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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드 아트 온라인 인피니티 워 2 일본 본토 전 (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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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0-0 | 조회 568 | 작성일 2020-11-17 23:5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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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드 아트 온라인 인피니티 워 2 일본 본토 전 (302)

 


'......그 당시
 
 니놈의 그 잘난 오션 터틀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느 누구도 모를 거라고 생각한 거였어?

 그 당시에

 그 오션 터틀 근처에

 니 놈이 그렇게 자부하는 그 앨리시제이션 계획을 원거리에서 탈취하기 위해서

 영국에서도 최고 극비로 취급하는 ATAC (Air Tracking Attack Communicator : 날아오는 미사일을 지시, 유도 할 수 있는 초저주파 발신기) 가 장착된 영국 해군의 전자수집선이 그 근처에 대기하다가

 그 가브리엘 밀러가

 스펙터의 명령으로

 그가 타고 있던 시울프 핵잠수함에 실린 기뢰를

 그들 모르게

 그들이 타고 간 침투용 잠수정에 몰래 싣고 가서

 그 오션 터틀 습격작전을 진행하는 것과 동시에

 그 침투용 잠수정을 이용해서

 그 해역에서 몰래 타격을 가한 수뢰 공격때문에

 그 오션 터틀이 있던 해상에서 격침을 당했단 말이야!

 그런 행동을 한 이유가

 만약

 그 가브리엘 밀러가

 앨리스를 탈취하는 임무를 실패하는 상황이 생긴다고 해도

 그 가브리엘 밀러가 비밀리에 격침시킨

 영국 해군 전자감시선에 탑제된 ATAC를 탈취하는 것이

 그들이 진행하려고 한 또다른 계획이었다는 거지!

 만...만약에

 그 스펙터의 손에 ATAC가 넘어갔다면.........

 진짜로

 인류의 모든 사람들의 목숨을

 스펙터 손에 넘길 수도 있었단 말이야!!!!

 ATAC가 그들의 손에 넘어간다면

 핵미사일 발사 명령이 교란을 당하는 정도가 아닌

 미국이나 영국의 핵잠수함이

 도쿄나 워싱턴을 핵공격하는

 그런 상상을 초월하는 재앙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말이지.......

 말 그대로

 전 세계의 폴라리스 핵탄두 미사일 잠수함 전체가

 스펙터의 손에 넘어간다고 할 수 있으니까 말이야............."

 

 

 

 

 

 

 


그런 모리 일등육좌의 말에

 

키쿠오카는

겨우 전쟁에 쓰일 수 있는

고기능성 인공지능을 개발하려는

자신의 순수한 욕망이

이 지구 그 자체를 멸망시키던지


아니면


지구 그 자체를 악마의 손에 좌지우지하는

그런 말도 안 되는 그런 상황에 빠지게 한 것인가 하는

혼돈으로

멀미 저리가라 급으로

어질어질 해지고

 

동시에

그의 머리 속을 스치는 생각은


내가 지금까지 뭔 짓을 한 것인가 하는

혼돈과


잠시동안이었지만

그 키리토의 악마적인 모습이

그가 지금까지 보아왔던 그 키리토의 모습 대신

그의 인격으로 자리잡았다면

자신의 그런 키리토의 화풀이 상대가 되기 전


그리고


자신때문에

인류가 악마의 지배하에 놓이던지

지구 그 자체가 멸망을 하는 그런 상황이 되기 전


바로

입에 권총이라도 물고

자살을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크리터와 PoH를 고문(?)하던

그 키리토의 악마적인 모습을 보느니


그나마

스스로 머리에 총알이라도 박아 버리는 것이

그래도

인간다움이라도 유지하면서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그렇게 죽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신께서 내려주시는 축복이며 구원이라는 것을

뼛속깊이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키쿠오카 일등육좌는

그 때 사총사건의 범인 중

키리토를 습격하고 나서 경찰에 잡힌 레핑 코핀의 간부인 조니 블랙을

모리 일등육좌와 키리토가

직접 유치장에 도착하기 전

중기관총으로 벌집을 만든 것도 모자라서

헬파이어 대전차 미사일로

뼛가로 하나 남기지 않고

완전히 부숴버린 것을

그제서야 이해를 할 수 있었다.


그 조니 블랙의 철부지같은 행동을

미리 예측을 했다고 하고

그런 매너없는 어린아이같은 행동에 대해서

단단히 삐친

키리토의 동의를 얻었다고는 해도

모리 일등육좌가

직접 그 조니 블랙을 헬파이어 미사일로 산산조각으로 분쇄한 그 행동은

일본의 모든 인간들이 핵무기로 증발하는 거에 비하면

키리토가 조금이라도 화를 낼 수도 있는 요인이 될 수 있는 존재를

그런 식으로 없애버리는 것이

차라리 낫기 때문이었다.


그런 돼지 사료만도 못한 단백질 덩어리를 완전히 부숴서

도로 포장재로 만드는 편이

그 조니 블랙 때문에

키리토의 화가 또다시 폭발하는 것보다는

백배 천배 낫기 때문이었다.


그 범죄자 하나의 목숨보다는

일본의 1억 2천만명의 목숨이 더 가치가 있으니까........

 

 


그리고


동시에

키쿠오카 세이지로는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진정한 카인의 낙인을

평생동안 간직해야 한다는 것도

동시에 깨닫게 되었다.


진정한 전사이자

순수한 투사를 지휘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존재를

하찮게 대한 자신에게는

지옥불에서 영원히 온 몸이 타틀어가는 벌조차도 과분하다는 것을................

 

 

 

 

베트남 참전용사 추모 기념비


베트남 참전용사 기념비는 워싱턴의 다른 기념비들과는 달랐다. 워싱턴 광장이나 잔디밭을 장식한 극사실주의적 조각들로 유명한 도시였다. 그러나 이들과 달리 이 기념비는 길고, 낮고, 검게, 내셔널 몰 아래쪽으로 파고 들어갔다. 의미심장해 보이기도 하고 무의미해 보이기도 하는 이 기념물은 미국인들의 마음을 건드렸다. 그것은 아마도 그토록 단순한 형태 속에서 미국인들이 경험한 비극의 무게가 담겨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베트남전쟁은 언제나 미국인의 의식 속에 어두운 오점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선전포고도 없었고 의회가 침공이나 군사적 개입을 승인한 적도 없었지만 이후의 미국 대통령들은 계속 전쟁에 휘말렸다. 미국 내의 항의는 격렬하고 뜨거웠다. 곳곳에서 폭력 시위가 발생했다. 군대를 증오하는 것이 유행처럼 되었다. 한 세대 전만 해도 미국과 일본, 한국에서 그토록 영웅적으로 싸웠던 미군이었는데 말이다.


시대는 달라져 있었다. 이 전쟁은 부당해 보였다. 고국에 돌아온 미군 병사들은 종종 적대적인 대중들의 손가락질을 받았고, 그나마 무관심이 가장 호의적인 반응이었다. 나라를 위한 군 복무는 증오의 대상이 되었고 정부에 반대하는 미국인들은 문화적 영웅이 되었다.


이러한 끔찍한 갈등 속에서 참전용사들은 갈 곳이 없었다. 대중과 정부에게 모두 외면당한 그들은 아무런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남은 것은 고엽제 휴유증과 전쟁의 피로, 그리고 전쟁터에서  받은 충격뿐이었다. 잃어버린 팔다리와 열대성 질환의 고통은 말할 것도 없었다.


1975년, 사이공에 남아 있던 마지막 미국인들이 이 도시를 탈출했다. 공산당에 점령당한 사이공은  호치민 시가 되었다. 그리고 베트남의 정권은 여전히 공산당이 쥐고 있었다. 먼 나라의 전쟁터에서 죽어간 수많은 미국인들의 희생은 헛된 일이 된 것처럼 보였다. 무엇 때문에 58,000명의 미국인들이 불확실한 대의와 환상에 불과한 목표를 위해 죽어가야 했는가


이러한 배경에서 1969년에서 1970년 사이에 전쟁터에서 싸웠던 베트남전 참전 용사 잰 스크럭스는 이 인기 없는 전쟁에서 죽어간 이들을 추모하기 위한 기념비를 세워달라고 정부에 요청했다.


이 기념물에 대한 요구 조건은 몇 가지로 요약될 수 있었다.


1. 사색적이고 명상적인 성격의 작품이여야 한다.

2. 주변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이 기념물은 링컨 기념관과 워싱턴 기념탑 사이에 세워질 예정이었다.)

3. 사망자 또는 실종자의 이름이 들어가야 한다.

4. 전쟁에 대한 정치적인 주장이 들어가서는 안 된다.


대부분의 공모전과 마찬가지로 일부 응모작은 마감일 직전에 제출되었다. 마감일이었던 1981년 3월 31일 오후 5시부터 자정 사이에만 150건의 응모작이 도착했다. 마감을 5분 남기고 한 여성이 주차장에서 신청서를 작성하고 응모작 이곳 저곳에 주소를 적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1,421점의 응모작이 232점으로 추려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엄청난 숫자였다. 최종 심사에 올라온 작품은 39점이었다. 모든 응모작은 번호로만 표시해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설계자가 누구인지를 알 수 없도록 했다.


베트남 참전 용사 기념 기금 직원들이 결과를 알리기 위해 린의 기숙사로 찾아왔을 때 누구보다 놀란 사람은 바로 그녀 자신이었다. 대중들은 1등상의 수상자가 유명한 건축사 사무소나 건축가가 아니라 무명의 학생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수상자는 19세 아사아계 미국인이자 아마추어로 결코 유명인이 아니었던 마야 린이었다. 그녀는 워싱턴의 기자들과 수많은  참전 용사 단체의 맹공격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녀의 주된 목표는 디자인을 통해 인류의 비극을 포착하는 것이었다. [출처] [미술]베트남 참전용사  기념비-마야 린|작성자 세상의 중심은 나


마침내 1982년 재향군인의 날에 기념비를 공개하게 되었다. 공식 개장식 며칠 전부터 사람들은 워싱턴에 모여 기념비가 공개되는 순간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외면을 받으며 살아온 군인들이 마침내 자신들의 기념비를 보기위해 고향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너무나 많은 것을 거의 아무 보상도 받지 못한 이들에게 대중이 고마움을 표할 기회였다. 워싱턴  국립성당에서 사전 의식이 거행되었다. 며칠 동안 모든 참전 용사의 이름이 크고 천천히, 그리고 장엄하게 낭독되었다.


개막식이 끝나고 공개된 기념비는 누가 봐도 인상적이었다. 한 전문가는 기념비를 세우기 위해

깊게 파들어간 땅을 '부끄러움의 상처'라고 불렀다. [출처] [미술]베트남 참전용사  기념비-마야 린|작성자 세상의 중심은 나

 

기념비의 검은 벽은 마치 거울처럼 보는 사람을 비추어, 돌 위에 깊이 새겨진 그 이름들 위에서 자신의 얼굴을 보는 기이한 경험을 하게 만들었다. [출처] [미술]베트남 참전용사  기념비-마야 린|작성자 세상의 중심은 나

 


땅의 깊이 때문에 수천 명의 이름이 새겨진 벽과 그 상실의 깊이가 보는 사람들의 머리 위로 거대하게 드리워졌다. [출처] [미술]베트남 참전용사  기념비-마야 린|작성자 세상의 중심은 나

 


사람들은 기념비 표면에 트레이싱지를 대고 연필로 문질러 그 이름들이 새겨진 종이를 집으로 가져갔다. [출처] [미술]베트남 참전용사  기념비-마야 린|작성자 세상의 중심은 나

 


개막식에는 15만 명이 참석했다. 이 기념비가 모든 경계를 뛰어넘어 미국인들을 하나로 만든 것이다. 린은 땅 속에 새겨진 깊은 상처가 치유될 것이라고 말했다. 베트남 상흔은 결코 지워지지 않겠지만 이제 치유의 과정이 시작된 것이다. 이 기념물이 미국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첫 걸음이라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미국인들은 적어도 한 가지 교훈을 얻었다. 걸프전이 발발했을 때에는 참전 용사들에 대한 비난도, 군대에 대한 증오도, 전쟁터에서 싸우는 이들에 대한 양가감정도 없었다. 추궁해야 할 쪽은 나라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이 아니라 정치인들이었다.


베트남 참전 용사 기념비는 사실주의에 대한 추상주의의 승리이다. 검은 벽의 한쪽 끝은 워싱턴 기념탑 방향을, 다른 한쪽 끝은 링컨 기념관 방향을 가르킨다. 미국의 역사에서 베트남전쟁의 위치를 보여주는 것이다. 예술적으로는 링컨 기념관 안에 있는 조각상의 극사실주의와 워싱턴 기념탑의 미니멀리즘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한다.

출처: 걸작의 비밀/존 B. 니키

[출처] [미술]베트남 참전용사  기념비-마야 린|작성자 세상의 중심은 나

 

 


의장대

최근 수정 시각: 2019-02-04 11:07:04

 

 

분류:
 병과|
 

 

목차

1. 개요

2. 역할

3. 대한민국의 의장대


3.1. 국방부 의장대대


3.1.1. 삼군의장대

3.1.2. 여군의장대

3.1.3. 전통의장대

3.1.4. 기타

3.2. 다른 의장대

4. 세계의 의장대


4.1. 미국

4.2. 중화인민공화국

4.3. 중화민국

4.4. 영국

4.5. 러시아

4.6. 일본

4.7. 칠레

4.8. 북한

4.9. 아르메니아

5. 의장대원의 고충

6. 기타

7. 군대가 아닌 곳의 의장대

?1. 개요[편집]


파일:external/c4.staticflickr.com/15412486051_72e4da9f3a_z.jpg
대한민국 국군 의장대. 계룡대 연병장에서의 국군의날 행사

 

한자: 儀仗隊
영어: Honor Guard(미국)/Guard of Honour(영국)

국가 경축 행사나 외국 사절에 대한 환영, 환송 등의 의식을 베풀기 위하여 특별히 조직·훈련된 군부대. 군악대도 의장대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

'의장대'라는 문화는 서유럽 쪽에서 만들어진 개념으로, 국가원수나 귀빈 등을 맞이할 때 의장대의 사열을 하는 문화는 역시 서유럽의 전통을 본딴 것이다. 물론, 동양권에서도 열병식 등 비슷한 문화는 있었다. 이와 관련하여 등단이란 용어가 있다. 현재는 작가로써 정식데뷰를 일컫는 말이지만, 원래 의미의 등단은 장군반열에 오른 무관이 단위에 올라 사열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의장대는 가급적 그 나라의 전통을 반영하는 경향이 있는데, 몇몇 식민지 출신 국가에선 이것이 식민지 시절의 군복이나 군장류의 디자인이 반영되기도 한다.
?2. 역할[편집]


최초의 시작은 유럽의 왕실 근위대 등으로, 과거에는 여차하면 실전에도 나가는 정예 부대였다. 사실 의전행사라든지 제식이라든지 하는 것은 근위대의 핵심임무중 하나였다. 근위대는 신체조건도 좋았고, 다른 부대보다 더 정예였으며, 여러가지 보급이나 예산상 우선권을 가지고 있었기에 화려한 복장(부대원들의 사기진작을 위해)을 하고서 왕이나 영주를 호위하는 핵심부대로서 사열이나, 중요한 행사때 의전뿐 아니라 근접경호 더 나아가서는 행사장 주변의 치안 및 질서유지를 맡아왔는데, 거기서 떨어져나와 전문으로 의전만을 담당하는 부대가 생겨난 것이다. 또한 집단전에서의 제식이 발달함에 따라 특히나 총병의 제식은 창병의 그것을 더욱 발전시킨 것으로 밀집진형을 유지하면서 부대를 전개시키기 위해서는 제식이 중요했는데 이 제식을 가장 잘하는 정예가 근위대였다는 게 그리 이상한 것은 아니다. 그러던 근위대에서 지금은 과거의 전투부대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유럽 의장대가 가슴이나 어깨에 매고 있는 견식(끈 매듭 모양의 장식)이 원래는 지휘관의 명령을 받아 적기 위한 펜을 묶어놓는 끈에서 시작한 것이다.(미군이나 영국군, 프랑스군등 수많은 나라에서 여전히 견식줄 끝에 펜 형태의 금속 장식을 달아놓는다.) 이는 지금도 전속부관이나 참모, 보좌관 등이 상시 차고 다니며 신분을 나타내는 데 쓰인다. 직위에 상관없는 헌병과 군악대 역시 견식을 맨다. 또한 견식이외에도 의장대를 뜻하는 영어 명칭인 honor guard를 보면 guard라는 단어에서 근위대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일반적인 통념은 말 그대로 '장식용 부대'이며, 실제로도 대부분의 의장대는 정말 장식용 부대긴 하지만, 영국군 근위대처럼 의장 임무도 수행하면서 정규 전투 부대로도 활약하는 부대도 있긴 하다. 그리고 그렇지 않은 부대라고 하더라도 어쨌거나 군인이긴 매한가지라 최소한의 전투 훈련은 받는다. 단지 국군의 날에 총 돌리는 행사나 사열만 하는건 아니다. 각 군의 큰 행사는 물론, 현충원 등 참배행사, 각국 귀빈 방한시 의전행사, 군 관련 안장행사, 군 관련 결혼식 예도 행사, VIP의전 행사 등도 참여한다. 한마디로 의장대가 지원되는 행사는 군에서 최고의 예우를 행하는 행사라고 볼 수 있다. 이 외에도 각군 사령부, 계룡대 같은 시설의 경비업무를 겸하는 경우도 있다.그리고 '장식용'이라는 속성의 특징상 의장대는 의장병을 선발함에 있어서 당연히 외모를 보고 선발한다. 대한민국 국군 의장대에서는 병은 물론이고 부사관 및 장교도 키 180cm 이상에 용모가 단정해야 하며 선발시 면접전형도 치른다. 또한 수십 가지의 복잡한 제식동작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숙지해야 하므로 일정 수준 이상의 두뇌도 갖춰야 한다. 국가별로 정규 의장 특기가 존재하는 경우도 있고, 아니면 그냥 여러 병과 인원 중 지원자를 받거나 차출해 순환 배치하는 경우도 있다. 국군은 병은 의장 특기가 존재하나, 부사관과 장교는 의장 특기가 없이 보병(육군/해병대), 항해(해군, 부사관은 갑판.), 정훈(공군 / 부사관의 경우 총무특기 하위 분류로 의장특기가 따로 있다) 등에서 선발한다.

내무 군기가 강하다고 소문난 부대 중 한 곳이다. 외부에는 행사에서의 칼같은 모습만 보이는데다, 내부적으로는 평소에 군기가 강해야 행사에서 실수하지 않는다는 명목으로 각종 내무부조리 등이 행해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러한 내무부조리와 행사에서의 실수는 별반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없어져야 할 대표적인 악폐습의 하나

오지 작전과 같은 특수한 예외를 제외하면 현대전에서 거의 사라진 기병이 그 역할을 다하는 부대이기도 하다. 한국군 의장대에는 없지만 해외의 의장대 중에는 기병 형태를 유지하는 기마 의장대도 적지 않다.

