 하는 발리스타에 의한 아웃레인지 공격에 SAO의 게임 시스템이 실시간으로 추가한 것이다. 그렇다면, 행동 패턴만 변경된것이 아닐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마호클이 발리스타의 끈을 잡아당기자 고급 스피어가 비명을 지르며 발사됐다. 똑바로 날아간 창이 트렌트의 몸통에 멋지게 명중했지만 HP바는 크게 줄어들지 않았다. 그래도 다음 공격을 장전하려고 하는 마호클에게 내가 뒤에서 소리쳤다.

 

"아마 스테이터스가 강화됐을 거야! 일단 발리스타를 회수하고 도망치는게 좋아!"

 

그러자 잠시 뒤를 돌아본 마호클은, 초조함이 엿보이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무리입니다! 이 녀석은 설치와 회수에 60초 정도가 걸린다구요!"

 

"뭣..."

 

무심코 아스나와 얼굴이 마주쳤다. 설치는 몰라도 회수하는데에 1분가까이 걸린다는것은, 비상사태가 발생했을때 회수 하는것이 불가능하다는 얘기가 아닌가. 인도렌트 트렌트가 패인 땅의 가장자리에 도달하는데에는 아마 이제 40... 아니, 30초 정도 뿐-.

 

"모롯!!"

 

다시 울부짖은 늙은 나무의 정령이, 오른쪽의 줄기를 하늘 높이 번쩍 치켜들었다. 머리의 절반으로는 어떻게 봐도 아직은 닿을만한 거리가 아닌데, 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반사적으로 튀어나가 마호클의 몸을 끌어안고 있는 힘껏 백점프를 했다. 그 직후 줄기가 굉음을 내며 내리찍었다. 공중에서 그 끝이 고무처럼 늘어나더니 30m 이상 떨어진 곳에 설치된 발리스타를 후려갈겼다.

단 일격에 고가의 티크로 만들어진 프레임이 꺾였고, 드래곤의 힘줄을 합쳐서 만든 현이 잠금쇠에서 벗겨져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부서진 채 공중에 흩날리는 대량의 목재를 바라보면서, 마호클과 아스나가 동시에 '아앗'하고 외쳤다.

열심히 모은 재료로 만들어진 발리스타의 최후를 보는것은 나도 슬프게 느껴졌지만, 지금은 그럴 틈이 없다. 해러스먼트 경고가 나타나기 전에 마호클의 몸을 놓아주고, 등의 애검을 뽑아들었다.

 

"모로롯!"

 

이번에는 왼쪽의 줄기를 들어서 내리치려했고, 마찬가지로 공중에서 늘어나 우리에게 다가왔다. 두 사람 앞으로 달려나가 검을 옆으로 뉘여서 막아냈지만, 잠시 스턴에 빠져버릴 것 같은 충격이 전신을 관통했다. 40층, 아니 50층 클래스 수준이다.

 

"...도망치려고 하면 도망칠수는 있겠지만..."

 

뒤를 돌아보며 그렇게 말하자 아스나가 빠르게 머리를 흔들었다.

 

"만약에, 여기에 3층에 맞는 레벨의 플레이어가 온다면 위험해질거야."

 

"역시 그렇겠지... 쓰리트리는 수밖에 없나."

 

나와 아스나의 레벨은 90을 넘어가지만, 50층 클래스의 필드보스를 둘이서 잡는다는건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멍하니 서있는 마호클을 힐끗 보고나서, 윈도우를 빠르게 조작해 등에 출현시킨 또 하나의 애검, 리즈벳 무구점의 제작품 <다크리펄서>를 왼손으로 뽑아들었다. 그 순간, 마호클이 두 눈을 크게 떴다.

마찬가지로 리즈벳이 만든 세검 <렘번트라이트>를 빼든 아스나가, 마호클에게 말했다.

 

"마호클씨, 저희들이 저 보스를 쓰러트릴테니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아니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목공 세공사는, 아스나의 말에 빠르게 고개를 가로젓더니 윈도우를 출현시켰다. 설마 새로운 발리스타를 설치하려는 생각은 아니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오른손에 실체화 시킨것은 한 개의 쿼터스태프였다. 어젯밤 싸웠던 타이코쿠의 양손 둔기와 비교하면 두께는 그 절반정도지만, 무기로서의 랭크는 그보다 훨씬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근거는 없지만, 이전에 에길에게 모아달라고 부탁한 레어 목재들 중에서 골라 만든것이 아닐까 하는 직감이 들었다.

 

"저도 싸우겠습니다. 저 트렌트가 강화된 것은 제 탓이니까요."

 

잠시나마 고민했지만, 마호클도 본래는 생산직이 아닌 전투직의 플레이어다. 그것도 진짜 크리티컬 히트를 수련하는데에 모든것을 바친 <회심도>의 리더. 그런 플레이어가 싸우겠다고 말하는데 무작정 말릴수는 없다.

 

"...알겠어."

