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게문학] 아바타라 ㅡ 24화
불과 몇분 전까지만 해도 하늘에 닿을듯한 고층건물들이 빽빽히 자리잡고 있었던 도시는 이젠 지옥 한복판으로 바뀌어 버렸다. 시뻘건 불길과 검은 연기를 배경으로 한 하늘 높은 곳에서 두 빛줄기가 술래잡기라도 하는 듯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쫓기는 쪽은 니콜라오가 탄 썰매, 쫓는 쪽은 박일표(의 껍질을 쓴 괴수지만 박일표라고 부르겠다)였다.
썰매가 지나간 궤적을 따라 수천 개의 방패가 생겨나 박일표의 앞길을 막았으나 한낱 종이쪼가리에 지나지 않았다. 박일표가 방패 가까이만 와도 어마어마한 열기에 순식간에 증발해버렸던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박일표의 속도를 늦추는 효과 정도는 있었다.
"미치겠네..."
니콜라오가 한번 손짓하자 박일표를 둘러싸는 형태로 거대한 감옥 같은 건축물이 생겨났다. 직경 2km에 달하는 던전 안에는 수많은 함정과 괴물이 배치되어 있어, 더 식스 급의 실력자라도 일단 한번 들어온 이상 나가는 방법은 죽음뿐일 터였다. 그러나 던전은 10초도 견디지 못하고 통채로 폭파되었고 박일표는 전혀 기세가 꺾이지 않은채 계속해서 니콜라오를 쫓아왔다.
니콜라오 역시 포기하지 않고 투척 무기를 소환해 박일표에게 날렸다. 이번에는 저번까지 다른 상대에게 썼던 수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다섯 자리 수에 달하는 금속의 비 안에는 인류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투척 무기가 들어 있었다. 박일표는 그 안에 파묻혀 밖에선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고 언뜻 보기엔 이번에야말로 니콜라오가 승기를 잡은듯 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니콜라오 그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박일표가 갑자기 미쳐 날뛰기 시작했을 때, 그때부터 이미 상대가 안 된다는 것을 직감했던 것이다. 이 순간에도 박일표를 휘감고 있는 무수한 국보급 무기들이 이쑤시개처럼 부러지고 있는게 느껴졌다.
지금 당장이라도 한대위에게 구조 요청을 해 협공한다면 확실히 박일표를 잡을 수 있을 테지만, 한대위는 언제까지나 비장의 카드였다. 박무봉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확신이 서기 전까지 미친 여우 따위에게 힘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
"읏...!!"
수 만개의 무기로 이루어진 폭풍을 힘으로 부숴버리고, 눈부신 화염 사이에서 박일표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박일표의 온 몸에서 그 온도를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불꽃이 뿜어져 나왔으며 꼬리의 수는 어느새 10개로 늘어나 있었다. 지금 상태라면 순수한 힘으로만 본다면 생전의 호조사狐祖師보다도 확실히 우위일 것이다.
"크으으...워어어어어어어!!!!"
박일표는 지치지도 않는지 온 몸을 기괴하게 뒤틀며 힘껏 포효했다. 그러자 주변의 풍경이 일그러지며 무언가가 소환되기 시작했다. 6주인 '프랄트릴러' 였다. 이미 자아를 잃고 영혼도 파괴된채 날뛰는 박일표에겐 프랄트릴러의 '크기'까지 제어할 능력은 없었기 때문에 그 본체 그대로를 소환하려는 것이었다.
박일표는 프랄트릴러의 소환을 마치기까지 기다리지도 않고 니콜라오를 향해 날아왔다. 그러나 니콜라오는 체념했는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이윽고 박일표의 양 손이 니콜라오에게 닿으려는 바로 그때,
그 둘은 주변의 공간과 함께 어딘가로 빨려들어갔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크르르...."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박일표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니, 바닥이 아니다. 나무도, 바위도, 사막도, 빙하도, 호수도 있었다. 끝을 모를 정도로 펼쳐져 있는 그것은 '땅'이었다. 위를 올려다보니 까마득히 높은 하늘에 별들이 촘촘히 박혀 별자리를 이루고 있었다.
"후... 이정도까지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정말 그 '박일표'가 맞긴 한건가요?"
※지구본 ㅡ 1대 1 사이즈
더 이상 싸웠다간 지상에 있는 수백만의 목숨이 위험하다고 생각한 니콜라오가 소환한 세계World였다. 박일표와 니콜라오. 그리고 프랄트릴러는 천계도, 신선계도, 인간계도 아닌 가상의 차원에 와 있는 것이었다. 실제 우주와 비교하면 너무나도 초라해 차라리 결계라고 부르는 편이 좋을 정도지만, 그래도 차원은 차원이다. 이런 상황에 특화된 기술이 없는 이상, 아무리 주신들을 능가하는 힘을 가진 현재의 박일표라고 해도 쉽게 빠져나갈 수 없을 것이다.