일제강점기 기간에도 조선 왕실인 이왕가 소속으로 의장대인 조선보병대가 있었다. 일단 명목상으로는 일본군과는 별도의 군대였다.

3. 대한민국의 의장대[편집]


파일:external/i789.photobucket.com/imgp0726_saechan.jpg
대한민국 공군 의장대 행사복.현재는 행사복디자인이 차이나 칼라 형태로 바뀌었다.

 


행사는 전투다


전세계적으로 꽤 높은 평가를 받는 상위권에 속해있다. 특히 해군 의장대는 1976년 미국 독립 200주년 기념 행사의 일환으로 개최된 세계 의장대 경연대회와 1978년 미국 시애틀 탄생 제75주년 기념축제 퍼레이드에서 우승한 전적도 있다. 국군 의장대는 키가 180cm 이상이 되어야 하며, 용모가 준수해야 한다.[1] 공식 행사에서는 제식, 총 돌리기 등의 공연을 한다.

주임무가 행사인만큼 행사와 관련된 모든 사항(실제 행사, 리허설, 행사 전 정비, 행사 후 정비)을 완벽히 수행하려 한다. 행사의 종류로는 크게 사열행사와 동작행사로 나눌 수 있고, 그 외에 기수행사가 있다. 사열과 동작이 섞여 있는 경우도 있다.


사열행사: 국가나 군 관련 의전행사. 엄숙한 분위기에서 정확한 대오를 맞춰 진행하다 조용히(물론 도중에 애국가 등이 나오기는 한다) 끝난다. 대통령 이취임식, 외국 귀빈 환영식, 사령관 이취임식, 현충원 참배식 등. 일반인들은 잘 모르지만 대부분의 행사는 사열에 속한다. 총끈이나 수갑 등의 행사용품을 최상급(가장 깨끗한)으로 사용한다.

 

동작행사: 의장대하면 흔히 떠올리는, 총 돌리고 던지고 공포 쏘고 파도타는 행사. 사열행사에 비해 보다 가볍고 흥겨운 분위기로 진행되며[2] 부대에 따라서는 중간에 춤을 추는 순서도 있다. 일종의 대민행사로서, 용산 전쟁기념관 정례의장, 서울 축제 시가행진, 진해 군항제, 지상군 페스티벌, 공군 에어쇼 등의 의장대 순서가 이에 해당한다. 사열행사에 비해 급이 떨어지는 행사용품을 사용한다. 어쩔 수 없는 것이 총을 막 돌리다 보면 수갑이나 총끈이 더러워질 수 밖에 없다.

 

기수행사: 앞서의 행사와 다르게 의장대가 메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두어명만 특정 행사에 가서 깃발을 세워주고 행사가 끝나면 회수해 오는 행사이다. 예를 들어, 군악대 정례발표회 때 오케스트라 뒤로 해당 군악대와 관련된 부대기를 좌악 세워주는 식이다. 가끔은 세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명의 기수가 동원되어 직접 깃발을 들고 있는 경우도 있다. 각종 국기와 부대기를 다수 보유하고 관리하는 곳은 해당 지역의 의장대 밖에 없기 때문이다.

 

군부대 중에서 유일하게 이등병이 행사에서 병장 계급장을 달 수 있는 부대이다.[3] 대통령 주관 행사 등에 참가하는 경우에는 다 병장을 달고 나온다. 대통령 취임식 때 잘 살펴보면 의장대원들은 모두 병장이다. 또한 육군 의장대 간부들의 경우는 특전사 근처에 얼씬도 않은 간부임에도 불구하고 은성월계휘장을 달 수 있다. 물론 진퉁 휘장은 바로 특수전사령부 혹은 공수여단 의장대. 아무래도 '뽀대'가 임무수행인 부대이다 보니 의장병들도 웬만하면 병장 계급장을 달고 간부들도 달 수 있는 휘장은 최대한 달고 다닌다. 이에 대한 비판도 많은데, 아무리 뽀대가 중요하더라도 휘장은 분명 그 휘장을 달기 위한 여러 조건들을 힘들게 충족시켰음을 나타내는데 이걸 굳이 행사용으로 뽀대낸다고 달고 다니는 게 옳으냐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최근에는 안단다는 이야기가 있다.

파일:external/c2.staticflickr.com/15281198209_60cbac867c_z.jpg
대한민국 해병대 의장대.

국방부 통합 의장대대는 의장용 소총으로 M16A1 소총을 사용하며, 해병대사령부 의장대는 전통을 고수하여 M1 개런드 소총을 사용하고 있다. K2 소총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개머리판이 접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8년 현재는 ?K-2C1도 사용한다. 그리고 한미연합사 의장대의 경우 ?노후화된 M1 개런드 대신 M14 소총도 사용한다.

한국 공군 의장대도 총 정도는 교환한다![4] 미군이 부럽지 않다.

공군 의장대의 텔미(3:42)와 까탈레나. 딱딱한 느낌과 다르게, 공군 의장대는 요즘 최신 유행곡에 맞춰서 의장 행사를 하고 있다.

의장대는 해당 부대가 관할하는 지역에 있는 대학교나 유명 관광지로 행사를 뛰러 가기도 한다. 제3야전군사령부 의장대가 행사를 뛰러 단국대학교에 가거나 에버랜드로 가는 식. 사실 의장대가 대학교를 가는 경우는 해당 대학교의 ROTC 임관식 등이다. 부대에 있을 때는 PX를 걸고 총 돌리기 게임을 하기도 한다.


3.1. 국방부 의장대대[편집]


파일:welcoming ceremony.jpg
청와대 공식환영식 총원 사진(검은색이 해군+해병, 남색이 공군[5], 회색이 육군[6], 나머지 모두 전통)

 


우리의 자세와 행동은 대한민국을 대표한다 [7]


서울 용산의 국방부 근무지원단 소속으로 전군 의장대 중 유일하게 대대급 부대이다. 따라서 지휘관으로 소령(의장대장)이 보임하는 타 의장대와는 달리 중령(의장대대장)이 보임한다. 청와대 및 정부, 합참의 행사는 물론 수도권의 행사까지 상당수 담당하기 때문에 규모가 타 의장대에 비해 매우 크다.

본부중대를 별도로 가지고 있으며, 더불어 육군의장대, 해군의장대[8], 공군의장대, 전통의장대[9], 현충원의장대[10], 연합사의장대[11]로 구성된다. 본부중대에는 기수소대와 여군소대가 포함된다. 현충원대와 연합사대는 혼성군 편성으로 육해공군 각 1소대씩이며, 당연히 각각 서울현충원과 한미연합군사령부에 위치한다. 국방부 의장대는 전군에서 유일하게 여군의장대와 전통의장대를 보유하고 있다. 제식소총은 M16A1을 사용한다.

육방부답게 모든 업무가 육군 기준으로 돌아간다.[12] 따라서 해군과 공군 입장에서는 서울 근무라는 메리트 외엔 간부와 병 모두에게 그리 좋지 않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해병대 병들은 해공군과 똑같이 외박을 나간다. 즉 복무기간은 육군과 같고, 외박규정은 해군을 따른다. 결국 육군 병사는 약간이라도 득을 보고, 해군 수병과 공군 병사는 손해이다.2천년 초반에는 육군 규정으로 외박을 나갔다, 영문경비와 경계근무, 5분대기조도 맡는다.

병들은 국방부 내의 각종 사역에 동원된다. 군무원 창고정리, 국방부 내부 공사에서부터 총장공관 공사까지 다양하다. 진지 공사를 하거나 하진 않기 때문에 그렇게 힘든 사역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군번이 꼬인 경우 1달 동안 총 돌리는 훈련은 몇 번 하지도 못한 채 사역만 다니기도 한다. 이래놓고 간부들은 "애들 실력이 왜 이렇게 안 느냐"고 난리...

2010년 즈음 다 쓰러져가는 벽돌 막사에서 신막사로 이전했다. 침상에서 침대형으로 바뀌었다.
행사 중에는 총원 행사인 청와대 행사가 힘든 편이다. 공식환영식-정상회담-만찬으로 이어지는 3종 세트의 경우, 오전에 부대를 떠났다가 밤에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신임장 행사의 경우, 미국 대사가 포함되거나 행사국 숫자가 많을 경우 대기시간이 길어져 역시 힘들어진다. 국방부나 합참 행사는 편한 편이다. 이동거리 자체가 없는 수준인데다 대기시간도 청와대 행사에 비해 짧은 편. 일반적으로 2주에서 3주 정도를 전군 의장대가 합숙해야 하는 국군의 날 행사를 최고봉으로 친다. 특히, 5년마다 돌아오는 큰 국군의 날 행사와 같은 해에 치뤄지는 대통령 취임식은 극악. 사실 경험자가 별로 없어서 그렇지, 비정기적으로 발생하는 대통령 영결식이야말로 최종보스이다. 대통령 영결식의 경우,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가 24시간 체제로 돌아간다. 현충원 하관식까지 마치면 전 대대가 진이 빠진다. 비교적 최근에 최규하, 노무현, 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 영결식이 10년간 4번이나 일어났다. 다만 현재 생존해 있는 전직 대통령들 중에서 전두환, 노태우, 박근혜는 이미 국가장 자격을 상실했고, 이명박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당분간은 없을 듯 하다.[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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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제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판문점에 도열한 국방부 의장대가 소총을 기존의 M16A1에서 K2C1, 그것도 에르고 그립까지 그대로 달고 나온 모습이 보였다. 동작행사를 K2로 할 수는 없을테니, 사열행사에는 K2를 사용하고 동작행사에는 M16을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3.1.1. 삼군의장대[편집]

 

의장대원 중 육군은 국방부 의장대로 따로 지원한다. 기본 조건은 신체등급 2급 이상, 180cm 이상 등. 공군은 의장대를 따로 선별하며, 해군과 해병은 차출되고 배치되므로 훈련소에서 지원자가 적다면 3급도 차출되는 경우가 있다.[14]

육해공군 의장대는 대부분의 행사에 묶여 다닌다. 거의 유일한 예외는 공군의장대만이 뛰는 서울공항 도열행사 정도.[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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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인조 정기수. 왼쪽부터 우호위-공군기-육군기-국방부기-태극기[17]-합참기-해군기-해병대기-좌호위
(합참과 해병이 빠진 7인조 형태로 운영할 때도 있다)

동작행사의 경우 각 24명씩 72인조로 크고 아름다운 규모로 구성된다. 거기에 9인조 정기수를 합치면 81인조. 동작행사로는 세계 최대 규모라고 보면 된다. 여군의장대가 같이 뛰면 87인조..가 된다. [18]. 아무래도 인원이 많은 만큼 전체가 완벽하게 일치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대신 타 의장대에서는 만들 수 없는 태극기나 국방부 대형[19]을 만들 수 있으며, 일렬 대형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다.[20] 구막사 시절에는 연병장도 제대로 없어서, 아스팔트나 시멘트 위에서 훈련을 하곤 했다. 당연히 72인조 통합훈련은 꿈도 꿀 수 없었으며, 이를 위해선 아예 부대 밖(현충원 주차장이나 전쟁기념관 광장)으로 나가서 했다. 삼군끼리 경쟁적으로 빡센 모습을 보이기 위해 악을 쓰곤 한다. 돌려총의 경우 총끈[21]으로 돌리며, 공군과 육군은 대각으로, 해군과 해병은 수직으로 돌린다.

대형은 기본대형(밀집)-태극기-국방부-충☆성(건00국)[22]-파도타기(일렬)-개선문 순으로 진행된다. 위에서 관람이 가능하다면 관찰하면 재미있을 것이다.

국방부 군악대와 의장대가 함께 하는 정례의장이라는 행사가 4~6, 10~11월 금요일마다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열린다. 동일한 행사를 청와대 앞 분수광장에서 토요일 오전에, 동작동 현충원과 전쟁기념관에서 토요일 오후에 격주로 행사를 한다.

통합 동작행사에서 "개인동작" 시범이라는 순서가 있었는데, 영상으로 봤을 때 일단 2015년부터 행사에서는 빠졌다.[23] 이 개인동작이라는 것은 "어떠한 형태로든 어떠한 상황에서도 총을 돌린다"라는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다. 동작의 난도가 매우 높거나, 각군의 색깔이 너무 강하거나[24], 행사에서 쓰기에 알맞지 않거나 하는 등의 이유로, 공식적으로는 연마하지 않고 병장급에서만 조용히 연마하던 동작들이 있었다. 이 중 공군의 것이 가장 체계적이었기에, 간부의 주도 하에 이를 육해군에 전파하고 동작행사의 한 순서로 넣은 것이 지금의 개인동작 시범이다.[25]

개인동작 연습 행사에서의 개인동작

보통 키가 크고[26] 동작을 잘 하는 일병을 뽑아서, 일병이 끝날 즈음부터 따로 가르친다. 개인동작은 동작 하나하나가 난도가 너무 높고,[27] 통일감이 중요한 72인조 통합 대열에서 쓰기가 쉽지 않다.그래서 행사 도중에 전원을 앉혀놓고 개인동작조 4명만이 시범을 보인 후 쌍총돌리기로 마무리 한다.


3.1.2. 여군의장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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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형 붉은 계통의 원피스 스타일 행사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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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붉은 계통의 투피스 스타일의 여군 행사복

국방부 의장대대 여군소대 소속이다. 전원 육군 부사관으로 구성되며, 세계 유일의 여군 의장대였다고 한다. 대한민국 국군에 여군 의장대가 있는 것을 확인한 중국이, 자기들도 이를 본따서 인민해방군 여군 의장대를 창설했다. 차이점이 있다면 국군이 여군 부사관들로만 이루어져 있다면, 중국군은 여군 장교들&여군 부사관들&여군 병들 모두 이루어진 여군 의장대다.

2011년 이전만 하더라도 동작행사에서 실총을 쓰지 않았으나 "아니,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 실총기가 무겁다고 모의총기를 주는 것이 말이 되는가?"라고 하도 말이 많아서 현재는 동작용 행사 총을 전부 M16A1 실총으로 교체했다. 정확히는 삼군의장대와 함께 하는 통합대형에서는 M16 실총을 사용하고, 여군의장대만 독립적으로 수행하는 순서에서는 여전히 목제 모의총기와 깃발을 사용한다.

통합대형에서 실총을 사용하고 있는 이상, 여군만의 행사에서 모의총기를 사용하는 점은 비난거리가 안된다. 애시당초에 수행하는 동작이 다르다. 남군도 실총을 사용해서 여군의 모의총 동작을 따라하는 것은 개인동작조가 아닌 이상 불가능하다.[28] 다만, 실총을 사용하는 통합대형에서 여군이 다소 실력이 부족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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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이지만 위의 원피스 스타일 이전의 구형 파란색 행사복을 입은 여군 의장대원의 사진. 90년대 후반이나 2천년대 극초반에 찍은 사진으로 추정된다.
참고로, 사진에 나온 복장은 모두 동작용 행사복으로 보통 민간인 앞에서 소위 '총 돌리는' 행사용 옷이고 정식으로 입는 의장복이 아니다. 당연히, 귀빈을 맞고 환영하는 자리에는 육군 여군 정복을 착용한다.

3.1.3. 전통의장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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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에는 전통의장대도 있다. 서양식 의장대와 별도로 이들은 '전통'의장대 답게 '조선의 구군복 및 병장기'를 기본으로 가지고 있다. 이 전통의장대는 노태우 대통령이 미국에 방문했던 당시 미군 Old Guard[29]를 보고 감명받아서 1991년 창설했다. 한 벌에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전통군복을 입고 전통검으로 '받들어 칼!'을 한다. 1910년 조선(대한제국)이 망하고 80년 넘게 지난 1991년에야 전통의장대가 창설되었다는 점 때문에 '가짜, 만들어진 전통' 등이 비아냥이 따라붙는 경우가 꼭 있다. 그러나 군악대/의장대가 뽀대와 전통을 찾아 구체제의 복식을 재현하거나, 이미 수십 년도 더 전의 해체된 부대 자체를 복원하는 일은 세계적으로 흔하므로 딱히 문제가 되진 않는다.

전통의장대는 모두 육군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흔히 말하는 "총 돌리는" 동작시범 행사가 있을 땐 전통 창검술 시범을 보인다. 검술, 등패, 월도, 기창 4가지의 주특기를 부여받아 시범을 보인다. 이들 중에 끼가 보이는 인원을 뽑아 미리 합을 맞춘 교전 시범[30]을 선보인다.

총원 동원 행사의 경우 행사 인원이 너무 많아[31] 전통의장대 자체 인원만으로는 감당이 안되기 때문에 타대에서 가장 많이 행사 인원 지원을 받기도 한다. 즉, 사진에 나온 전통대의 상당수는 실제로는 육해공군의장대 소속이라는 것이다. 인천공항을 타국 수뇌부(대통령이나 장관급)가 이용한다면 직접 맞이하러 가는데 새벽이든 밤이든 공항에 도열을 깐다.

국방부에서 가장 많이 행사를 뛴다. 행사의 종류를 사열과 동작 행사로 구분하는 것 외에도, 삼군|전통|여군의 세 집단이 맡는 행사로 구분할 수 있다. (대통령이나 장관급 행사는 총원 동원이며, 외부 지원도 받아야 한다) 문제는 삼군만 뛰는 행사보다 전통만 뛰는 행사가 꽤 많다는 것. 타 의장대와 담당 구역을 나누는 삼군의장대와 달리 전통의장대는 전군에서 유일하기 때문에 전국 방방곡곡으로 불려다닌다. 이는 여군의장대도 동일하지만, 여군은 규모 때문에 큰 행사를 맡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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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G20 서울 정상회의 때 회의장 입구에서 참여국 정상들을 맞이한 것도 이들이다. 당시에는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숙인 채 귀빈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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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꼿꼿이 선 자세로 바꾼 듯 하다. 아무래도 허리를 굽히는 자세를 오랫동안 하면 힘이 들어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7년 방한했을 때 청와대 진입로부터 본관까지 트럼프의 차량을 수행했는데 트럼프가 크게 기뻐했다고 한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의 개회식에서도 전통 의장대가 행사를 맡았고 직접 애국가를 연주하기도 했다. 그리고 2018 제1차 남북정상회담에서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을 평화의 집까지 수행하고 사열식을 했다.

3.1.4. 기타[편집]


청와대 공식환영식에서는 받들어 총 상태에서 국방부 군악대가 방문국 국가를 연주한다. 국가가 매우 긴 경우가 있는데, 3군은 왼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전통은 허리가 욱신욱신 아프지만 버텨야 한다.[32] 한 번 문제가 됐던 경우는, 인원이 없어 갓 전입온 이병까지 동원해서 청와대에 갔는데 하필이면 국가가 매우 길었던 경우로[33], 신병은 버티다 못해 어깨가 아주 출렁출렁 거렸다.