 

내가 빠르게 파티초대를 날리자 마호클도 망설이지 않고 수락했고, 시야 좌상단에 세번째의 HP바가 나타났다. 서로 고개를 끄덕인 우리들은 골짜기에서 패인 땅으로 뛰쳐나가, 거대한 보스몬스터를 목표로 맹렬하게 달려나갔다.

 

 

 

13

 

옆을 나란히 걷고 있는 아스나가 묘하게 즐거워 보여서, 내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저기... 왜 그렇게 싱글벙글이야?"

 

"음-, 비밀."

 

라고 말하면서, 아스나는 내 왼팔을 잡더니 자신의 팔을 넣어 팔짱을 꼈다. 22층의 주거구에서 호수로 향하는 길은 언제나처럼 사람이 없어서 나도 아스나의 손을 꽉 잡았다. 언젠가는 플레이어로 붐비는 알게이드의 메인 스트리트에서도 이렇게 손을 잡고 걸을 수 있었으면... 같은 생각을 하면서 한가롭게 집으로 돌아가는 귀로를 걸어갔다.

 

"...마호클씨, 아직 크리티컬 1만번을 목표로 하고 있을까..."

 

아스나가 표정을 고치고 그렇게 중얼거려서, 나는 '으-음'하고 내뱉었다.

 

"발리스타는 이제 만들지 않겠다고 말했으니까... 그치만 1만번까지 채우는데까지 앞으로 550번 남았으니까, 둔기로 노력하고 있을지도 몰라."

 

"만약에 정말로 새로운 유니크 스킬이 해제된다고 하면, 어떤거려나... 그보다 말인데, 키리토군 아까전에 명상기술이 어쩌고 말했었는데, 결국 무슨 말이었던거야? 그거 재생 버프만 걸어주던데, 유니크 스킬이랑은 아무 상관이 없는거 아니야?

 

"비밀입니다~아."

 

방금전의 복수를 하자, 그 즉시 내 옆구리에 아스나의 오른쪽 팔꿈치가 작렬했다.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얻은 인토렌트 토랜트 개(改)는 실제로 꽤나 강력한 적이었다. 특히 힘들었던 부분은, 발리스타의 관통력에 대항하기 위해 주어진 방어력으로, 두꺼운 껍질은 내 참격이나 아스나의 찌르기를 마치 쿠션처럼 흡수해버려서 장기전을 각오했었 - 지만, 공략법을 보여준것은 의외로 둔기 사용자인 마호클이었다.

일반적으로, 저런 계열의 몬스터에게는 타격속성공격은 궁합이 나쁘지만, 진짜 크리티컬만큼은 이상할만큼 효력이 있었다. 거기서 나는 일루시데이터를 타이코쿠에게서 받은 목검으로 바꿔서 크리티컬을 목표로 철저히 공격을 했더니 20분정도 지나자 격파할 수 있었다.

마호클에게서는, 감사한다는 말을 들으며 동시에 회심도에 들어오지 않겠냐는 권유도 받았지만 그건 정중하게 거절하고 함께 삼층의 주거구 줌프트로 돌아와서 거기서 헤어졌다. 아인크라드의 어딘가에 있는 회심도의 도장으로 돌아가겠다는 말을 했기에, 이걸로 타이코쿠도 안심할 수 있을 것이다. 아스나가 말한대로, 언젠가 세 번째의 유니크스킬 사용자가 된 그녀와 만나게 된다면 그때는 성대하게 축하해 주자고 생각했다.

한가지 궁금한것은, 줌프트에 돌아왔을때, 아스나와 마호클 둘이서 약 15분 정도 사라졌었다는 것이다. 도대체 어디에서 무엇을 한 것인지, 설마하니 아스나도 회심도에 영업당한것은...이라는 상상을 할 수는 있었지만, 새신부님의 옆 얼굴에서는 그 속내를 알아낼 수가 없었다. 뭐, 만약에 그리 된다면 그때는 나도 크리러가 되는것도 나쁘지 않겠지.

이윽고 호숫가의 길은 두개로 갈라졌고, 작은 언덕을 오르자 전방에 아담한 통나무집이 보였다. 단풍으로 물든 숲속에 조용하게 자리잡고 있는 그 집은, 동화에 그려진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원목으로 된 문을 열고, 잔디가 자라고 있는 앞마당을 지나 현관으로-.

그 때, 아스나가 내 손을 때고, 거실과 접한 우드데크로 뛰어올라갔다. 윈도우를 열고는 "쨔안~!"이라고 말하면서 무언가 거대한것을 구체화시켰다.

- 설마.

설마, 발리스타인가...? 줌프트에서 잠깐동안 사라졌던 것은 새로운 발리스타를 제조하고 받아내려고 했던 거였나?

라는 나의 상상은 당연히 크게 틀린것이었다.

출현한것은, 가을의 햇살을 받아 화려하게 빛나는 흔들의자였다. 그제서야 나는 겨우 아스나가 거실용과 데크용으로 두개의 흔들의자를 갖고 싶다고 말했던것을 생각해냈다.

 

"그걸 만들어 달라고해서 받아온거구나... 그럼 나도 낚싯대를 주문했으면 좋았을걸. 그런데, 왜 비밀로 했던거야?"

