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 박두진
푸른 하늘인들 한 줄기 선혈을 안 흘리랴?
의지의 두 뿔이 분노로 치받을 때
태산인들 딩굴으며 무너지지 않으랴?
전신이 노도처럼 맞받아 부딪칠 때
오늘 한 가락 고삐에 나를 맡겨
어린 소녀의 이끌음에도 순순히 따라 감은
불거진 멍에에 山 같은 짐을 끌고
수렁에 철벅거려 종일을 논 갈음은
네굽 놓아 내달리는 벌판의 자유
찌르는 뿔의 승리를 모르는 바 아니라
오늘은 오오래인 오늘은 다만 참음
언젠가는 다시 벅찰 크낙한 날을 위하여
눈 스르르 감고 새김질하는 꿈 한나절
먼 조상 포효하던 산악을 명상하고
뚜벅뚜벅 한 걸음씩 절렁대는 요령에
대지 먼 외줄기길 천리를 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