청와대 신임장 행사 때 청와대 관광객과 자주 마주친다. 의장대 전원은 잔디밭을 둘러싼 도로 양쪽으로 도열한 채 대기하기 때문에 관광객들이 그 사이를 지나다니면서 신기해한다.


청와대 신임장 행사 때 육군의장대장이 '받들어 총' 구령을 '받들어 칼'로 외친 적이 있다. 다행히 육군대원들은 받들어 총을 잘 수행. 나중에 대장은 대대장에게 한소리 들었다.


청와대 신임장 행사 때 총을 떨어뜨린 사례가 존재한다. 해군 의장대의 동행사복을 제외한 모든 행사복의 소매는 통이 크고 긴 형태인데, 소매 안으로 총구가 들어간 상태로 받들어 총을 하다가 총을 떨군 것. 해당 의장병은 당연히 외박을 잘렸다. 대신 이후 모든 청와대 행사에서 빠지는 혜택도 누렸다.


사열 행사에서 지휘관이 경례 도중 예도를 떨어뜨린 적이 있다.


사열 행사 시 군악대(양악대) 바로 옆에 위치하는 육군대 대열에서는 군악대의 온갖 삑사리를 들을 수 있다.[34] 이건 국악대 옆에 서는 전통대 대열도 마찬가지다. 참고로 국방부 군악대대는 국악대, 양악대, 팡파르대, 국군교향악단, 캄보, 스트링 등으로 구성된다.


국방부 의장대대는 항상 국방부 군악대대와 함께 행사를 뛸 때가 많다. 자주 만나다 보니 병사들끼리는 안면을 터서 친하게 지내는 경우도 꽤 있다.


동작 행사 시 대열 안에서는 온갖 목소리로 가득하다. 보통은 다음 동작을 알려주는 소리와 줄맞추라는 소리가 대부분이지만, 일병급이 순서를 틀리거나 얼이 빠진다면 바로 쌍욕이 날아온다.


동작 행사에서 사용하는 동작은 기본적으로 육해공군의 고유 동작[35] + 자체 개발한 국방부 통합동작[36] + α[37]로 구성된다. 개인동작조의 동작까지 세어보면 100개에 육박하지만, 실제 통합동작 행사에서 사용하는 동작의 수는 30개 미만이다.[38]


동작의 박자가 타 의장대에 비해 빠른 편이다. 너무 급해 보일 정도.[39] 박자가 너무 빨라 동작 수준이 낮은 대원은 동작을 제대로 수행하지도 못하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40] 빠른 박자와 느린 박자의 엇박의 교차가 동작을 멋있게 하는 법인데, 오로지 빠른 정박자만을 사용하다보니 속도경쟁이라도 하는마냥 박자가 점점 빨라진다. 이 문제는 이미 수년 전부터 제기되었으나 2017년 현재까지도 간부들의 개선의 의지는 없는 듯 하다.


동작 행사에서 아주 가끔 실총이 부러지는 사고가 발생한다.


폐총은 자주 부러진다. 특히 신병 훈련 때 집중적으로 발생한다.


전통의장대의 교전시범 중에 병장기가 부러지는 경우도 있다.


대검은 날이 무딘 검은색 형태에서, 날을 세운 크롬(광택) 도금을 입힌 형태로 바뀌었다. 크롬 대검 이후 사고가 속출하자, 실제 행사에서 고무로 된 대검집을 착용하고 한동안 행사를 뛰던 적이 있다.


모 해군 의장병이 전역하면서 폐총을 빼돌렸다는 소문이 있었다.


행사복 하의는 통이 매우 넓으며 발목 부분에 고리형태의 스프링을 고정시켜 둥근 형태를 유지하게 한다. 2010년 즈음 근무지원단장 지시로 이 스프링을 모두 제거하고 발목에 고무밴딩을 착용함으로써 매우 꼴사나워 진 적이 있었다.


연합사대의 의장병들은 야박을 하기도 한다.


여군의장대가 있다보니 연애와 관련한 소문이 돌곤 한다.


삼군의 행사화에는 양쪽 뒷굽이 부딪힐 때 소리가 나도록 굽 안쪽에 무쇠징을 박는다. 원래 공군만 부착하던 것을 2천년대 초반에 삼군 전체에 보급했다. 공군은 해당 징을 행사화뿐 아니라 전투화와 단화에도 부착한다. 이 징은 불침번이나 경계근무 시 순찰이 떴음을 알리는데 유용하게 사용된다.


매년 5월 5일 어린이날은 전역자의 날이기도 하다. 많은 수의 전역자가 전쟁기념관에 모여 행사를 구경한 후 술을 마시러 간다. 일반인들이 감탄하고 있을 때, 보통 전역자들은 소위 찐빠(실수)를 잡는데 열중한다.


구막사는 3층 구조로, 1층은 본부중대와 행정실, 2층은 육군과 기수, 3층은 해군과 공군이 사용했다. 전통은 별도로 식당 건물 2층을 사용했다.


본대와 연합사대의 인원들은 서로의 식사를 부러워한다. 연합사는 미군과 동일한 식사를 하는데, 두어 달 먹다보면 질린다고 한다.


국직부대답게 비록 구색맞추기 일지언정 온갖 훈련이란 훈련[41]은 다 한다.


국방부장관 이취임식 행사 때 쓰러진 의장병을 아무런 응급처치없이 그대로 질질 끌고 나가서 비판이 인 적이 있다.[42]


국방부 영내에 마땅한 장소가 없어 체육대회를 한강 둔치에서 벌이곤 했다.


영내에 별이 많기 때문에(국방부 본관에 들어가면 득실득실) 위관이나 영관은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영외 훈련 중, 민간인이 보는 앞에서 간부가 병을 구타한 적이 있다.


출타를 하면 전국 어디든지 나름 빠르게 갈 수 있다. 전철역과 버스정류장, 용산역이 코 앞에 있고, 조금만 가면 서울역도 나온다.


국군으로서 당연한 얘기지만, 치약으로 매우 많은 일을 한다. 다른 부대에서의 사용법 + 행사복 정비에 사용된다.


병들 사이에선 각종 검열(행사복, 전투복, 전투화 등등)이 판을 친다. 군가와 기수 등의 암기강요는 애교


종교활동의 경우, 국군중앙성당과 중앙교회에는 민간인이 많이 오는 편이다.


예전엔 영내에서 지금은 볼 수 없는 연예병사를 자주 볼 수 있었다.


주말마다 국방회관, 육군회관, 해군회관, 공군회관, 용사의집 등 온갖 곳으로 예도[43]를 나가곤 한다. 짬밥 대신 결혼식 뷔페를 먹을 수 있는 기회이긴 하지만, 결혼식 뷔페가 뭐 얼마나 맛있다고[44]. 몇 번 나가고 나면 나가기 싫어진다. 가끔 친한 의장병 4명이서 4인조 예도파티를 모집하곤 한다.


기수대는 행사 깃발을 세우러 여기저기 뻔질나게 다닌다. 당연히 PC방도 많이 간다.


기수대는 동작 행사 내내 깃발들고 뒤에 서있기 때문에 그동안 자기들끼리 떠들며 논다.[45] 한 때는 369가 유행했다.


공군은 행사 종료 후 헤치는 구령이 세 종류다.[46] 헤쳐의 경우, 1년에 한두 번 들을까말까 한다.


2014년 8월 14일 프란치스코(교황)/한국 방문이 있었다. 4.3절 문서를 확인하면 알 수 있겠지만 당시 원래 청와대 사열이 아닌 분열행사를 했었다. 보통 국빈이 도열을 지나가지만 반대의 경우를 말한다. [47]


2018년 4월 27일에 남북정상회담이 열린다. 이때 김정은은 북한 지도자로는 최초로 한국군 의장대를 사열하게 된다. 그러나 한국군이 그들의 주적한테 사열을 받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라서 뉴스의 댓글에는 부정적인 여론이 많다. 하지만 이미 2000년과 2007년, 그리고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북한군 의장대가 한국 대통령에게 경례를 했다는게 함정...


3.2. 다른 의장대[편집]


같은 군 소속이라도 부대별로 차이가 있다는 모양이다. 예를 들자면 ? 육군 제2작전사령부 의장대의 독특한 받들어 총 동작이라던지.[48]

국군 및 경찰에 존재하는 의장대는 다음과 같다. 추가바람


국방부 근무지원단 예하

육군의장대


공군의장대


해군의장대(해병 포함)

 


계룡대 근무지원단 예하

육군 본부 의장대


해군&해병 본부 의장대


공군 본부 의장대

 


육군 지상작전사령부 의장대


육군 제2작전사령부 의장대

 

해군 진해기지 사령부 의장대

 

공군 교육사령부 의장대

 

해병대 사령부 의장대

 

경찰의장대[49]

 

해양경찰의장대


4. 세계의 의장대[편집]


영국처럼 의장대 자체가 그 나라의 상징이 된 곳도 있지만, 이 업계의 최상위권은 단연 미군. 다른 나라 의장대는 자기 총만 던지고 돌리는데, 미군 의장대들은 두 줄로 서서는 서로 착검한 총을 던지고 받는다. 거기다 그 사이로 의장대 지휘관이 걸어다니기도 한다. 미군은 의장 특기가 따로 존재하지 않고, 병과 관계없이 지원자를 받아 선발해 교육 후 배치한다. 의장대에 계속 있는 경우는 드물고 여기저기 순환 근무하는데, 일정 기간 의장대에 근무하면 이를 나타내는 약장을 수여하여 자부심을 느끼게 해 준다.

웬만큼 역사가 있는 나라의 의장대는 볼트액션 및 반자동소총(주로 2차 세계대전 전후에 생산된 소총)을 주로 사용하는데, 이는 볼트액션식 소총의 길이가 현대에서 사용하는 돌격소총보다 크고 아름다운 편이며, 대체적으로 몸통이 목조로 만들어져 있어서 클래식한 느낌이 많이 나오므로 '장식/행사용 소품'으로는 돌격소총보다 훨씬 멋지기 때문이다.

4.1. 미국[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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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합중국 공군 의장대


미합중국 해군 의장대

<어 퓨 굿 맨>에 나온 미합중국 해병대 의장대
의장용 소총은 해병대 M1 개런드, 육해공군 의장대에서는 스프링필드 M1903와 M1917, 간혹 가다 미 육군 의장대에서 M14 소총을 사용하며, 대한민국 국군과의 합동사열시 드물게 M16A1을 사용한다. 의장 행사복은 일반 장병들의 정복에서 부착물을 약간 추가한 정도다.

각군별로 의장대 명칭이 상이한데, 육군과 공군은 Honor Guard, 해군은 Ceremonial Guard, 해병대는 Silent Drill Team/platoon, 해안경비대는 Ceremonial honor guard 라 한다. 사실 정확하게는 honor/ceremonial guard 안에 drill(military drill; 제식훈련) team이 존재한다.미해병대는 사일런트 드릴 플래툰에서 전부 다한다. 미해병대가 미군내에서도 워낙 소수라서 그안에 있는 silent drill platoon 도 다목적으로 우려먹는듯. 그 외에 The old Guard 가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f0utTu69koA 올드 가드는 독립전쟁시기의 제식을 한다. 그리고 여기에 대응되는 군악대로 The old guard fifes and drums(The old guard fife and drum corps)가 있다.?https://www.youtube.com/watch?v=GqMryyZN4kE
4.2. 중화인민공화국[편집]

 

중국 인민해방군의 경우 북경군구 내에 중국인민해방군육해공삼군의장대(中國人民解放軍陸海空三軍儀仗隊)를 두고 있다. 경제개방은 되었지만 체제상으로는 공산당 일당독재를 하고 있는 중국의 경우 옛 공산주의 국가 특유의 예식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어서 위 영상과 같이 대규모 국가행사에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의장대의 성대한 국기(오성홍기) 게양식이 거행된다.[50]천안문광장 국기게양식은 원래 중국인민무장경찰 의장대가 맡았으나 2018년 1월부로 인민해방군으로 넘어왔다.

열병식에서는 맨 첫 번째 종대의 위치에서 행진한다. 또한, 열병식때 맨 앞에서 八一이 새겨진 인민해방군기를 들고 행진하는 군인들[51]도 바로 이 중국 삼군의장대에 속한 군인들이다.[52]

국기(오성홍기) 호위 및 게양을 담당하는 의장대의 무장으로는 은도금된 총검부착형 56식 반자동보총 및 56-1식 자동보총, 세이버 형식의 직도 등이 있다.
한편, 열병식에서 군기(팔일기) 호위 및 거기(擧旗), 행진의 역할을 담당하는 육해공 삼군의장대의 무장으로는 95식[53]이 사용된다.

인민해방군 육군 의장대의 태극기 게양. 해당 영상은 광저우 아시안게임 폐막식 행사로 차기 아시안게임 개최지인 인천광역시에 대회기를 인수하기 전 태극기를 게양하는 영상이다. 베이징에서 매일 행하는 국기 게양식과 하강식 때도 육군 의장대가 동원된다.

해외의 국가원수 방문과 정상회담 시에는 삼군의장대가 동원된다.

 

중국 인민해방군 여군 의장대


홍콩에서도 매일 아침 7시에 홍콩반환기념비 앞에서 국기게양식을 하지만 인민해방군이 아닌 홍콩 경찰 의장대가 거행하고 오성홍기와 홍콩 특별행정구기를 함께 게양한다. 경례 동작이나 발구르기 등은 영국군의 영향이 아직 남아있고, 국기를 올리면서 손을 뿌리치듯 국기를 놓는 동작은 중국 인민해방군과 유사하다.[54]


4.3. 중화민국[편집]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024px-Escorts_in_the_Sun_Yat-sen_Memorial_Hall.jpg

 

 

중정기념관 의장대 사열

 

 

 

국부기념관 의장대 사열[55]


중화민국군의 육-해-공 3군 출신으로 충원된다. 정부 행사뿐만 아니라 국부기념관, 중정기념당, 충렬사 등의 주요 기념시설에서도 배치되어 있음. 특히 매시간마다 경비병 교체 행사를 실시하여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대외 접촉이 높다.


4.4. 영국[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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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생일 퍼레이드를 연습 중인 의장대 기병.

파일:attachment/UK_HG.jpg

왕실의 주요 행사 때 의장임무를 수행하긴 하지만, 곰 가죽 모자의 왕실근위보병과 흉갑기병은 엄밀히 말해서 의장대가 아니다.애초에 의장대의 근원이 근위대이다. 영국군 근위대는 육군 2개의 기병연대와 5개의 보병 연대로 나뉘는데, 기병 제대는 로얄스 앤 블루스, 라이프가드. 보병연대는 로얄 그레나디어(척탄병), 콜드스트림가드, 웰시가드, 아이리쉬가드, 스코트가드로서 각 지역 출신 요원으로 구성되는 정예군이다. 근위대는 역사상 굵직한 전투에 참여한 전투보병, 기병으로 단지 주 임무가 왕궁 경호 및 왕실 수호를 맡고 있을 뿐이다.[56] 게다가 근위보병연대는 해외원정군에 자주 차출되는데, 흔히 떠올리는 버킹엄 궁전의 근위병 콜드스트림가드만 해도 나폴레옹과 워털루에서 아웅다웅하다가 아프가니스탄에서 대 테러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 각 연대의 구성과 복장은 영국군 근위대 문서 참조 바람.

참고로 라이프 가드 기병대 소속의 크레이그 해리슨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세계 최장거리 저격기록인 2,475m를 세웠다.

2012년 런던 올림픽 때는, 경기 후 메달 수여식 때 국기에 경례를 담당하는 이들로 영국 해군 장병들이 차출되어 활동하는 모습이 TV에 잡히기도 했다.


4.5. 러시아[편집]


파일:attachment/Rus_hg.jpg
러시아 또한 수준 높은 의장대를 보유하고 있다. 구 소련의 이미지가 겹치면서 한층 더 위엄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의장대는 러시아 대통령 직속 의장대다. 별명은 블라드미르 푸틴 가드. 나폴레옹시대 제정 러시아풍의 복식이 특징. 의장용 소총은 주로 SKS 소총을 사용한다.

4.6. 일본[편집]

 

자위대는 각 자위대의 경무대(헌병) 내에 특별의장대를 설치한다. 사열을 영예례(???)라고 부른다. 의장대장은 삼등위나 이등위가 맡는 편인데, 짬이 낮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조사들이 간부로 진급하는 일이 많은 자위대의 특성상 초임이 아닌 군 생활을 어느 정도 겪은 삼등위가 배치될 때가 많다.

과거 일본군 시절에는 서양의 입헌군주제 국가들과 동일하게 왕실의 주요 행사 때 의장임무를 수행함과 동시에 일왕 생일 파티 등을 맞이하여 의장대의 활동 범위가 넓었지만, 현재 자위대는 정말 특별한 날을 제외하고는 잘 하지 않아 의장대의 활동 범위가 옛날보다 줄어들었다.


방위대학교 58기 입교식에서 특별의장대. 2010년에 촬영된 것이다. 방위대신이랑 주요 귀빈들이 경례만 받고 나가버린다.

4.7. 칠레[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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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육군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국방군 육군 삘나는 정복과 군장을 사용한다. 아무래도 독일과 밀접한 관계가 있던 국가라 그 영향이극심하게.. 남아 있다. 심지어 제식도 그 유명한 구스 스탭을 하는데, 과거 구소련 영향권의 국가들의 그것이 아니라, 빠르고 절도있는 나치 독일의 그 스타일 그대로 똑같이 한다.. 거기다 칠레군은 매년 독립기념일 행사로 군 수뇌부는 물론 무려 대통령이 참석하는 대규모 열병식을 개최하는데, 슈탈헬름[57] 과 피켈하우베를 쓰고 독일식 정복을 차려입은 1개 군단수준의 인원이 프로이센식 구스 스탭을 하는 모습을 보면, 여기가 대체 어디인가 싶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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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용인 제3제국 당시의 독일 의장대 LSSAH(아돌프 히틀러 경호대).


4.8. 북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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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민군 육군, 해군, 항공 및 반항공군, 로농적위군, 전략군, 특수작전군 군종 명예위병대. 약칭 명예위병대로 불린다.

명예위병대라는 명칭이 쓰이기 전에는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육 해 공군 의장대' 라고 불렸다가, 의장대라는 명칭이 명예위병대로 바뀌고 나서는 '육 해 공군 명예위병대' 로 불렸고, 로농적위대가 로농적위군으로 승격된 이후에는 '육군, 해군, 공군, 로농적위군 명예위병대'로 바뀌었다.
이후, 공군이 항공 및 반항공군이라는 명칭으로 바뀐 이후에는 '육군, 해군, 항공 및 반항공군, 로농적위군 명예위병대'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다가, 전략군이 육군에서 독립되고, 이후 특수작전군이 또 별도의 군종으로 독립되자, '육군, 해군, 항공 및 반항공군, 로농적위군, 전략군, 특수작전군 명예위병대'가 되었는데, 명칭이 너무 길어진 관계로 북한군 내에서는 '군종 명예위병대'로 통칭하게 되었다.