'둘 중 하나겠지... 박무봉을 찾지 못한 한대위 씨가 올 때까지 시간을 벌거나, 아니면 한대위 씨가 박무봉을 1대 1로 상대하도록 하기 위해 시간을 벌거나. 어쨌건 최대한 시간을 끌어야 해.'
니콜라오는 싸움의 양상을 소모전으로 끌고가기로 결심했다.
"평소라면 시간끌기는 커녕 이미 잿더미가 됐겠지만, 오늘은 아닙니다."
환한 빛이 온 세상을 뒤덮기 시작했다.
"오늘만큼은 전 세계가 내 편이니까."
인지도로는 어지간한 주신들조차 능가하는 네임드 중에서도 최고의 네임드.
※니콜라오 차력 ㅡ 산타 클로스Santa Claus
창, 방패, 검, 도끼, 골렘, 소환수, 전차, 요새, 전투기, 건담, 우주전함, 짐승 모양의 조각상에 스스로 움직이는 갑옷까지. 그 외에도 용도조차 모를 온갖 물체들이 하늘을 뒤덮었으며 각자의 방식으로 박일표를 노리기 시작했다.
"크르르... 크워어어어어어어어어어!!!!!!"
이미 니콜라오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는데다 온갖 물체들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박일표는 끝없는 분노를 불태우며 딱히 대상을 정하지도 않고 사방으로 공격을 퍼부었다. 프랄트릴러 역시 박일표의 영향을 받았는지 미쳐 날뛰며 지구본의 표면을 통채로 갈아엎기 시작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한대위는 대기권 밖의 한 인공위성의 몸체 위에 앉은채 지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니콜라오는 박일표를 데리고 어딘가로 사라져버렸지만 샤오첸과 나머지 신도들은 잘 해내고 있었다. 알파벳 집행위원 대부분이 전투불능에 빠진 지금, NOX의 군단은 온 대륙을 돌아다니며 세계정부 지부들을 파죽지세로 박살내고 있었다.
하지만 박무봉은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죽어버리기라도 했는지 아직까지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한대위를 지치게 만들어 먼저 모습을 드러내게 하려는 속셈일까? 하지만 그렇다기엔 이렇게 버팀으로써 박무봉이 잃는게 훨씬 많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샤오첸이 그나마 남은 집행위원들을 쳐부수고 있을 것이다. 와이파이 기지국을 부수는 것은 덤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게 시간을 끄는건 박무봉에게 악수惡手였다.
"겁쟁이 녀석."
박무봉이 안 나오는 것이 아니라 못 나오는거라는 사실을 모르는 한대위는 경멸의 어조로 중얼거렸다. 박무봉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이렇게 기다리고 있을 이유도 없다. 생각해보니 니콜라오가 박일표를 데리고 사라지기 전에 프랄트릴러의 모습이 잠깐 보인듯 했다. 한대위는 니콜라오를 돕기로 결심하고 지상으로 내려갔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강 검사...!! 대체 어떻게...!! 이게 무슨 일이야 도대체!!!"
박무봉은 그토록 믿었던 강 박사의 정체가 강 검사였다는 사실에 어지간히 충격을 받았는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시끄럽다 무봉아. 19년이면 많이 참은거지. 아니.. '우리' 중에선 가시장작 위에서 잠을 자거나臥薪 매일 쓸개를 핥아먹는 녀석嘗膽들도 있었으니... 이 정도면 평범한건가?"
박무봉은 온 힘을 다해 분노와 당혹감을 억누르고 강 검사의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집중해서 보면 볼 수록 모습이 고정되지 않은채 흑인, 백인, 아이, 노인, 심지어 성별마저 다른 온갖 존재가 겹쳐보였다. 게다가 강 검사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길한 기운은 점점 커져만 갔다.
하지만 그게 뭐든 상관없다. 갑자기 튀어나온 잡종 녀석이 '인간문화재 박무진'을 상대할 수 있을리가 없었다. 박무봉은 정신을 가다듬고 오른팔을 옆으로 뻗은채 힘을 집중했다.
※와이파이Wi-Fi 동기화
양자컴퓨터 ADAM의 본체도 아가르타 어딘가에 옮겨놓은 지금, 와이파이의 컨디션은 그야말로 최고였다. 박무봉의 기계팔은 근처의 차력부터 하나씩 스캔하기 시작했다. 우선 P의 마리오네트, 그리고 강 검사의 차력도....
"크....커헉....!!!!"
온 몸의 핏줄이 끊어지는 격통이 갑작스레 박무봉을 덮쳤다. 온 몸이 경직된 박무봉은 우스꽝스럽게 비틀거리더니 피를 토하며 바닥에 엎어졌다. 박무봉의 기계팔에서는 스파크가 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시커먼 연기가 나오고 있었다.
다음화에 계속...
추천0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