 

다가가면서 그렇게 물어보자, 아스나는 약간 겸연쩍다는 듯 대답했다.

 

"왜냐면, 아무리 그래도 가구를 너무 많이 늘리는게 아닌가 싶어서... 키리토군은, 그런데에 관심이 없는것 같고..."

 

"그런 것 정도는 신경 안써."

 

진지한 얼굴로 그 말을 부정하고, 나는 기습적으로 아스나를 안아 들어서 새로운 흔들의자에 힘차게 앉았다. '이런 것도 할 수 있고!' 라고 외치면서 의자를 흔들거리게 했다. 비명을 지르던 아스나가, 내 목에 매달렸다.

머지않아 흔들림이 잠잠해지자 아스나가 뾰로통한 얼굴을 하고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정말이지, 어린애 같은 일만 한다니까."

 

"진짜 어린애... 라고 하면 어떡할래?"

 

"에엑? ...아-, 그치만, 확실히 키리토군은 가끔씩 그런 느낌이 들어. 그럼, 나도 아르고씨처럼 키도령 이라고 불러줄까?"

 

"그, 그것만은 봐줘."

 

내가 당황해서 그렇게 말하고는, 나 자신이 적어도 초, 중학생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이 아스나의 입술을 부드럽게 막았다. 갸냘픈 몸을 강하게 끌어안으면서, 이런 매일이 조금만 더... 가능하다면 하루라도 더 오래 이어지기를 나는 간절히 기도했다.

 

 

 

 

 

후기

 

소드아트온라인 슈거리 데이즈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전격문고판 SAO의 후기처럼 시작해보았습니다만.... 이 글을 쓰고있는 시점은 당연히 아직 인쇄소 입고를 앞둔 시점인지라, 완성된 원고를 편집자분께 메일로 보내고 나머지는 맡기기만 하면(저자 교정 등의 작업은 남아있지만) 저절로 책이 나오는 상업지와 달리 동인지는 자신이 원고를 편집하고, 일러스트를 그리고, 여러 사양을 직접 결정하는 등의... 여러 작업이 남아 있습니다.

정말로 책이 나올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나온다는 전제로 진행을 하고 있습니다.(웃음)

이 [슈거리 데이즈]시리즈가 시작된 것은, 분명 2013년 10월의 COMITIA 106이고, 완결이 2018년 5월의 COMITIA 124이므로, 거진 4년 반 정도 연재를 계속 해온 셈이 되는군요. 게다가 이 책도 200페이지 이상이기에 이상한... 느낌도 들긴 하지만, 저 스스로도 놀라는 것은 그동안 SAO:ME의 발행부수가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것과, 끝까지 연재를 따라와 주신 여러분들께 많은 감사를 드려도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덕분에, 슈거리데이즈도 이렇게 한권의 책으로 정리하는 것도 가능해졌습니다. 그것도 오랫동안 원했던 문고사이즈로.....! 인쇄비의 총 금액이 벌써부터 무서워지는군요...!

그외에도, 이번 기회에 처음부터 다시 읽어보니 두서없는 내용에 [우와] 소리가 나왔습니다. 4년동안이나 써왔기 때문에 어느정도는 어쩔수 없었을 거다 라고 생각하지만, 초기구상은, 애니메이션 BD의 특전이었던 [더 데이 비포]의 속편이라는 체계로 키리토와 아스나가 둘이서 서로 꽁냥꽁냥거리는..... 그런 플롯이었던거 같은데 말이죠. 그렇지만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역시 이것만으로는 이야기 진행이 되지를 않아서, 수상한 목공 세공사 마호클이 등장하게 되었고, 키리토와 아스나가 수수끼께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게 된다는, 어떤 의미에서는 <항상 그래왔던 전개>가 되어버렸습니다. 게다가 내용적으로는, SAO 프로그레시브 6권에 나오는 명상스킬과 조금 얽히는 부분이 있는데 거기는 좀 괜찮은게 아닐까...싶기도 하고요. 설정을 까놓고 말하자면, 유니크 스킬은 전부 명상스킬(숙련도 500이상)에서 진화하기 때문에, 이 책에서 키리토의 보유 스킬트리에 명상이 없었던 것은 그 때문입니다. 마호클도 명상스킬을 단련한 후에 진짜 크리티컬 1만번을 달성하면, 유니크 스킬 <회심격>을 습득할 수 있었겠지만, 불행히도 이 스토리 시점에서 9일후에 게임클리어가 되는지라 시간을 맞추지는 못했겠죠....

시계열에 대해 좀 더 덧붙이자면, [슈거리 데이즈]는 2024년 9월 24일부터 28일까지의 이야기인데, 여기서 이틀뒤에 키리토와 아스나는 유이와 만나게 됩니다. 즉, 키리토와 아스나 둘만의 짧은 신혼생활은 이제 거의 대부분 다 그려진 셈입니다. 앞으로 나올 SAO:ME에 어떤 이야기를 쓸지는 미정입니다만, 다음 이야기도 여러분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서클활동을 도와주신 분들과, 응원해주신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18년 7월 어느날 쿠노리 후미오/카와하라 레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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