육군 명예위병대는 맨 위의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사진의 모습으로 나와 있는데, 약 10년이 지난 지금도 견식[58]이 추가되고 셔츠가 넥타이 식에서 스탠딩 카라 식으로 바뀐 것만 제외하면 복제상 변화는 없다.

파일:구 해군 의장대.png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의 구 해군 의장대.
파일:해군 명예위병대.png
현 해군 명예위병대. 견식이 달린 세일러복에 샘 브라운 벨트를 매고, 승마바지와 부츠를 신었다.
파일:구 공군 의장대.png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의 구 공군 의장대. 공군 근무복과 동일한 녹색 군복을 착용하였고, 군모에는 날개 마크가 붙어있다.
파일:항공 및 반항공군 명예위병대.png
파일:항공 및 반항공군 명예위병대 (2).png
현 항공 및 반항공군 명예위병대. 군복 색이 녹색에서 청색으로 바뀌었고 견식도 추가되었다. 육군, 해군과 동일하게 샘 브라운 벨트를 매고, 승마바지와 부츠를 신었다.
파일:로농적위군 명예위병대.png
로농적위군 명예위병대. 정모 대신 인민모를 쓴 것이 특징이다.
파일:군종 명예위병대.png
군종명예위병대. 좌측부터 육군, 해군, 항공 및 반항공군, 전략군, 특수작전군이다. 전략군과 특수작전군 명예위병대의 군복이 얼룩무늬인것에 주목.
North Korea Hell March

명예위병대는 대한민국 3군 합동 의장대와 비슷하다. 조선인민군이 창설된 1948년 2월 8일에 창설되었으며, 위병대장의 계급은 소장이다.[59] 편제는 참모부-정치부-보위부-후방부 등 지휘부서 예하의 각 군별 명예 위병중대(3개 중대)와 3군 혼성중대(1개 중대) 및 예비소대(3개 소대) 로 구성.

당연히 키만이 아니라 출신성분도 철저히 가려 뽑는다. 주 임무는 의장대가 흔히 하는 여러 행사 참석 외에도, 중앙 보고대회 개최 시에는 주석단에 비치된 노동당기, 최고사령관기를 호위하거나, 열병식에서 인공기 및 노동당기의 호위와 게양을 담당한다[60]. 또한, 금수산기념궁전의 시신 안치실 경비업무도 맡는다.

예식용 무장으로는 김정일화로 추정되는 무늬가 새겨진 은도금 63식 보총, AK-74[61], 그리고 코사크 기병대의 기병도인 샤스카(Шашка)로 추정되는, 대한민국 의장대의 그것에 비해 날이 상당히 휜 예식용 검을 사용한다. 2018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예식용 의장대가 사열하였다.

다만, 의장대 행사복의 패션 센스가 상당히 구린 것으로 악명이 자자하다. 특히 복제가 바뀌기 전의 해군 의장병들의 세일러복에 챙 없는 정모+넥타이 조합은 봐주기 상당히 힘들다.

육군, 해군, 항공 및 반항공군, 로농적위군, 전략군, 특수작전군 6군 공통으로 카라에 금색 장식이 박힌 차이나 카라 형식의 흰 셔츠를 안에 받쳐입는다. 또, 로농적위군을 제외한 육군, 해군, 항공 및 반항공군, 전략군, 특수작전군 5군 공통으로 롱부츠에 승마바지를 착용한다.

특이하게도 앞의 사진에 나와 있듯이, 로농적위군 명예위병대는 군모로 북한군 정모의 형식이 아니라 인민모를 착용한다. 다만 상의는 의전을 담당하다 보니 인민복이 아닌 더블 버튼 형식의 녹색 양복을 착용한다. 또한, 견장도 타 군종과는 다르게 착용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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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전략군과 특수작전군 명예위병대도 패션 센스가 매우 독특한데, 승마바지와 양복, 정모가 민무늬인 타 4군과는 다른, 전략군과 특수작전군 특유의 사막위장무늬와 우드랜드 얼룩무늬로 되어 있다. 의장대(명예위병대)의 예복에도 위장무늬 군복을 입힌 것은 세계적으로도 매우 특이한 사례인 듯 하다.

4.9. 아르메니아[편집]

 

1시간 5분부터 보자.
5. 의장대원의 고충[편집]


파일:attachment/fall.jpg

파일:attachment/kwillfail.jpg

 

천하의 미 해병대 의장대도 실수는 한다. 영상 마지막이 반전 [62]

소위 '군기'를 잡는다는 명목으로 별별 악행을 일삼는 행위가 어느 부대에나 알음알음 존재하듯이 의장대도 그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나 군의 절도 있고 모범적인 모습을 민간에 보여야 하기 때문에 한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완벽한 모습을 보일 것이 요구된다. 그만큼 고달프다.

확인되지 않은 속설이긴 하나, 어느 이병이 행사에서 총을 놓쳤다가 복귀 후 맞아 죽은 사고가 있다는 얘기가 전해질 정도다. 또 한번은 훈련병들 중 의장병을 선발하기 위해 면접관으로 온 부사관에게 한 훈련병이 '행사 중에 총을 떨구면 어떻게 되냐'고 묻자 절대로 떨어뜨리지 않도록 훈련시킨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걸 아는 관람자는 떨어뜨리는거 보면 같이 안타까워한다. "아이고 저사람 이제 죽었구나..." [63]

만약 행사에게 단 한 차례의 실수라도 발생한다면 그 행사는 실패한 것으로 간주된다. 총을 떨어뜨리는 치명적인 실수라도 한다면 행사 복귀 후 후폭풍이 심하다. 재수 없으면 연대책임이라 하여 당시 행사인원 전원이 똑같은 처벌을 받게 된다. 거기에 추가적으로 고참들의 온갖 욕설과 인격적 무시가 더해진다. 만약 단체처벌을 받았다면 당연히 갈굼도 n배로 늘어난다. 이건 계급에 상관 없이 적용된다. 물론 고참이 실수를 했다고 후임이 대놓고 말하지는 못하지만 암암리에 무시를 한다던가, 행사에서 배제시킨다던가 하는 방식이다. 긴장감 유지라는 명목으로 요새들어서 사라진 집단구타 역시 존재하며, 그게 들켜도 결론은 다 필요없으니 너만 잘해라로 끝나는 것도 문제. 지휘관 입장에서도 엄청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상관에게 잘 보일 수 있는 유일한 기회를 날려버린 셈이니 행사 한 번 실패하면 전 부대가 며칠 동안 히스테리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야간훈련은 보너스.

최근에는 군에서 여러 악습으로 인한 고름이 터져 간부들의 관심이 심히 증대한 탓에 갈구다 들키면 바로 영창행이다.

또한 의장병의 꽃은 바로 행사 정비[64]'. 뭔 말인고 하니, 365일 귀빈이 방한하든, 민간인 관련 행사를 나가든 완벽한 모습을 보여야 하기에 행사용 복장을 행사 전 날에 반짝반짝 정비하는 것이다. 어디 복장 뿐인가? 복장에 착용하는 대각[65]이 금 도금일 경우에는 몇 명씩 달라붙어서 광을 내는 건 기본이요, 행사용 병장기는 왁스까지 발라가며 보관하고, 뜯어진 소매나 깃 경우에는 앉아서 바느질을 하고, 깃발을 다리고, 행사용 병기 등 각종 의장물 역시 의장병이 직접 수리하고 수선한다. 훈련보다 더 빡센게 바로 정비! 열심히 행사복의 각은 잡는데, 줄 지워질까 봐 겉으로 보이는 얼룩 정도만 살짝 제거해주고 세탁은 반년에 한 번 세탁업체 위탁 외엔 사실상 안 하다시피 하므로, 행사복의 위생상태는 영 아닌 경우가 많다. 이것만이면 다행인데, 이 행사복이 대체 몇 년째 물려내려온건지 아무도 모른다는게 더 문제. 단 해군 의장대의 경우 헌병 근무복 및 행사복, 군악대 행사복과 동일하게 자대 전입 후 민간 업체에서 출장와 체척 후 행사복을 맞춤 제작해 준다.

물론 군인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임무에 막중한 책임과 부담감을 가지는 것이 숙명이겠지만, 내부에서만 잘 하면 되는 타 병과들과 달리 외부에서도 잘 보여야 하는 의장대의 특성상 바깥에 나가서도 피곤하다는 것이 고역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긴장감과 압박감 때문에 가끔 행사 도중에 의장병이 실신하는 사건도 종종 일어난다. 그만큼 심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그 부담감이 심각한 편이다.

다행히 총 한번 떨어뜨렸다고 영창에 보내지는 않는다. 징계도 받지 않는다. 행사 복귀 후에 선임들의 눈치를 많이 받는 정도로 끝이다. 애초에 이거 입창 사유가 안 된다. 징계위원회도 열지 않는다. 헌병대에서도 영창 관리가 워낙 부담되어 웬만한 건 입창시키지 않는다. 지휘관이 이상한 인간이라 권한 남용을 한다면 모를까. 2014년 현재 국방부 직할 국방부 의장대대는 행사 도중 실수로 인한 영창행은 없다. 국근지단, 계근단, 교육사를 막론하고 공군의장대는 동작행사에서의 실수에 대한 책임을 의장병에게 묻지 않는다. 의전행사에서의 실수도 처벌은 없지만, 간혹 진술서 등의 문책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도 의전행사에서 실수랄 게 거의 없다. 가장 많이 나오는 건 국기에 대한 경례에서 충!![66]

하지만 총을 망가뜨린 경우에는 책임을 피할 수 없다. 행사시 실제 총을 사용하므로 종종 발생한다.[67] 말년 병장의 경우 실총이 아닌 훈련용 폐총으로 행사를 뛰는 경우가 종종 있다. 폐총이 실총보다 훨씬 가볍기 때문이다. 초기의 폐총은 실총에서 격발만 되지 않도록 처리해 놓은 수준에 불과하지만, 온갖 부속품을 다 떼어서 버릴 수 있기 때문에 실총보다 가벼워진다. 어차피 바로 앞에서 같이 놓고 비교하지 않는 이상 일반인은 알 수 없다.


6. 기타[편집]


2007년에 청와대 신임장 행사 중 국방부 의장대원 중 한 명이 '받들어 총' 도중 총을 떨어뜨린 적이 있다. 당시에 선임들이 어떻게 하면 받들어 총 동작에서 낙총을 할 수 있냐며 의아해했다고 하는데, 행사복의 소매에 총구가 들어간 상태로 받들어 총을 하다가 총을 떨궜다고 한다.

프로야구 선수 중 LG 트윈스의 채은성 (제3야전군사령부) 김용의, kt wiz의 김재윤, 그리고 배우 박건형은 육군 제1야전군사령부 의장대, 배우 연우진은 국방부 의장대대[68], 배우 송재희는 대한민국 해병대사령부 의장대에서 군복무를 마쳤다.

서브컬처에서 의장대에 대해 이런저런 설정이 들어가게 되면 많이 왜곡되는 측면이 강하다. 그냥 의전 행사에 등장하는 엑스트라들이 외형적인 각도와 멋에 치중하기 때문에 차라리 왜곡된 언급이 없어서 낫다고 생각될 정도. 이런 말도 안 되는 설정의 대표주자격으로 라이브 자쿠 워리어가 있다.

나꼼수의 김용민은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때 의장대 사열을 한 것 가지고 친일괴뢰군이나 할 짓이라며 깠다. 바티칸에서도 외국에서 국빈이 방문하면 교황청 소속 근위대가 맞이한다. 교황은 바티칸 시국의 국가원수이므로 사열같은 의전행사를 하는 것이다. 사열이 문제된 것은 교황 측에서 화려하게 하지 말라고 부탁했는데 행사가 화려하게 된 것이지, 의미가 문제가 있던 건 아니었다.

 

7. 군대가 아닌 곳의 의장대[편집]


대한민국 경찰청이나 해양수산부소속 해양경찰청에도 의식 행사를 위해 의장대를 두고 있다. 군대의 영현행사병 일도 하고 행사를 뛰기도 한다. 의장대처럼 대규모 공연을 하거나 그런 쪽과는 좀 거리가 있다.

파일:external/spnimage.edaily.co.kr/PS13062500290.jpg
파일:external/file2.nocutnews.co.kr/28151751910007_61000040.jpg
대한민국 경찰청 의장대.

파일:external/dragons.co.kr/150413Pb_04.jpg
대한민국 해양경찰 의장대.

?http://www.coralsprings.org/Fire/HGGroup.jpg
미국의 소방의장대.

?https://blog.disneygeek.com/2014/06/20/disneyland-security-honor-guard-and-dapper-dans-marching-off-to-conclude-the-nightly-flag-retreat/
디즈니랜드 경비원의장대

?http://www.president.gov.tw/Portals/0/FeaturesSection/Foreign-visits/President-Ma/2009p02/eng/photo/b08.jpg
군대 미보유국인 나라에 설치된 공공부대에도 의장대가 있다. 파나마공공부대의 의장대가 대만의 마잉주를 맞는 장면.

똑같이 군대 미보유국이자 공공부대인 코스타리카 공공부대에도 의장대가 있는데 자세히는 알 수 없으나 군대의 군가에 해당하는 "코스타리카 공공부대 찬가"를 부르는 영상을 보면 경찰특수부대를 사실상의 군사력으로 이용하는 군대 미보유국에서도 사실상의 의장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1] 청와대 출입을 하는 국방부 의장대의 경우 보다 빡빡한 선발 과정이 존재한다.

[2] 어디까지나 사열행사에 비해서다. 의장대가 막 웃거나 웃기거나 하진 않는다. 총 돌리다 떨어뜨리면 가차없이 깨진다

[3] 모르겠으나 행사복엔 병장 계급장만 단다. 예전엔 헌병이나 군악대의 행사복도 상병이나 병장으로 통일시켜 달고 나오기도 했으나, 최근엔 자신의 계급에 맞게 단다.

[4] 계급이 잘 보이지 않지만 지휘관은 부사관으로 확정. 장교는 총돌리는 훈련을 하지 않는다

[5] 과거 행사복으로 현재는 와이셔츠와 넥타이가 없어졌으며, 하의도 남색으로 바뀌었다

[6] 육군 역시 녹색 계통으로 행사복이 바뀌었다

[7] 대대 표어. 외국 귀빈이 방한하면, 의장대가 공항에서 처음 맞이하는데다 청와대 공식환영식에서 국군을 대표해 의전을 수행하고, 한국전쟁 참전국쯤 되면 현충원 참배도 하게 되는데 여기서도 또 의전을 수행한다. 마지막으로 다시 공항에서 환송식까지 열어주는 부대니까 국가를 대표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해당 표어는 중요 행사나 시즌을 마칠 때 지휘관이 "행동은" 까지를 선창하면, 전원이 후창한다.

[8] 해군+해병 대략 1:1

[9] 전원 육군으로 구성되며, 여기까지가 본대이다

[10] 현충원 참배 및 영현 행사가 주임무

[11] 특이하게 행사용 전투복을 착용하고 행사를 수행

[12] 근지단장과 의장대대장 모두 보통 육군이 보임한다.

[13] 탄핵되었거나 법원에서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 받은 경우 국가장 대상에서 제외한다. 이명박은 1심에서 15년 형을 선고받았기에, 이 판결이 2심, 3심에서도 유지된다면 자격 상실이다.

[14] 이 때문에 공군과 육군보다 해군, 해병이 평균적으로 키가 작고 시력이 좋지 않다.

[15] 외국 귀빈이 서울(성남)공항을 이용하면 공군의장대가, 인천공항을 이용하면 전통의장대가 출동한다. 원래 인천공항도 공군대가 맡았다가 전통대에게 넘겨졌다

[16] 서울공항 행사는 공군 장병들 입장에서는 끔찍한 행사이다. 인천공항과는 달리 아예 활주로에 레드카펫을 깔고 도열한 채 대기하기 때문에, 대기 시간이 매우 긴데다 비행기 엔진 소리 때문에 지휘관의 구령이 전혀 들리지 않는다. 당연히 '받들어 총'이 안 맞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돌아오면 깨쓰

[17] 당연히 기수 최선임이 든다. 가장 편하다. 대통령이 자신에게 경례를 하고 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동작행사에 한해 기수 최선임이 눈치봐서 육군복이 아닌 자신의 행사복을 입는 경우가 있다. 즉, 해군이나 공군복을 입고 태극기를 든다는 것

[18] 여군의장대는 태극기 대형에서 태극의 물결 무늬를 담당한다. 태극기가 더욱 완벽해진다.

[19] 위에서 내려다보면 거의 완벽하게 대형을 만들어 낸다.

[20] 너무 길어서 2줄 버전도 있다. 1줄의 경우 웬만한 행사장에서는 감당하지 못해 양끝을 꺾어 ㄷ자 형태로 서기도 한다

[21] 의장대 대부분이 총끈으로 돌리나, 총열로 돌리는 부대도 있다

[22] 국군의 날에는 건국 nn주년으로 바꾼다. 보수 바꾸느라 고생한다

[23] 차후에 다시 편성될 수 있다

[24] 3군의 동작은 각각의 특징이 있다

[25] 대략 이천년대 초

[26] 키가 큰 사람들만 있는 의장대지만, 그 중에서도 키가 커야 한다. 키가 작으면 아무리 총을 잘 돌려도 뽑힐 수 없다

[27] 난도가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 의장대는 전원이 유사한 동작을 수행할 수 있다. 다만, 모병제와 징병제의 차이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연습용 폐총 여러개와 적당한 시간만 주면 대부분의 병장들은 못 할 것도 없다. 동기부여가 안되니 안 할 뿐. 소수의 개인동작조에게는 포상을 주지만, 이걸 전원에게 포상을 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28] 게다가 거의 행사 내내 총을 돌리거나 던지고 있기 때문에, 실총으로 똑같이 따라하면 남자라도 팔이 버티기가 어렵다.

[29] 미국 독립전쟁시기 복장과 장비를 충실하게 재현하고 있다.

[30] 내부에서는 당연히 일기토라 부른다

[31] 청와대 행사 사진 참조. 얼핏 봐도 전통대가 많아 보인다.

[32] 평소에 애국가 4절을 버티는 연습을 해두지만, 한 손만으로 M16으로 경례한 채 부동자세로 서 있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하다못해 의장병끼리는 선진국과 후진국을 국가 길이로 따지는 경우가 있다.

[33] 엘살바도르로 기억한다. 보편적으로 서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의 국가가 긴 편이다.

[34] 사실 국방부 군악대는 A급 군악대이기 때문에 삑사리가 많진 않다. 하지만 세상엔 마가 끼인 날이 존재하는 법

[35] 국방부 의장대가 타 의장대에 비해 늦게 생겼기 때문에 기존의 동작을 많이 가져왔다

[36] 10AB부터 18AB까지 있지만 사실상 유명무실. 12AB, 14B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쓰이지 않는다. 왜 만들었을까?

[37] 매년 두어개씩 기존 동작을 변형하거나 새로 추가한다. 하지만 새로운 동작은 잘 살아남지 못 한다

[38] 어차피 동작이 많다고 좋은게 아니다. 일반인이 보기엔 돌려총과 회전돌려총을 빼면 다 똑같아 보인다. 중요한 건 대열 전체의 일치감인데, 서로 다른 3군의 72인조 구성으로는 통일된 일치감이 나오기 매우 어렵다.

[39] 2박자에 돌려야 하는 '휙' 동작은 아예 1박자가 되어 있다

[40] 특히 여군은 심각한 수준. 여군이 통합을 같이 뛰는 상황에서(여군은 클로즈업 영상에 자주 찍힌다) 이러한 수준 차이는 전체적인 완성도에 큰 타격이 된다.

[41] 을지, 화랑, 충무 등등

[42] 9시 뉴스 등장

[43] 예도 터널을 만들어 준 뒤, 신랑에게 미션을 시킨다

[44] 그래서 온갖 레시피를 만든다. 육회비빔국수나 아포카토 등등..

[45] 엄연히 행사에 참여 중이기 때문에 부동자세다

[46] 둘셋, 하나둘셋넷, 헤쳐

[47] 당시 교황의 건강을 고려하여 분열을 했었고, 과도한 의전이란 비판이 있었다. 땡볕에서 정말 오랜기간 행사연습을 하면서 고생을 했다. 게다가 방한 기간동안 보안으로 인해 근무를 나가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48] 우견착 상태에서 받들어 총을 한다. 국방부 의장대의 호위도 우견착 상태에서 받들어 총을 한다.

[49] 과거에는 경찰학교에 입소한 전투경찰순경들중에서 차출 하였다. 전경이 폐지된 현재는 의무경찰 인원에서 선발한다.

[50] 굳이 대형 행사가 아니더라도 평일 아침 7시경 베이징 천안문광장에서 매일 볼 수 있는 광경이기도 하다. 소규모이다.

[51] 군기를 담당하는 인원은 총 3명으로, 좌측부터 해, 육, 공군 순서이고, 거기(擧旗)는 육군이 담당한다. 인민해방군기는 1984년 열병식까지는 사병들이 호위 및 거기(擧旗)했지만, 1999년 열병식부터는 위관급 장교들이 그 역할을 맡기 시작하였다.

[52] 여담으로, 중국의 삼군의장대는 열병식에서 유일하게 주목경례 구호와 우로봣 자세를 취하지 않는다.

[53] 은도금 처리가 되지 않은, 검은색의 기본형이다.

[54] 영상에서 홍콩 경찰은 온몸을 비틀지 않고(...) 팔만 국기를 펼친다.

[55] 해군 의장대이다.

[56] 기병연대는 장갑차를 갖고 있다.

[57] 의장용으로 아예 생산을 하는지 PASGAT아니고 진짜 슈탈헬름이다... 위 사진을 자세히 보자...

[58] 군복 어깨부분과 앞단추에 이어 다는 예식용 줄

[59] 단, 열병식에서 김정은을 영접할 때에는 대좌 계급의 위병대장이 영접한다.

[60] 다만, 로농적위군 명예위병대는 호위 및 게양을 하지 않음.

[61] 일체형 개머리판이 아닌 접철식 개머리판이다.

[62] 2분 29초에 해병대 의장병이 실수를 하고 3분 5초에... 총을 떨어뜨린 뒤 지휘자가 직접 총을 주워 스스로 돌리려고 하자 총몸과 개머리판이 분리된다. 지휘자의 센스로 엄숙한 분위기에서 분리된 총을 해병에게 돌려줘 웃음을 자아내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63] 1993년 대전엑스포 당시 병행된 세계 우주소년단 대회에서 인근 계룡대의 3군 합동 의장대가 행사 지원을 나왔는데 어느 의장병이 3번이나 총을 떨어뜨리는 실수를 범했다. 당시 주변의 외국인 참가 학생들은 그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냈지만 한국 우주소년단원 학생들과 어른들은 실시간으로 탄식부터 내질렀다. 게다가 소위 말하는 쌍팔년도 시절. 2012년 양양에서 3스타 앞에서 38선 돌파행사로 의장행사가 열렸었다. 상사와 6명의 병이 나왔고 총이 2번 떨어졌다. 처음엔 1명 그 다음 2명. 칼 들고 있던 중사 표정이 어그러진 건 덤.

[64] 행사 정비가 실제 행사보다 훨씬 고달프다

[65] 허리띠라고 생각하면 쉽다. 군악대에선 반도라고 부른다.

[66] 솔직히 잘 보기 힘든 실수이다. 국기에 대한 경례 순서 때 대열 안에서는 일상병들이 "경례 구호 없습니다"라고 전달한다. 물론 이래놓고도 충이 나오는 경우도 있긴 하다.

[67] 아무리 연습을 많이 해도, 낙총의 가능성은 늘 존재한다. 총이라는게 한두번 떨어뜨린다고 부러지진 않지만, 운이 없으면 개머리판 바로 위 총목이 뚝 하고 부러지는 경우도 있다.

[68] ?http://m.dcinside.com/view.php?id=drama_new1&no=652256

 

 

 

 

훈장/일본

최근 수정 시각: 2019-01-27 23:31:10

 

 

분류:
 훈장|
 

 

목차

1. 개요

2. 종류


2.1. 국화장

2.2. 동화장

2.3. 욱일장

2.4. 서보장

2.5. 보관장

2.6. 문화훈장


1. 개요[편집]


일본이 패망한 이후 군인에게 주어지던 금치훈장은 폐지되고 황족과 외국인에 대한 서훈 및 문화 훈장을 제외하고 생존자 서훈을 중지했다. 일본국 헌법 제14조 '영예, 훈장, 기타 영전의 수여는 어떠한 특권도 따르지 아니한다. '에 따라 어떠한 특혜가 주어지지 않는다. 제도를 정비하던 중 1953년(쇼와 28년) 9월 18일 각의 결정에 의해 생존자로서 긴요한 경우에 한해 서훈을 재개했다. 종전 후 몇번 상훈과 관련된 안건이 국회에 제출되어 논의되었으나 입법까지는 성사되지 못하다가 1963년(쇼와 38년) 이케다 내각의 각의에 의해 본격적으로 상훈을 재개했다. 근래에는 2003년(헤이세이 15년) 각의 결정으로 새로운 '훈장의 수여 기준'이 결정되었다. 남자만 수여되던 욱일장이 남녀 불문하고 수여하게 되어 여성에게도 욱일장을 수여했다. 이로써 보관장은 황족 여성 또는 외국인 여성(왕족 또는 고위직)에 대한 의례적인 경우만 수여되는 특별한 훈장되었다.

현재에도 일본은 서훈 제도를 포함한 영전 제도에 관한 법률이 제정돼 있지 않다. 즉 헌법에 덴노의 국사행위(제7조)로 헌법적 근거는 존재하나 그에 수반하는 법률없이 정령 또는 내각부령, 고시로써 상훈이 이루어진다. 덴노의 권한이나 실질적으로는 내각의 소관이며, 주무부처는 내각부에 속한 상훈국이다.

2. 종류[편집]


총 22개 종류에 크게 분류하면 국화장, 동화장, 욱일장, 서보장, 문화훈장, 보관장으로 구별된다. 서열이 존재하는데 최상위 훈장인 대훈위국화장경식 그 다음인 대훈위국화대수장, 훈일등욱일동화대수장과 욱일장, 서보장, 보관장은 각 6등급으로 나뉜다. 그리고 문화훈장은 별도의 등급으로 나뉘지 않고 단일 등급만 존재한다. 즉 국화장의 장경식과 대수장이 각각 1,2위이고 서열 훈일등욱일동화대수장이 3위, 욱일장, 서보장, 보관장의 최상등급과 문화훈장이 4위, 욱일장, 서보장, 보관장의 차상위 등급이 5위이다. 이런 식으로 서열이 9개가 존재하다.


2.1. 국화장[편집]

 


파일:대훈위국화장경식(大?位菊花章頸飾).png

대훈위국화장경식(大?位菊花章頸飾) : 최상위 훈장이며 역대 천황(또는 황족)과 뛰어난 업적이 있는 총리(또는 그에 준하는 직위), 외국의 국가원수에게 수여된다. 한때는 황실 인사에게도 수여했으나 전후에는 현 아키히토 천황 외에 황실 인사는 수여된 적이 없다. 총리의 경우엔 1975년 사토 에이사쿠를 마지막으로 수상자가 없다. 외국인 수상자는 대체로 외국의 국왕들이다.

 

파일:대훈위국화대수장(大?位菊花大綬章)_.png

대훈위국화대수장(大?位菊花大綬章) : 최고위인 대훈위국화장경식에 다음가는 훈장이다. 황실 수상자는 천황의 아들인 경우가 다수이며 여기엔 황태자도 포함된다. 일반 수상자는 총리와 같은 고위직들뿐이고 그도 사후서훈(추서)된 경우가 허다하다. 전후에 총리가 아닌 자 중에 수상자는 1974년 사망한 다나카 고타로 최고재판소장관이 유일한다. 또한 전후 총리 중 살아생전 수여받은 경우는 나카소네 야스히로가 유일하다.

 

2.2. 동화장[편집]


일본의 고위 훈장의 하나로 단일 등급이다. 2003년(헤이세이 15년)까지 훈일등욱일동화대수장(?一等旭日桐花大綬章)이란 이름으로 욱일장 가운데 최상등급 훈장이었으나 별도의 훈장으로 격상돼 국화장 다음 가는 훈장이 되었다.

파일:동화대수장_桐花大綬章.png

동화대수장(桐花大綬章) : 대체로 수상자는 총리 · 중의원 의장 · 참의원 의장 · 최고재판소장관 등 삼부요인들이다. 주일미국대사 또는 외국의 총리에게도 수여된 경우가 있다. 민간인도 수여된 적이 있는데 전부 일본경제단체연합회장 출신이다.

 

2.3. 욱일장[편집]


국가 혹은 공공에 대한 공로가 있는 자 중에 공적 내용에 주목하여 현저한 공적을 올린 자에게 수여한다.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문화, 스포츠, 환경 등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수여가 이루어진다. 참고로 1875년(메이지 8년)에 제정된 일본 최초의 훈장이다. 또 그 동안 남성만 수여가 가능하던 것이 2003년(헤이세이 15년)에 제도가 개정되어 남녀 모두 수여할 수 있게 됐다.

 

파일:욱일대수장_旭日大綬章.png

파일:욱일중광장_旭日重光章.png

파일:욱일중수장_旭日中綬章.png

파일:욱일소수장_旭日小綬章.png

파일:욱일쌍광장_旭日?光章.png

파일:욱일단광장_旭日?光章.png


욱일대수장(旭日大綬章)


욱일중광장(旭日重光章)


욱일중수장(旭日中綬章)


욱일소수장(旭日小綬章)


욱일쌍광장(旭日?光章)


욱일단광장(旭日?光章)

 

2.4. 서보장[편집]


국가 또는 공공에 대해 공로가 있고 공무 등에 장기간 재직하여 성적을 올렸던 자를 수여 대상으로 한다. 특히 '위험업무 종사자 서훈'이란 제도가 있어 경찰관, 자위관, 소방 공무원, 교도관, 해상보안관과 같은 위험도 높은 공무원의 직군 중 55세가 넘는 자에게 수여한다. 수여 시기는 매년 4월과 11월 두 차례로 대다수가 서보쌍광장 또는 서보단광장을 받고 인원이 3,600명 정도 수준으로 전체 훈장 수상자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파일:서보대수장_瑞?大綬章.png

파일:서보중광장_瑞?重光章.png

파일:서보중수장_瑞?中綬章.png

파일:서보소수장_瑞?小綬章.png

파일:서보쌍광장_瑞??光章.png

파일:서보단광장_瑞??光章.png


서보대수장(瑞?大綬章)


서보중광장(瑞?重光章)


서보중수장(瑞?中綬章)


서보소수장(瑞?小綬章)


서보쌍광장(瑞??光章)


서보단광장(瑞??光章)

 

2.5. 보관장[편집]


황실 여성에게 수여하는 특수한 훈장이다. 또 외국 국가원수의 부인이나 외국 왕실의 여성에게 수여하기도 한다.

 

파일:보관대수장_?冠大綬章.png

파일:보관모란장_?冠牡丹章.png

파일:보관백접장_?冠白蝶章.png

파일:보관등화장_?冠藤花章.png

파일:보관행엽장_?冠杏葉章.png

파일:보관파광장_?冠波光章.png


보관대수장(?冠大綬章)


보관모란장(?冠牡丹章)


보관백접장(?冠白蝶章)


보관등화장(?冠藤花章)


보관행엽장(?冠杏葉章)


보관파광장(?冠波光章)

 

2.6. 문화훈장[편집]

 

파일:문화훈장_文化?章.png

文化?章. 단일 등급만 있으며, 문화란 말과 달리 문화·예술뿐 아니라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뛰어난 업적이 있다면 수여가 가능하고 매해 5명 안팎에게 수여된다. 외국인 수상자도 있지만 극소수이고 모두 미국 국적자(6명)다.

 

 


훈장/소련

최근 수정 시각: 2018-12-22 15:3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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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 항목: 훈장, 소련군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Orden-Pobeda-Marshal_Vasilevsky.jpg
전승훈장(Орден "Победа"). 금/백금/다이아몬드/루비로 장식한 일종의 돈지랄. 그래서인지, 북한에는 이런 훈장이 없다.

 

소련의 훈장과 메달
Ордена и медали СССР
Orders and Medals of The USSR


목차

1. 개요

2. 훈장(Орден)과 메달(Медаль)


2.1. 뱃지(знак)

2.2. 방탄훈장

3. 목록


3.1. 영웅칭호

3.2. 영예칭호

3.3. 훈장(Орден)


3.3.1. 국민훈장

3.3.2. 무공훈장

3.4. 메달(Медаль)


3.4.1. 노동메달

3.4.2. 군사메달

3.4.3. 국토수호메달

3.4.4. 공세/점령메달

3.4.5. 국토개발/국가사업메달

3.4.6. 민간 공훈메달

3.4.7. 군사 기념메달

3.4.8. 민간 기념메달

3.4.9. 기타 메달

4. 소련 훈장의 후예


4.1. 소련 인민대표대회 영구 상무회 훈장


4.1.1. 훈장

4.1.2. 메달

4.2. 출처 모호


4.2.1. 기타

5. 픽션/창작물에서의 소련 훈장

1. 개요[편집]


본디 러시아 제국에서 훈장이라는 것은 유럽과 비슷하게 황제의 칙령에 따라서 수여되는 것이었고, 보통 그 수훈 대상은 장교에 한정되었다.[1] 훈장들의 이름은 보통 교회식을 따르었고, 수여되면 작위가 수여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1917년에 혁명에 성공한 볼셰비키 정권은 본래 귀족적이고 권위적인 상징물로 여겨지는 훈장제도를 부정하여 러시아 제국 시절의 훈장을 전부 폐기하였다. 그 후 적백내전에서 승리하고 국가의 기틀을 다진 소련은 전시 조국을 위해 헌신한 군인들을 칭송하기 위하여 '적기훈장(Орден Крaсного Знамени)'을 제정한 것을 시작으로, 대조국전쟁을 거치며 전통적인 러시아 위인들을 따온 훈장을 제정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었다. 이런 과정 속에 종류가 급격히 늘어나고 이에 따라 체계가 잡히면서 현대적인 훈장제도가 정비되었다. 훈장들은 상징성을 부여하기 위해 디자인 응모와 검토를 거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한번 제정되면 기본적인 디자인을 최대한 유지한다는 방침이 있었다.[2] 이러한 특징 덕에 훈장의 디자인들은 훈장이라는 범위를 넘어서 소련 사회에서 하나의 의미가 큰 상징으로 자리했다. 도시나 지역, 회사, 공장 등의 단체가 훈장을 수훈했을 경우 로고 등에 훈장의 디자인을 삽입하는 경우도 많았고, 포스터나 책자 등에도 훈장이 그려져 있으면 뭘 의미하는지 내용을 내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만큼 훈장들의 인지도는 대중적이었다.[3] 쉽게 말하자면 소련인들은 훈장(Орден)들을 메달(Медаль)은 아니다. 오해말자. 거의 대부분 인지하고 있었고, 이는 지금의 러시아에서도 상당 부분 유지되고 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훈장 명칭이 간단하고, 인쇄물, 방송 등의 매체에서 홍보하며, 훈장의 수 자체가 적어서이다. 그러나 러시아 연방으로 체제를 전환한 이후에 제정된 많은 상훈들은 대우가 좋지 못하다. 특히 메달(Медаль)의 경우는 더... 훈장(Орден)이라 하더라도 소련 때와 비할 바가 못된다.[4] 전체적으로 봤을 때 현 러시아 연방의 훈장이나 메달들은 세련되었지만 소련 시대의 그 상징성은 그대로 계승하지 못 했다는 것이 중론.

소련의 훈장들은 러시아 연방이 된 이후 대부분이 폐기되었지만 일부는 이름을 변경하거나 디자인을 바꾸어 사용하고 있다. 또한 소련 시절 수훈된 훈장들의 당위성은 부정되지 않는다.

2. 훈장(Орден)과 메달(Медаль)[편집]


소련의 훈장제도는 훈장(Орден)과 메달(Медаль)로 나뉘게 된다.

기본적으로 훈장이 더 훈격이 높고, 메달이 낮은데[5] 패용할 때에도 훈장들을 우선 훈격 순대로 먼저 배치하고, 그 밑에 메달들을 배치한다. 메달 같은 경우는 국가적인 사업이나 캠페인에 참여하거나 혹은 공적이 있으나 훈장의 훈격에는 미치지 못한 사람들을 격려하는, 훈장을 보조하는 위치에 있는 것들이 많아서 소련의 역사를 대변한다.

보통 메달들은 노농적군 20주년기념메달 같은 좀 비범한 것들도 있고, 참전해서 받는 군공메달 등도 있었지만 이런 일부를 제외하면 메달 자체로는 특별한 보상이나 특전이 없는, 기념물에 가까운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성과가 뛰어나면 훈장과 메달을 같이 받았다. 소련의 훈장들은 보통 훈격의 차이만 있을 뿐 수훈되는 사유가 거의 비슷하다. 그러니까 러시아 노인들도 훈장을 자랑할 때 이것의 공훈을 물으면 메달과 훈장을 같이 보여주면서 "내가 이런 메달을 받았는데 이거 하면서 노력적기훈장을 받았소!" 등으로 설명한다. 그리고 실제로 메달만 있는 것과 훈장이 같이 있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 한 마디로 훈장이 여러 공적을 뭉뚱그려 수여된다면, 세세한 사유는 메달이 대변하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물론 영웅칭호나 레닌훈장 정도라면 이런 구구절절한 설명도 필요없다.

 

당연하겠지만 eBay 등의 경매사이트에서도 훈장들은 비싼 값에 거래된다. 특히 훈장 중에서도 높은 급수의 훈장들은 금이나 플래티넘 등을 사용하여 원래 단가가 비싸다. 그러나 그에 반해서 메달들은 비교적 싸고 쉽게 구할 수 있다. 한국의 밀덕들도 오리지널을 한 두개씩은 가지고 있을 정도.

2.1. 뱃지(знак)[편집]


근위대 뱃지. 가장 잘 알려진 뱃지일 것이다.
소련군에서 근위대(гвардия)는 부대의 명예칭호이다. 즉 '뛰어난 전투력의 1급 부대' 정도의 의미. 그런 근위 칭호를 받은 부대(보통 사단/연대급)에게 수여되며, 해당 부대 소속의 장병들이 이 뱃지를 패용하고 부대 소속 전차, 함정, 항공기에도 이 뱃지 문양을 마킹한다. 전차의 경우 주포 옆에 달린 적외선 서치라이트 뚜껑에 마킹하기 때문에 프라모델 매니아들에게도 매우 익숙한 뱃지.

일반적으로 뱃지(знак/значок)도 훈장이라고 생각하는데, 밀덕 관련 중고장터에서도 훈장이라는 이름으로 거래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것은 법적으로는 훈장도 메달도 아니다. 이것은 맡은 직책의 숙련도 혹은 속한 부대의 특성 등을 나타내는 일종의 표식이었다. 대한민국 국군에 대입하면 오바로크를 치는 흉장, 기장, 직별장 정도에 해당하는 물건이다. 이런 특성 때문에 각 군마다 다른 것은 물론, 정부기관이나 민간에서도 다량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전부 정리하면 사전이 하나 나올 지경. 위의 근위대 뱃지처럼, 일부의 뱃지들은 크기도 크고 매우 화려해서 훈장들과 거의 동급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가장 큰 차이라고 한다면 훈장이나 메달과 같은 국가상훈은 소련 최고회의(Верховный совет СССР)에서만 제정 및 수여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특이한 뱃지로는 대표적으로 눈표범 상이 있는데, 이 뱃지는 소련내에서 최고봉을 맡고있는 코뮤니즘 봉을 포함한 5개의 해발 7,000m 에 달하는 산들을 모두 등반하면 부여된다. 체르노빌 메달[6] 역시 국가상훈으로 알고있는 경우가 많으나 사실이 아니다. 이것도 소련 최고회의 법령의 근거가 없는 뱃지(знак)에 해당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뱃지라고 싸잡아서 무시하면 안 된다. 수집가들의 기준으로도 매우 고귀한 것들도 있다. 예를 들어서 한국의 국회의원 금뱃지에 해당하는 ?최고회의 의원 뱃지 같은 것은 레닌훈장보다도 받기 힘들다.

2.2. 방탄훈장[편집]

 


파일:attachment/훈장/소련/40.jpg


내 말 들어보거라 뉴비야


흔히 공산권 국가들의 장성 등 높으신 분들이 패용한 모습이 갑옷같다고 하여 놀리듯 부르는 경우이다. 서구의 만평 등에서는 이것이 풍자의 주요 소재로 사용되기도 한다.

먼나라 이웃나라의 저자 이원복 교수는 자신의 저서 자본주의 공산주의에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어떠한 성과가 있을 때 상금 등 돈으로 보상하면 되지만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상대적으로 가난해서 돈 대신 명예로 그것을 충족시키려고 훈장 수여에 열을 올린다고 설명한다. 이런 분석은 현재의 북한이라면 어느 정도 들어맞을 지 몰라도 소련의 경우에는 그다지 해당하지 않는다. 소련에서 훈장을 수훈했을 때 주어지는 보상 및 특전은 상당한 수준이었고 상금도 있었다. 특히 최고등위인 영웅칭호를 받았을 경우 3대가 편했다고 할 정도이다.근데 그 3대가 다 지나가기 전에 소련이 망했다는 것이 함정 오히려 현재 러시아에서 수훈자에 대한 처우가 더 좋지 못하며, 상금도 러시아연방영웅의 경우에만 수여된다. 사실 소련도 훈장 수여숫자 자체는 서구와 천지 차이로 나는 것은 아니다. 미국 같은 경우에도 4성 장군 쯤 되면 약장 숫자는 소련과 별로 다를 것도 없다.[7] 단지 방탄훈장은 훈장을 정장으로 패용할 때의 패용법에 따른 이유와, 같은 훈장을 여러 번 받는 복수 수훈이 많다는 점 때문에 발생한다.


정장 패용법에 따른 문제
소련 훈장들은 기본적으로 크기가 크다. 정확히 말하면 훈장의 리본이 감겨 있는 지지대가 큰 것이다. 메달(Медаль) 같은 경우, 작은 것은 지름 32mm 정도에서, 큰 것은 37mm 정도로 타 국의 훈장들과 비슷한 크기이지만 이런 특유의 리본 지지대 크기는 같은 수의 훈장을 수훈하더라도 더 많는 자리를 차지하게 만든다. 이는 소련훈장의 변천과정을 살필 필요가 있는데, 원래 소련의 훈장은 약장 같은 것이 없었다. 초기의 훈장들은 리본이 없거나, 메달이 붉은 천으로 싸여진 작은 사각형 지지대를 가지고 있어 후면에 스크류백 방식으로 옷에 직접 패용하는 방식이었다. 즉, 이 때만 하더라도 소련에서는 그 정도 소량의 훈장으로도 충분했기 때문에 리본이 필요하지 않았다. ?소련 최초의 원수 5명의 사진에서 알 수 있듯 가장 높은 계급인 원수라는 것을 감안하면 부착된 훈장은 리본 없이 그냥 패용했음에도 방탄훈장이 결코 아니다. 실제로 소련은 초기에 적기훈장, 적성훈장 같은 일부 공산주의의 상징적 의미로 제정한 훈장만을 가지고 있었고 이런 훈장들로도 적백내전이나 소련-폴란드 전쟁등 굵직굵직한 공적을 치하하는 데 충분했다. 그런데 독소전이 이전의 전쟁을 훨씬 뛰어넘는 규모로 커져버렸다. 실제로 대부분 훈장 인플레를 야기하는 양산형 훈장들은 이 시기에 대규모로 제정 및 수여되었고 이 시기를 거치고 난 후에야 방탄훈장이 만들어진다. 직접 느끼고 싶다면, 방탄훈장으로 유명한 장군들의 사진을 독소전 참전 이전, 승전 후로 나눠 확인해 보자. 특히 1943년 이후에 만들어진 소련의 리본은 유동성이 없고 그 모양 자체가 오각형 틀에 박혀 있기 때문에 밀집한 훈장 겹치기가 불가능하다. 이런 방식에서는 훈장이 적다면 의외로 깔끔하게 훈장을 제복에 부착할 수 있지만 일정 수량을 넘어가 많아지면 각각 ?겨우 리본의 반만 덮어서 겹칠 수 밖에 없으므로 당연히 숫자가 많아보이게 된다.[8] 또한 소련의 많은 무공훈장들은 뱃지 형식이라서 이들은 정장 패용시 그대로 붙여야만 하며, 일부 레닌 100주년기념장 같은 메달들도 약장이 없다. 그러나 영웅칭호나 몇몇을 제외하고는 보통 모든 훈장들이 약장을 가지므로 약장으로 부착하는 경우에는 방탄훈장이 나타나지 않는다.

 

훈장 및 메달 복수 수훈
소련의 가장 위협적인 적이었던 나치 독일 같은 경우는 철십자 훈장 수훈 시스템이 순차적으로 올라가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2급 → 1급 → 기사 → 오크잎 기사 → 오크잎 쌍검 기사 등의 순서로 올라가며 하급 훈장을 수훈하지 못했으면 상급훈장이 절대 수여되지 않았으므로 이렇게 순차적으로 수훈해도 최종적으로 하나만 패용하면 모든 것이 포괄되었다. 그러나 소련에서 훈장들은 급수가 나뉘어진 것은 일부이고(그마저도 상급 훈장이 하급 훈장을 완전히 포괄하지도 못한다.) 대략적으로 훈격의 차이 정도만 존재했다. 그래서 일단 제일 처음 어떠한 공로로 존경징표훈장을 수훈받았을 경우, 이 사람이 더 노력해서 성과를 더 내면 그 상위 훈장인 노력적기훈장이 수여되고, 그 다음에는 레닌훈장이 수여되는 방식이었다. 그러면 이 사람은 3개의 훈장을 기본으로 패용해야 한다. 따라오는 메달들은 덤. 무공훈장의 경우도 받은대로 다 달아야 하는 마찬가지의 결과가 나온다. 특히, 이미 적기훈장이나 레닌훈장같은 이미 최고등급 훈장을 수훈한 경우라면, 이 수훈자에게 하위 훈장을 주는 경우는 매우 드물어서 계속 레닌훈장, 적기훈장이 수여되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그 휘하 훈장(예를 들어서 수보로프 훈장 등)은 두어개 밖에 없는데 레닌 훈장만 10개 가량 받는 기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보통의 경우라면 이런 경우는 드물었지만 알렉산드르 바실레프스키 같은 본좌급 인물로 들어갈수록 특히 두드러짐을 알 수 있다. 앞에서도 기술했듯 독소전은 위낙 엄청난 위기였기 때문에 일단 작전 성공만 하면 지휘관들에게 훈장들을 마구 수여하다시피 했으므로 이런 현상이 더 심해졌다. 그리고 승리한 기념비적 전투나 큰 사건에 따라 메달을 마구 제정했기 때문에 사병이라도 독소전 발발 후 징집되어 종전 때까지 싸웠다면 보통 십수개씩 받는 것이 가능했다. 여기에 더해서 참전용사들의 경우 종전 후 기념 메달등을 또 수여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방탄훈장이 된다.

 

소련의 훈장이 아닌 경우
분명히 소련에서 메달(Медаль)이 아닌 훈장(Орден)은 받기 힘들었다. 이 목록 맨 위에 있는 사진에서, 왼쪽 노병의 상훈 중 소련 훈장(Орден)은 조국전쟁훈장 하나를 제외하면 없다. 전부 메달 아니면 뱃지이다. 더군다나, 보통 노병들이 훈장을 잔뜩 패용하고 있는 사진 등에서 의외로 소련의 메달도 찾기 힘들 때가 있다. 소련의 위성국으로 대표되는 동유럽 등에서도 훈장을 수여했기 때문이다. 게오르기 주코프나 유리 가가린 등의 예식복 사진을 보아도, 반 정도는 타국의 훈장이다. 또한 더 큰 원흉이 있는데, 소련의 붕괴 이후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소련 정권의 후예를 자칭하는 수많은 단체에서 훈장을 만들어 상징적인 의미로 노병들에게 계속 수여하고 있는데, 이것은 방탄훈장이 되는 원인일 뿐 아니라 오히려 너무 많아지고 남발하여 훈장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주범이 되고 있다. 위 사진의 노병도 그 피해자(?)로, 메달들조차 소련의 메달은 많아야 반 정도밖엔 안 된다.


3. 목록[편집]


여기의 목록은 훈장이나 메달들을 성격적인 부분으로 대략적으로 나누어 작성하였다. 만일 이러한 훈장들에 대한 페이지를 만들 때는 이 페이지의 훈장 이름 부분에 링크를 걸어 추가할 것.

또한 여기에서는 소련시절(1917년 ~ 1991년)의 훈장만을 나열한다. 러시아 제국이나 현재 러시아 연방의 훈장을 추가하려는 위키러는 새 페이지를 만들길 추천한다.

각 분류 별 나열된 훈장의 순서는 훈격 순이고 명칭은 한국어/러시아어/제정일자 순이다.

3.1. 영웅칭호[편집]


영웅칭호는 가장 높은 훈격이며 약장이 존재하지 않는다.


소비에트연방영웅(Герой Cоветского Союза) - 1934년 4월 16일


사회주의노력영웅(Герой Социалистического Труда) - 1938년 10월 27일


모성영웅(Мать-героиня) - 1944년 7월 8일


3.2. 영예칭호[편집]


영웅칭호와 마찬가지로 칭호(Звание)이며 약장이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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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명예시험조종사(Заслуженный лётчик-испытатель СССР) - 1958년 8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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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명예시험항해사(Заслуженный штурман-испытатель СССР) - 1958년 8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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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군명예조종사(Заслуженный военный лётчик СССР) - 1965년 1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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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군명예항해사(Заслуженный военный штурман СССР) - 1965년 1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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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명예조종사(Заслуженный пилот СССР) - 1965년 9월 30일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20px-Distinguished_Navigator_Of_The_Soviet_Union.jpg

소련 명예항해사(Заслуженный штурман СССР) - 1965년 9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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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명예발명가(Заслуженный изобретатель СССР) - 1981년 12월 28일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ru/thumb/8/8c/Kosmos_2.png/220px-Kosmos_2.png

소련 우주비행사(Лётчик-космонавт СССР) - 1961년 4월 14일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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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인민의사(Народный врач СССР) - 1977년 10월 25일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20px-People%27s_Architect_of_the_USSR.png

소련 인민건축가(Народный архитектор СССР) - 1967년 8월 12일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20px-People%27s_Teacher_of_the_USSR.jpg

소련 인민교육가(Народный учитель СССР) - 1977년 12월 30일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20px-People_Artist_of_the_USSR1.jpg

소련 인민예술가(Народный артист СССР) - 1937년 1월 13일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20px-People_Artist_of_the_USSR.jpg

소련 인민미술가(Народный художник СССР) - 1943년 7월 16일


3.3. 훈장(Орден)[편집]


3.3.1. 국민훈장[편집]


민간인과 공무원, 군인 모두에게 수여된다.


레닌훈장(Орден Ленина) - 1930년 4월 6일


스탈린훈장(Орден Сталина) - 1945년부터 논의되었으나 스탈린 사후 폐기.


10월혁명훈장(Орден Октябрьской Революции) - 1967년 10월 31일


노력적기훈장(Орден Трудового Красного Знамени) - 1928년 9월 7일


인민우호훈장(Орден Дружбы Народов) - 1972년 10월 17일


존경징표훈장(Орден "Знак Почёта") - 1935년 11월 25일


노력영예훈장(Орден Трудовой Славы) - 1974년 1월 18일


개인용기훈장(Орден "За личное мужество") - 1988년 12월 28일


모성영예훈장(Орден "Материнская Слава") - 1944년 7월 8일


3.3.2. 무공훈장[편집]


전승훈장(Орден "Победа" - 1943년 11월 8일


적기훈장(Орден Красного Знамени) - 1924년 8월 1일[10]


수보로프훈장(Орден Суворова) - 1942년 7월 29일(1,2급)/1943년 2월 4일(3급)


우샤코프훈장(Орден Ушакова) - 1944년 3월 3일


쿠투조프훈장(Орден Кутузова) - 1942년 7월 29일(1,2급)/1943년 2월 8일(3급)


나히모프훈장(Орден Нахимова) - 1944년 3월 3일


보그단 흐멜리츠키훈장(Орден Богдана Хмельницкого) - 1943년 10월 10일


알렉산드르 넵스키훈장(Орден Александра Невского) - 1942년 7월 29일


조국전쟁훈장(Орден Отечественной войны) - 1942년 5월 20일


적성훈장(Орден Красной Звезды) - 1930년 4월 6일


영예훈장(Орден Славы) - 1943년 11월 8일


소련군 대조국공로훈장(Орден "За службу Родине в ВС СССР") - 1974년 10월 28일


3.4. 메달(Медаль)[편집]


3.4.1. 노동메달[편집]


노력영예메달(Медаль "За трудовую доблесть") - 1938년 12월 27일


노력공훈메달(Медаль "За трудовое отличие") - 1938년 12월 27일


대조국전쟁 영예노력메달(Медаль "За доблестный труд в ВОВ 1941?1945 гг.") - 1945년 6월 6일


장인메달(Медаль "Ветеран труда") - 1974년 1월 18일


3.4.2. 군사메달[편집]


용맹메달(Медаль "За отвагу") - 1938년 10월 17일


군공메달(Медаль "За боевые заслуги") - 1938년 10월 17일


우샤코프메달(Медаль Ушакова) - 1944년 3월 3일


나히모프메달(Медаль Нахимова) - 1944년 3월 3일


조국전쟁 파르티잔메달(Медаль "Партизану Отечественной войны") - 1943년 2월 22일


소련국경수호공훈메달(Медаль "За отличие в охране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й границы СССР") - 1950년 7월 13일


군사복무공훈메달(Медаль "За Отличие В Воинской Службе") - 1974년 10월 28일


군사단결확립메달(Медаль "За укрепление боевого содружества") - 1979년 5월 25일


소련군 노병메달(Медаль "Ветеран Вооружённых Сил СССР") - 1976년 5월 20일


근정메달(Медаль "За безупречную службу") - 1958년 2월 25일


3.4.3. 국토수호메달[편집]


레닌그라드 수방메달(Медаль "За оборону Ленинграда") - 1942년 12월 22일


모스크바 수방메달(Медаль "За оборону Москвы") - 1944년 5월 1일


오데사 수방메달(Медаль "За оборону Одессы") - 1942년 12월 22일


세바스토폴 수방메달(Медаль "За оборону Севастополя") - 1942년 12월 22일


스탈린그라드 수방메달(Медаль "За оборону Сталинграда") - 1942년 12월 22일


키예프 수방메달(Медаль "За оборону Киева") - 1961년 6월 21일


카프카스 수방메달(Медаль "За оборону Кавказа") - 1944년 5월 1일


소련극지방 수방메달(Медаль "За оборону Советского Заполярья") - 1944년 12월 5일


3.4.4. 공세/점령메달[편집]


대조국전쟁 대독승전메달(Медаль "За Победу над Германией в ВОВ 1941-1945 гг.") - 1945년 5월 9일


대일승전메달(Медаль "За победу над Японией") - 1945년 9월 30일


베를린 탈환메달(Медаль "За взятие Берлина") - 1945년 6월 9일


부다페스트 탈환메달(Медаль "За взятие Будапешта") - 1945년 6월 9일


쾨니히스베르크 탈환메달(Медаль "За взятие Кенигсберга") - 1945년 6월 9일


빈 탈환메달(Медаль "За взятие Вены") - 1945년 6월 9일


프라하 해방메달(Медаль "За освобождение Праги") - 1945년 6월 9일


바르샤바 해방메달(Медаль "За освобождение Варшавы") - 1945년 6월 9일


베오그라드 해방메달(Медаль "За освобождение Белграда") - 1945년 6월 9일


3.4.5. 국토개발/국가사업메달[편집]


돈바스 석탄탄광부흥메달(Медаль "За восстановление угольных шахт Донбасса") - 1947년 9월 10일


남부흑색금속기업부흥메달(Медаль "За восстановление предприятий чёрной металлургии юга")[11] - 1948년 5월 18일


처녀지개간메달(Медаль "За освоение целинных земель") - 1956년 10월 20일


바이칼-아무르 철도건설메달(Медаль "За строительство Байкало-Амурской магистрали") - 1976년 10월 8일


러시아연방 비흑토지개혁메달(Медаль "За преобразование Нечерноземья РСФСР") - 1977년 9월 30일


서부시베리아 유류공업단지개발진흥메달(Медаль "За освоение недр и развитие НГК Западной Сибири") - 1978년 7월 28일


3.4.6. 민간 공훈메달[편집]


사회질서수호 공훈복무메달(Медаль "За отличную службу по охране общественного порядка") - 1950년 11월 1일


화재용맹메달(Медаль "За отвагу на пожаре") - 1957년 10월 31일


익수자구조메달(Медаль "За спасение утопающих") - 1957년 2월 16일


3.4.7. 군사 기념메달[편집]


노농적군 20주년기념메달(Юбилейная медаль "XX лет РККА") - 1938년 1월 14일


소련 육/해군 30주년기념메달(Юбилейная медаль "30 лет Советской Армии и Флота") - 1948년 2월 22일


소련군 40주년기념메달(Юбилейная медаль "40 лет Вооружённых Сил СССР") - 1957년 12월 18일


소련군 50주년기념메달(Юбилейная медаль "50 лет Вооружённых Сил СССР") - 1967년 12월 26일


소련군 60주년기념메달(Юбилейная медаль "60 лет Вооружённых Сил СССР") - 1978년 1월 18일


소련군 70주년기념메달(Юбилейная медаль "70 лет Вооружённых Сил СССР") - 1988년 1월 28일


대조국전쟁 승전 20주년기념메달(Юбилейная медаль "Двадцать лет Победы в ВОВ 1941?1945 гг.") - 1965년 5월 7일


대조국전쟁 승전 30주년기념메달(Юбилейная медаль "Тридцать лет Победы в ВОВ 1941?1945 гг.") - 1975년 4월 25일


대조국전쟁 승전 40주년기념메달(Юбилейная медаль "Сорок лет Победы в ВОВ 1941?1945 гг.") - 1985년 4월 12일


3.4.8. 민간 기념메달[편집]


소련경찰 50주년기념메달(Юбилейная медаль "50 лет советской милиции") - 1967년 11월 26일


모스크바 800주년기념메달(Медаль "В память 800-летия Москвы") - 1947년 9월 20일


레닌그라드 250주년기념메달(Медаль "В память 250-летия Ленинграда") - 1957년 5월 16일


키예프 1500주년기념메달(Медаль "В память 1500-летия Киева") - 1982년 5월 12일


3.4.9. 기타 메달[편집]


레닌탄생 100주년기념메달(Юбилейная медаль "100-летия со дня рождения В. И. Ленина") - 1969년 11월 5일


모성메달(Медаль Материнства) - 1944년 7월 8일


4. 소련 훈장의 후예[편집]


이 외에도 분명 소련의 훈장으로 생각되는데 위 목록에 나열되지 않은 것들을 가끔씩 찾아볼 수 있다. 이런 경우에는 정부에서 직접 제정한 공식 훈장이 아닌, 소련 붕괴이후 공산당 등지에서 만든 비공식 훈장인 경우이다. 워낙 많은 단체에서 훈장을 만들어대고 있어서 러시아 연방 정부의 공식 훈장과도 구분이 힘들 지경이지만, 수집가들의 입장에서는 대개 전부 지뢰이거나 듣보잡이다. 혹여나 러시아를 여행하려는 경우라면 주의하자. 길거리 등에서 소련의 훈장이라고 속여서 비싸게 파는 것을 착오를 일으켜서 사게 되면 심히 억울해진다. 물론, 밀덕이 아니고 그저 기념품으로 사는 것이라면 오히려 좋다. 아무래도 새것들이라 보관 상태가 좋기 때문이다. 또한 러시아에서는 소련의 훈장 등을 기념품으로 구입한 것이라도 그냥 들고 출국하는 것이 매우 위험하다. 우표나 포스터 등도 진품일 때, 잘못하면 걸린다. 아무래도 이런 것으로 재테크를 하려는 자들[12]을 막으려는 조치일 것이다. 일단 문화유산 밀반출 혐의가 걸린다. 뱃지 등은 비교적 안전한 편이지만, 그래도 가격이 세다면 구입한 곳에서 영수증을 받아두면 좋다. 공항 등에서 요구할 수도 있기 때문.

4.1. 소련 인민대표대회 영구 상무회 훈장[편집]


'소련 인민대표대회(Съезд народных депутатов СССР)'는 본래 '소련 최고회의(Верховный Совет СССР)'의 후신으로,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소련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에 권력기구 재편을 통해 탄생한 1989년부터 1991년까지의 의회 명칭으로 1991년 9월 2일부터 5일까지 열린 5차 대회를 마치막으로 소련 붕괴 이후에는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1992년 3월 17일, 전 인민대표대회 의원이자 러시아 평화통일당(партия Мира и Единства) 당수였던 사지 우말라토바(Сажи З. Умалатова)의 주도로 과거 소련 인민대표대회 의원들이 모여 상무회를 구성하고, 6차 소련 인민대표대회를 자칭했다. 이들은 소련 영웅 같은 훈장들을 부활시켰으며, 그 외에도 훈장을 만들어내고 또 나름대로 독자적인 기준 하에 수여하고 있다. 당연히 이들은 러시아 연방의 공식 정부단체가 아니며, 이들이 제정한 훈장들은 현 러시아 정부의 공식 훈장과도 이름이 겹치는 것들이 있다. 문제는 이런 훈장들이 지금도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인데 이런 비공식 훈장이 늘어나다 보니 몇몇 훈장은 이 영구상무회에서 만들었는지조차 출원 자체가 모호한 것들이 있다. 하지만 모두를 싸잡아서 초기 지도자인 우말라토바의 이름을 따 우말라토바 훈장이라고 한다. 이것은 나름대로의 체계성을 지니고 있어서, 일부 밀덕 사이에서는 거래가 되기도 한다.

4.1.1. 훈장[편집]


스탈린훈장(Орден Сталина) - 1998년 4월 3일


소비에트 수호자훈장(Орден "Защитнику Советов") - 1994년 9월 22일


4.1.2. 메달[편집]


대조국전쟁 소련인민 승전 50주년메달(Медаль "50 лет Победы советского народа в ВОВ 1941-1945 гг.") - 1995년 2월 7일


대조국전쟁 소련인민 승전 55주년메달((Медаль "55 лет Победы советского народа в ВОВ 1941-1945 гг.") - 1999년 11월 18일


주코프원수 메달(Медаль "Маршал Советского Союза Жуков") - 1997년 2월 20일


쿠즈네초프원수 메달(Медаль "Адмирал флота Советского Союза Кузнецов") - 1998년 4월 7일


10월혁명 80주년메달(Медаль "80 лет Октябрьской Революции") - 1997년 9월 25일


소련군 80주년메달(Медаль "80 лет Вооруженных сил СССР") - 1997년 10월 10일


소련 국경수비대 80주년메달(Медаль"80 лет пограничным войскам СССР") - 1998년 5월 6일


국가안전위원회 80주년메달(Медаль "80 лет ВЧК[13]-КГБ") - 1998년 8월 12일


공산청년연맹 80주년메달(Медаль "80 лет ВЛКСМ[14]") - 1998년 10월 14일


해외파병 노병메달(Медаль "Ветерану-Интернационалисту") - 1998년 10월 16일


소련원자력 50주년메달(Медаль"50 лет ядерной энергетике СССР") - 1998년 10월 16일


스탈린탄생 120주년기념메달(Медаль "В ознаменование 120-летия со дня рождения И.В.Сталина") - 1999년 8월 15일


소련공수군 창군 70주년메달(Медаль "70 лет создания Воздушно-Десантных войск СССР") - 2000년 6월 30일


4.2. 출처 모호[편집]


어디서 만들었는지 알 수 없는 것들. 정확한 제정날짜도 모르는 것이 대부분. 그리고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10월혁명 90주년메달(Медаль "90 лет Октябрьской Революции")


소련군 90주년메달(Медаль "90 лет Вооруженных сил СССР")


공산청년연맹 90주년메달(Медаль "90 лет ВЛКСМ")


국경수비대 90주년메달(Медаль "90 лет пограничных войск")


소련 85주년메달(Медаль "85 лет СССР")


아프가니스탄 철군 20주년메달(Медаль "20 лет вывода Советских войск из Афганистана")


스탈린탄생 130주년기념메달(Медаль "130 лет со дня рождения И. В. Сталина")

 

4.2.1. 기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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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훈장은 러시아 연방 공산당에서 제정한 훈장 중 하나다. 소련이 설립 90년이 못되서 붕괴했으므로, 저건 어느 기준으로 봐도 소련 정권과 관계없는 훈장이다. 당연히 여기도 소련 공산당의 후예임을 자칭하나, 어떠한 법적 근거도 없고 공식적으로 인계받은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런 메달들도 정부 공식이 아니다. 공산당은 소련 때처럼 자체적으로 훈장 수훈첩까지 주지만, 이런 메달들의 위의 우말라토바 훈장보다 더 가치가 없다.

5. 픽션/창작물에서의 소련 훈장[편집]


추가바람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4편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에 등장하는 이리나 스팔코 대령은 사회주의노력영웅이며 레닌훈장을 3회 수훈했다. 영화 초반에 자신을 소개할 때 말한다.


메탈기어 솔리드 3의 등장인물 알렉산드르 레오노비치 그라닌은 작중 설정상 레닌훈장 수훈자이다.


붉은 10월 영화 버전에서도 라미우스 함장에게 속은 어리버리 군의관이 "함장님께 레닌훈장이 추서될 겁니다!" 하는 장면이 있다.


이것은 사족인데, OCN 등의 케이블 영화채널에서 에너미 앳 더 게이트를 방영하면, 마지막 에필로그 부분에서 바실리 자이체프에 대해 설명할 때 '레닌에게 훈장을 받은' 이라는 자막이 등장한다. 레닌훈장의 영어명 'Order of Lenin' 을 잘못 번역한 것으로 추정된다.

 

[1] 근세 유럽의 대부분의 국가가 그러하듯, 장교는 보통 귀족이었다.

[2] 영 그렇지 않아보이지만 심지어 영웅메달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독소전 이전의 과도기적 기간에는 변경되는 경우도 있었는데, 초기에 그냥 금이나 은, 백금을 사용하다가 야금술과 도금기술의 발전 및 수훈자가 늘어나자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 같아 디자인이 변경된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것은 레닌훈장이나 노력적기훈장이다.

[3] 한국에서 훈장의 인지도는 시망일 정도인데,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로 그나마 유명해진 '태극무공훈장'의 사진을 보여주고 뭐냐고 물어보면 답할 수 있는 한국인이 몇이나 될 것인지 생각해보면... 다른 훈장은 말할 것도 없다.

[4] 지금 러시아에서도 훈장을 수훈하면 추가연금 등의 혜택이 있다. 그러나 1개를 받으나 10개를 받으나 똑같고, 메달은 아예 그런 거 없다. 안습.

[5] 예외도 있긴 한데 영웅칭호는 메달이다. 물론 영웅칭호(Звание Героя)는 훈장도 메달도 아니고, 여기서 말하는 것은 영웅칭호를 받을 때 주어지는 징표인 금별(실제로 순도 950‰ 의 금으로 만듦.)을 '메달(Медаль)'이라고 한다는 점이다. 모성영웅은 그냥 훈장(Орден)이라고 한다.

[6] 정식명칭은 '체르노빌 원전참사 최후종사참가자메달(Медаль "участнику ликвидации последствий аварии на ЧАЭС")'이다.

[7] 오히려, 같은 약장 숫자라면 미군의 인물의 받은 훈장 숫자가 더 많을 가능성이 많다. 소련의 수훈 체계에서는 약장의 복수표시 그런 거 없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에는 약장 위에 다시 작은 금속 부착물을 붙여 훈장의 등급이나 수여횟수를 표시하는 체계가 있기 때문.

[8] 첨부된 사진은 소련군 원수 이반 코네프의 정복과 훈장이다. 여기서 전승훈장은 보이지 않는데, 전승훈장은 오른쪽 다른 훈장들 밑의 하단부에 덩그러니 부착되어 있다. ?참조

[9] 유리 가가린이 최초의 우주인이 된 지 이틀만에 제정했다!

[10] 소련 최초의 훈장. 소련 출범 이전인 1918년 9월 16일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에서 이미 제정되었던 훈장이다. 위 일자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출범 이후 다시 제정된 연도. 디자인은 같으며 훈장 아래쪽의 국가명만 바뀐다.

[11] 흑색금속은 주로 철을 의미한다.

[12] 실제로, 1991년 소련 붕괴 당시엔 이러한 밀리터리나 역사관련 물품이 대량으로 풀릴 수 밖엔 없었는데, 특히 작고 보관이 용이한데다 값도 비싼 훈장은 그 대표적 대상이었다. 길거리에서 러시아 노병들이 심하면 20루블 가량에 파는 걸 사서 서구에서 팔면 700달러 이상 받을 수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군복이나 무기류도 마찬가지로 짭짤했다고.

[13] '전러시아 반혁명 사보타주 단속 비상위원회'의 약자로, 보통 체카(ЧК)라고 한다. 국가안전위원회의 전신.

[14] '전연방 레닌-공산주의 청년연맹'의 약자로, 보통 콤소몰(Комсомол)이라고 한다.

 

 

대영제국 훈장

최근 수정 시각: 2019-01-19 00: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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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대영제국 훈장|
 

 

목차

1. 개요

2. 등급

3. 1등급과 2등급에 덧붙는 칭호: 기사작위(Knighthood / Damehood)


3.1. 기사작위의 개념

3.2. 기사작위를 받는 과정


3.2.1. 남성

3.2.2. 여성

4. 외국인이 받는 '명예 훈장'

5. 역대 주요 수훈자


1. 개요[편집]


Order of the British Empire

1917년 설립된 영연방의 훈장(勳章)으로, 영연방에 소속된 나라의 시민권이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5개 등급으로 나누어서 준다. 5개 등급마다 총 인원수가 제한되어 있다. 이 인원수가 꽉 채워졌을 경우, 기존 수훈자가 죽거나 훈장을 박탈당해야만 새 수훈자를 선정할 수 있다.

훈장의 분류에 따르면 기사단 훈장(Chivalric order) 중 하나인데, 수훈자 중 높은 등급은 기사를 단다는 뜻이지 이 훈장을 받은 모든 사람이 기사라는 뜻으로 이해하면 곤란하다. 바로 위에 적었듯 등급이 있는 훈장이다. 3, 4, 5등급 훈장만으로는 기사라 할 수 없다. 즉, 3, 4, 5등급 훈장만으로는 'Sir(경)'가 붙을 수 없다. 이 'Sir'에 대해서는, 아래 '3.1. 기사작위의 개념' 문단을 보면 정확하다.

여기서 헛갈려서인지, 누군가가 4등급 대영제국 훈장인 'OBE'를 받았다는 보도가 나오면 단지 "훈장 받았다" 라고 하면 정확한데 꼭 그걸 '작위'라고 잘못 부르는 경우가 여전히 있고, 그런 오류를 기반으로 "영국은 기사작위 개나소나 다 준다, 훈장 남발한다"식의 근거없는 폄하를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실제로 개나 소보다 못한 자가 받은 적이 있다.

대영제국 훈장과 기사작위 대상자는 영국 본토뿐 아니라 캐나다, 호주 등 영연방 소속 국가를 모두 통할한다. 그 수억 단위 국민과 시민권자 중에 기사작위(Knight Bachelor)를 받아가는 사람은 1년에 50명 내외다. 참고로 대한민국 2017년 5급 공무원 공채(구 행정고시) 선발인원이 338명이다. 영국 본토보다도 적은 인구 중에서 뽑는 공무원, 그중에서도 행정공무원만으로 1년에 300명 이상 배출된다는 이야기다. 이를 생각하면 영연방 전체에서 연기, 음악, 문학, 체육, 미술, 과학, 교육 등 분야를 합쳐 1년에 50명 정도 받는 것이 '남발'인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전근대적이다, 시대착오적이다, 권위적이다 하면서 까기 쉽지만 사실 영국의 서훈 시스템에서 군주가 하는 일은 의회가 제출한 명단을 승인하고 훈장 달아주는 의전상 역할 정도다. 극히 일부분 왕실인사의 의견이 반영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1] 기본적으로 대영제국 훈장이나 기사작위의 대상자를 선정하는 주체는 국민, 그리고 각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된 의회 공훈심사단이다.

무엇보다도 기사작위급을 초월하는 최상급서훈을 제외하고는, 국민의 '청원서'를 접수하고 그 안에서 후보자를 낸다. 그리고 그 청원서가 국가 규모의 공훈을 입증할만 한 내용인지 철저히 심사한다. 게다가 이 청원서는 국민 한명 혼자서 접수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다수의 국민이 총의를 모아 집단 단위로 내야 효력이 있다. '누구누구에게 기사작위를 줘야 한다' 식의 캠페인이 벌어지곤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청원서 제출을 위한 모임인 셈.[2]

대영제국 훈장은 민간 부문과 군 부문으로 지급 분야를 나눈다(민간 1~5등급, 군 1~5등급으로 구별). 군인이 민간 부문 대영제국 훈장을 받으려면 전역 후 다른 분야에서 업적을 쌓아야 한다. 육상선수 켈리 홈즈(Kelly Holmes)가 대표적인 예.[3]


2. 등급[편집]


높은 등급순으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등급명 맨 앞글자로 구별되고, 공통으로 들어가는 'BE'는 Order of the British Empire를 줄인 것이다.


기사작위급 훈장 - Dame(Dame Grand Cross, Dame Commander)은 여성에 해당

1등급 GBE: Knight Grand Cross · Dame Grand Cross


2등급 KBE: Knight Commander / DBE: Dame Commander

 


일반 훈장

3등급 CBE: Commander


4등급 OBE: Officer


5등급 MBE: Member

 


3. 1등급과 2등급에 덧붙는 칭호: 기사작위(Knighthood / Damehood)[편집]


3.1. 기사작위의 개념[편집]


세계 각국에서 대체로 2등급 훈장부터는 특별대우를 해 준다. 대령과 원스타의 차이라 비유할 수 있다. 3등급 훈장까지는 메달만 주지만, 2등급 훈장부터는 부장(副章)을 함께 준다.

영국에서는 1, 2등급 훈장 수훈자에게 부장뿐 아니라 Sir / Dame 칭호도 덤으로 준다. 이 칭호가 바로 기사작위로 통용되는 것이다. 그래서 3, 4, 5등급 훈장만으로는 당연히 칭호도 안 붙고, 이것들은 훈장일 뿐 작위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4] 낮은 급의 기사작위는 남발한다는 식의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3, 4, 5등급 훈장은 그냥 훈장일 뿐이지, '낮은 등급의 기사작위'가 아니다. 단, 남성의 경우 'Knight Bachelor'를 따로 받으면 Sir를 붙일 수 있게 된다.

남성기사는 Sir, 여성기사는 Dame[5]이라고 부른다. 영어 위키백과에서 이름 앞에 'Sir'나 'Dame'이 붙거나 ?여기에 이름이 있어야 기사작위 서임자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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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2등급(KBE)
정장(正章): 목걸이 형태
부장(副章): 브로치 형태 

여성 2등급(DBE)
정장(正章): 메달 형태
부장(副章): 브로치 형태

Knight Bachelor
역시 기사작위지만
1, 2등급 훈장과 달리 부장(副章)은 없다.


3.2. 기사작위를 받는 과정[편집]


이 기사작위를 받는 테크트리는 남성(Sir)과 여성(Dame) 별로 다르다.

3.2.1. 남성[편집]

 


영국 기사 서임자 (남성)
British Knights 

 

1등급(GBE)이나 2등급(KBE)을 받으면, 그 즉시 기사로 서임된다. 그런데 1~2등급 훈장을 받을 수 있는 정원이 워낙 적고,[7] 1~2등급 훈장 없이도 기사가 되게 해 주는 것이 있다. 1년에 50명 내외에게 주는 Knight Bachelor가 그것이다.[8] Sir가 붙는 대부분의 유명인물은 Knight Bachelor를 따로 받은 경우다.

찰리 채플린이나 페르마의 대정리를 증명한 앤드루 와일스, 하이퍼텍스트와 이를 통해 구동되는 인터넷에 혁명을 일으킨 월드 와이드 웹의 선구자 팀 버너스리, 영화사 역대 최고의 감독 중 한명인 앨프리드 히치콕, 애플의 최고디자인책임자(CDO) 조너선 아이브와 같이 정말 걸출한 업적을 세웠다고 평가되는 아이콘급 인물은 예외적으로 Knight Bachelor를 거치지 않고 KBE를 받는 일도 있다.[9]

따라서 Sir가 붙는 경우를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복잡하더라도 위의 설명을 보면서 이해해 보자.
각등급 예시의 순서는 이름(first name) 기준 가나다순.

① GBE (1등급)
② KBE (2등급)
③ Knight Bachelor


예) 다니엘 데이 루이스, 리들리 스콧, 믹 재거, 벤 킹슬리, 숀 코너리, 아서 코난 도일, 알프 램지, 케네스 브래너

④ CBE + Knight Bachelor


예) 마이클 케인, 배리 깁, 사이먼 래틀, 안소니 홉킨스, 알렉스 퍼거슨, 엘튼 존, 이안 맥켈런, 제임스 다이슨, 존 허트, 크리스토퍼 리

⑤ OBE + Knight Bachelor


예) 가즈오 이시구로, 앤디 머레이, 잭 브라밤, 클리프 리처드, 테리 프래쳇, 패트릭 스튜어트

⑥ MBE + Knight Bachelor


예) 링고 스타, 제프 허스트, 케니 달글리시, 폴 매카트니


③은 보통 특정한 이유로 서훈이 미루어지다가, 공훈이 쌓여 중장년쯤 되어서 Knight Bachelor 하나를 준 경우이다. 본인의 지속적인 훈장 고사, 불미스러운 사건 및 구설수, 국내 여론 등이 이유가 될 수 있다.[10] 이렇게 Knight Bachelor 이전에 훈장을 받지 않은 경우라도, 이후에 눈에 띄는 공훈이 계속 쌓이면 2등급이나 1등급 훈장을 받을 수 있다. 대영제국 훈장을 이전에 받지 않고 Knight Bachelor만 받은 인물의 이름 뒤에는 통상적으로 약자를 붙이지 않고, 이름 앞에 'Sir'만 붙인다.[11] 믹 재거의 풀 네임은 'Sir Michael Philip Jagger'가 되는 것.

④의 대표적인 예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의 감독 알렉스 퍼거슨의 경우를 풀어 써 보자면, 그는 1985년 OBE(4등급)를 받고 1995년 CBE(3등급)로 승급되었다. CBE 그 자체로는 기사작위가 아님에도 그의 이름에 Sir가 붙는 이유는, 그가 1999년에 Knight Bachelor를 따로 받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그의 풀 네임은 'Sir Alexander Chapman Ferguson, CBE'가 된다.

⑥의 대표적인 예인 비틀즈의 폴 매카트니는 1965년에 5등급 MBE를 받고 1997년에 한 번에 Knight Bachelor로 뛰어올라 기사가 된 경우다. 그리고 2017년 컴패니언 오브 아너(Order of the Companions of Honour) 훈장을 받았다. 이에 따라 그의 풀 네임은 'Sir James Paul McCartney, CH, MBE'가 된다.

③, ④, ⑤, ⑥은 결국엔 모두 Knight Bachelor를 받은 것이므로 보통 높고 낮고 우열을 구분하지 않는다. 대영 제국 훈장과 Knight Bachelor가 별도의 제도이기 때문에 훈장 수훈자 모임 같은 데에서 같은 등급끼리 구별할 수는 있는, 그 정도이다. ③은 FM대로라면 참석 못하겠지...ㅜㅜ 굳이 위아래를 따지자면 Knight Bachelor까지 도달한 기간이 짧으냐 기냐로 비교하면 된다. Knight Bachelor를 젊은 나이에 빨리 받은 쪽이 아무래도 나중에 더 높은 것을 받는 데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다만 앤디 머레이, 크리스 호이, 브래들리 위긴스 등 스포츠 스타들은 보통 말 그대로 "국가" 대표를 달고 올림픽 금메달 등 딱 드러난 수상실적을 누적[12]하기 때문에, 그리고 현역은퇴가 빠르기 때문에 고려를 받아 젊은 나이에도 빠르게 기사작위를 받는 경우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긱스 불륜 대서사시를 보면 이건 허락해주는 왕실하고 정부가 미친놈이여대신 스포츠 스타들은 기사작위보다 상급서훈인 메리트 훈장(Order of Merit)이나 컴패니언 오브 아너(Order of the Companions of Honour)까지 다다르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적다. 2017년 기준으로, 스포츠 스타 출신으로 메리트 훈장 수훈자는 단 한명도 현존하지 않는다. 컴패니언 오브 아너에만 전설적인 육상 금메달리스트일 뿐 아니라 2012 런던 올림픽 조직위원장을 맡은 세바스찬 코(Sebastian Coe), 그리고 금메달리스트 출신일 뿐 아니라 벨파스트 주지사를 역임하며 공직에도 봉사한 메리 피터스(Mary Peters)가 남녀 사이좋게 한자리씩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후자 메리 피터스는 2015년에야 컴패니언 오브 아너를 받았고, 당시 80을 바라보는 나이였다. 2017년 신년서훈명단에 인류 최초로 1마일(약 1.6km)을 3분대에 주파했던 중거리 육상선수 출신 로저 배니스터(Roger Bannister)가 새로 컴패니언 오브 아너 대상자로 오르면서 스포츠 스타의 자리가 3개로 늘었지만, 로저 배니스터 역시 1929년생으로 명단발표 당시 만87세였고 1975년 기사작위를 받은 후 무려 42년 만에 오른 것이다. 축구 관련 인사 중에서 유일하게 2등급에 속하는 KBE 서훈자는 다름아닌 펠레인데, 그것마저도 외국인이 받을 수 있는 명예 KBE 서훈 정도이다. 펠레가 축구사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지닌 인물인지 알 수 있는 사례.

3.2.2. 여성[편집]

 


영국 기사 서임자 (여성)
British Dames 


1-2등급 훈장의 정원이 적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은 테크트리가 상대적으로 단순하다. 즉, 남성같으면 따로 Knight Bachelor를 줄 것을 여성에게는 2등급 훈장을 바로 주는 것이 관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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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테일러. 배쪽 단추 옆에 2등급 브로치가 달려 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줄리 앤드루스는 2등급 훈장을 한 번에 바로 받아 여기사, 즉 여사가 되었다. 제인 구달과 애거서 크리스티, 주디 덴치, 매기 스미스는 CBE(3등급)를 거쳐 2등급으로 승격된 경우다.


4. 외국인이 받는 '명예 훈장'[편집]


영연방 소속 국민이 아닌 외국인에게 지급하는 명예 훈장의 경우, 1-2등급 훈장이더라도 칭호를 붙이지 않는다. 외국의 시민이 영국의 왕에게 기사로 충성 서약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일례로 2005년 빌 게이츠가 명예 KBE를 받았지만, 미국은 영연방 국가가 아니므로 그의 풀 네임은 앞에 Sir가 없는 'William Henry "Bill" Gates III, KBE' 가 된다.

이렇게 명예 훈장의 등급이 1-2등급일 경우, 자세히 따지면 다소 복잡하기 때문에 편의상 명예 기사작위라 칭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기사작위의 개념을 생각하면('3.1. 기사작위의 개념' 문단 참고) 부장(副章)은 똑같이 받기는 하지만 작위라고 보기에는 좀 모자라다. 기사 칭호는 받지 않기 때문. 따라서 이도 따로 구분하기보다 '명예 훈장' 범주에 같이 포함시키는 것이 적절하다.

Knight Bachelor는 영국과 국왕을 공유하는 순수 영연방 왕국 국가의 시민권이 있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다.[13] 따라서 기사작위에 해당할 정도의 중량감있는 외국 인물에게는, Knight Bachelor가 아닌 2등급 훈장을 칭호가 붙지 않는 명예 훈장의 형식으로 바로 주는 것이다.

피어스 브로스넌과 아르센 벵거는 명예 OBE(4등급)를, 헨릭 라르손은 명예 MBE(5등급)를 받았다.

정원이 정해져 있어 영국인들도 아무나 받지는 못하는 것을 특별히 외국인에 부여한다는 점에서는 비록 '명예'라도 충분한 상징적인 의미가 있으며, 국적과 관계없이 영국과 어떤 방식으로든 긍정적인 교류를 하고 공훈을 한 사람들에게 주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절차의 관점에서 보면 정원과는 관계없이, 즉 '정원외' 로 줄 수 있는 것이어서 정식 훈장에 비해 절차가 상대적으로 간편하고 격도 다소 떨어진다. 외국의 외교관이나 정치인, 기업인 등에게 외교적 의미를 덧붙여서 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인 중에서는 강영훈 전 국무총리, 한승수 전 국무총리, 김상만 전 동아일보 회장이 명예 KBE를,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 정세영 현대자동차 창업자와 이승한 전 홈플러스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명예 CBE를 받았다.


5. 역대 주요 수훈자[편집]


대영제국 훈장/수훈자 문서 참조.

 


[1] 어디까지나 '있기는 하지만' 수준의 비중이다.

[2] 그러나, 슬프게도 이러한 캠페인이 성공을 거두는 경우보다 그렇지 못한 경우가 훨씬 많다. 기사작위는 그만큼 심사기준이 높고, 어지간한 뉴스에 좀 뜰 정도의 단기적인 공훈 정도로는 받지 못하는 것이다.

[3] 1998년 군 부문 MBE를 받고, 2004 아테네 올림픽 육상 종목에서 2관왕에 올라 2005년에 민간 부문 DBE를 받았다.

[4] 아주 대표적인 잘못이 J. K. 롤링. 해리 포터 시리즈 정식 한국어판 책의 작가소개를 보면 버젓이 '작위'를 받았다고 쓰여 있다. 그래서 그녀가 기사작위를 받은 줄 아는 사람들이 아직까지도 굉장히 많다.

[5] 여사(女士)로 번역된다. 김여사 할 때 그 여사는 女史다.

[6] 영어 위키백과에 문서가 개설되지 않은 기사작위 서임자도 물론 있지만, 일반적으로 기사작위를 받았다고 인정되는 세계적 저명인사는 거의 들어가 있는 상태다.

[7] 생존자로 총 800여명이라 알려져 있다.

[8] 위키백과에서는 '최하위 훈작사'로 번역되었지만, 3등급 CBE나 4등급 OBE 등 기사작위급보다 아래인 훈장'만' 받은 사람을 '훈작사'로 칭하는 경우도 또 많기 때문에 이는 혼란을 부르는 번역이다. OBE가 훈작사인데 Knight Bachelor가 최하위 훈작사라는 그 말대로라면 CBE > OBE >>> Knight Bachelor 라는 말도 안 되는 꼴이 만들어 진다. '훈작사'로 구글링을 해서 조금만 살펴보면 그때그때 다른 개족보를 확인할 수 있다. 훈작사라는 단어 자체도 영국 정부로부터 공인된 것인지 출처가 불분명한 단어이고, 훈장의 훈(勳)과 작위의 작(爵), 기사의 사(士) 세 단어를 짬뽕시켜 만들어진 한자어다. 제도에 대한 기본지식이 없이 훈장과 작위를 아예 뭉뚱그려서 하나로 퉁쳐버리게 하는 단어라 할 수 있다. 기사작위는 아무나 받는 게 아니냐는 잘못된 인식에 이런 혼란스런 번역이 상당한 몫을 했다. 따라서 여기서는 원어 'Knight Bachelor'를 그대로 밝혀 적는다.

[9] 그러나 1등급 훈장인 GBE를 받은 사람들은 예외 없이 정치가, 법조인, 군인 등의 고위 공무원단이거나, 왕족 혹은 대대로 내려오는 귀족집안이다. 셀프훈장 비정치적인 분야에서 얻은 성공으로 갈 수 있는 훈장은 법률로 정해져 있진 않지만 사실상 2등급이 한계이다.

[10] 대표적인 예로 롤링 스톤스의 믹 재거는 과거 훈장 수훈 내역은 없이 2000년에 이르러 Knight Bachelor 명단에 오를 예정이었다. 하지만 당시 브라질 여성모델과의 편력 논란이 일어난 데다 토니 블레어 총리의 반대까지 더해져 불발되었다고 한다. 결국 2년 후, 2002년 6월 서훈명단(2002 Birthday Honours)에서야 공식적으로 올랐다. 한편 재거와 함께 롤링 스톤스의 멤버인 키스 리처즈는 기사작위를 받는 것은 록의 저항 정신에 어긋난다는 생각으로 탐탁찮아했는데, 실제로 리처즈는 정부의 훈장 제의를 거절했다 카더라가 심심찮게 회자되기도 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재거에게 사실 오래 전부터 훈장이 제안됐음에도 이러한 밴드의 분위기 때문에 본인이 훈장을 거절해왔다가, 2000년도가 되어서야 입장을 바꿨을 가능성도 있다.

[11] 그럼에도 굳이 굳이 이름 뒤에 뭔가 붙여야 한다면 'Kt.'를 붙인다. t는 소문자다. 이것도 거의 쓰이지 않고, 그냥 Knight Bachelor만 받은 사람 이름 뒤엔 뭘 붙이지 않는 게 정석이다. 'Kt.'를 붙이면 스코틀랜드의 최고 훈장인 시슬 훈장(Order of the Thistle)의 수훈자 이름 뒤에 붙이는 약자 'KT'와 혼동될 우려가 있기도 하다.

[12] 금메달 한번으로는 기사작위는 어림도 없다. 영국에서 전혀 성과를 못내던 불모지 종목에서의 금메달이라면 가능성이 있겠지만.

[13] 인도 등 과거 영연방 왕국 소속이었던 나라의 국민도 독립이나 왕정 폐지 이전에는 당연히 대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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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6 소아온  
소드 아트 온라인 인피니티 워 2 일본 본토 전 (에필로그 2)
에단헌트
2020-11-24 0-0 548
525 소아온  
소드 아트 온라인 인피니티 워 2 일본 본토 전 (에필로그 1)
에단헌트
2020-11-24 0-0 396
524 소아온  
소드 아트 온라인 인피니티 워 2 일본 본토 전 (314)
에단헌트
2020-11-23 0-0 360
523 소아온  
소드 아트 온라인 인피니티 워 2 일본 본토 전 (313)
에단헌트
2020-11-23 0-0 373
522 소아온  
소드 아트 온라인 인피니티 워 2 일본 본토 전 (312)
에단헌트
2020-11-22 0-0 291
521 소아온  
소드 아트 온라인 인피니티 워 2 일본 본토 전 (311)
에단헌트
2020-11-22 0-0 269
520 소아온  
소드 아트 온라인 인피니티 워 2 일본 본토 전 (310)
에단헌트
2020-11-21 0-0 518
519 소아온  
소드 아트 온라인 인피니티 워 2 일본 본토 전 (309)
에단헌트
2020-11-21 0-0 222
518 소아온  
소드 아트 온라인 인피니티 워 2 일본 본토 전 (308)
에단헌트
2020-11-20 0-0 534
517 소아온  
소드 아트 온라인 인피니티 워 2 일본 본토 전 (307)
에단헌트
2020-11-20 0-0 409
516 소아온  
소드 아트 온라인 인피니티 워 2 일본 본토 전 (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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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9 0-0 146
515 소아온  
소드 아트 온라인 인피니티 워 2 일본 본토 전 (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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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9 0-0 168
514 소아온  
소드 아트 온라인 인피니티 워 2 일본 본토 전 (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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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8 0-0 97
513 소아온  
소드 아트 온라인 인피니티 워 2 일본 본토 전 (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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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8 0-0 120
소아온  
소드 아트 온라인 인피니티 워 2 일본 본토 전 (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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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7 0-0 568
511 소아온  
소드 아트 온라인 인피니티 워 2 일본 본토 전 (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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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7 0-0 121
510 소아온  
소드 아트 온라인 인피니티 워 2 일본 본토 전 (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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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6 0-0 299
509 소아온  
소드 아트 온라인 인피니티 워 2 일본 본토 전 (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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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6 0-0 180
508 소아온  
소드 아트 온라인 인피니티 워 2 일본 본토 전 (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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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5 0-0 389
507 소아온  
소드 아트 온라인 인피니티 워 2 일본 본토 전 (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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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5 0-0 176
506 소아온  
소드 아트 온라인 인피니티 워 2 일본 본토 전 (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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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4 0-0 151
505 소아온  
소드 아트 온라인 인피니티 워 2 일본 본토 전 (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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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4 0-0 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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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드 아트 온라인 인피니티 워 2 일본 본토 전 (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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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3 0-0 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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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3 0-0 104
502 소아온  
소드 아트 온라인 인피니티 워 2 일본 본토 전 (292)
에단헌트
2020-11-12 0-0 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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